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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야 Mar 13. 2019

아빠가 낯선 남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1

아빠는 술과 사람을 좋아한다. 특히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가 가는 곳엔 언제나 술과 술을 마시는 사람, 술에 취한 사람들이 있다. 






내가 어렸을 때, 아빠는 막내딸인 내가 그리도 예뻤는지 늘 나를 데리고 모임에 나갔다. 나는 아빠의 친구들이 노는 자리에서 아빠가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홀로 가끔은, 함께 따라온 어떤 아이와 놀았다. 낯선 곳에 갈 땐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야 했다. 예의 없이 행동하거나 조금이라도 반항하는 태도를 보이면 혼이 나기 때문이었다. 나만 웃으면 모든 사람들이 다 만족하는 듯 보였다. 나는 그렇게 어른들이 먹는 음식을 먹고, 술 냄새와 담배 연기가 자욱한 방에서 놀았다.


아빠는 술에 취하면 과격해졌다. 내가 생각할 때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은 일에도 아빠는 크게 화를 냈다. 욕을 하고 물건을 집어던졌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다가도 갑자기 버럭 화를 냈는데 그럴 때면 사람들이 두 개의 편으로 나뉘어 아빠를 달래거나 아빠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내가 봐도 우리 아빠가 잘못한 것처럼 보였다. 아빠와 다툰 이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러니까 마누라가 도망을 가지. 나 같아도 안 살겠다.'

나는 부끄러웠다. 저 사람들도 내가 엄마 없는 아이라는 걸 알고 있었구나, 어디라도 숨고 싶었다. TV에 나오는 마술사들처럼 내 몸도 공간을 이동해서 집에 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안타깝게도 내 몸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다. 아빠를 아끼고 좋아하는 한 아저씨는 우리 아빠를 말리다가 자신의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나를 불렀다.

"아름아, 니가 니 아빠 좀 말리봐라. 아빠가 니 말을 듣잖아."

나는 아빠가 왜 화를 내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아빠가 화를 내는 게 너무 싫고 부끄러워서 울며 매달렸다.

"아빠 그르지 마, 내가 잘못했어. 화내지 마. 욕 하지 마. 내가 잘할게. 내가 말 잘 들으께."

그렇게 한참을 빌면 그제야 아빠는 나를 보고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아빠가 잘못했어. 우리 딸, 집에 가자."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는 날엔 꼭 맛있는 걸 사줬다. 나는 맛있는 것보다 아빠가 화를 안 내는 게 더 좋았는데, 차마 그 말을 할 순 없었다. 언제나처럼 그저 괜찮다는 표정, 맛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빠가 밖에서만 화를 내고 욕을 한 건 아니었다. 아빠는 집에서도 과격했다. 특히 밖에서 속상한 일이 생기면 늘 집에 와서 그 화를 풀었다. 술에 취하면 제일 먼저 할머니와 큰 오빠에게 시비를 걸었다. 

"이 새끼야, 내가 니 땜에 인생이 망했어."

큰 오빠와 아빠는 만날 때마다 싸웠다. 큰 오빠는 자주 집을 나갔다. 큰 오빠가 떠나고 나니 작은 오빠가 시비의 대상이 되었다. 나중엔 작은 오빠도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빠들이 있을 땐, 아빠가 욕을 하고 물건을 집어던질 때면 오빠들이 나를 다른 방으로 보냈었다. 왜 어린애한테까지 화를 내냐며 나를 감싸주었는데, 오빠들이 집에 없으니 다음 타깃은 내가 되었다.

크게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됐지만 아빠는 내가 잘못했다고 했고 술에 취해 나를 때렸다. 어릴 때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건 파리채였다. 파리채 손잡이 부분으로 맞으면 다리에 피멍이 들었는데, 그게 쉽게 낫지 않아 목욕탕에도 가지 못했다. 

아빠는 할머니에게도 욕을 했다. '당신이 나한테 뭘 해줬는데?'라고 소리를 지를 때마다 할머니는 한숨을 쉬었다. 그때 나는 참 어렸던 게, 나는 매번 맞는데 할머니는 맞지 않아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생각만큼 한심하고 불쌍한 생각이 없었구나 생각된다.

아빠가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오면 할머니는 냉장고에서 소주를 더 꺼내다가 아빠를 멕였다. 아예 술에 취해 쓰러져 자도록 말이다. 그렇게 아빠가 술에 취해 뻗은 밤에는 가끔 오빠들이 들어와 자고 나갔다.


시간이 흘렀고 할머니 자리는 엄마가 대신하게 되었고, 나는 그새 머리가 제법 굵어졌다. 할머니는 이제야 혼자 편히 살 수 있겠다며 독립을 선언하셨고, 할머니는 고모들이 마련해준 집에서 홀로 지내셨다. 처음에는 함께 살던 큰 오빠도 아빠의 등쌀에 아예 집을 나갔고 작은 오빠는 일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 산지 오래되었다. 그 집에는 나와 아빠, 그리고 엄마가 살았다.

엄마가 생겼다고 아빠가 술을 안 마시는 건 아니었다. 아빠는 여전했고 술에 취하면 별에 별 트집을 잡아 엄마에게 욕을 했다. 가끔 엄마는 나 때문에 욕을 먹었다. '지 딸 아니라고 챙겨주지도 않는다'는 게 아빠의 트집이었고, 그럴 때면 엄마는 내게 '내가 물어보자. 내가 니한테 뭘 그래 못해줬노?'하고 화를 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빠의 시비는 그뿐이 아니었다. 일주일에 1,2번은 온갖 이유로 욕을 했는데 엄마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니까 당신이 여제 꺼 마누라도 없이 살았지'하며 같이 화를 냈다. 집안 물건들이 방바닥을 뒹굴었고, 밥을 먹다가 상을 엎을 때면 며칠씩 방바닥에 반찬들이 말라 붙어 있었다.

엄마는 내가 본 여자 중에 가장 아빠와 동등하게 싸웠지만 그래도 아빠를 이기지는 못했다. 한 가지 고마웠던 건, 그렇게 아빠와 싸우면 내가 싫을 수도 있을 텐데 내게는 대체로 따뜻했다. 


내가 더 나이를 먹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받지 않아도 되는 때가 되자 나도 아빠와 맞서게 되었다. 아빠는 내게 아무것도 해준 게 없으면서 간섭만 했는데 그게 너무 어이가 없었다. 대학을 조기에 졸업하고서, 몇 달간 돈을 모아 어학연수를 가겠다고 말했더니, '당장 니 학자금 대출 갚을 생각은 안 하고 어린 게 벌써부터 대가리만 커져서 남들 따라 한다'며 그럴 꺼면 당장 집에서 나가라고 했다. 억울하고 분통이 터지고, 뭐 저런 게 아빠일까 싶었지만 당장 나가면 굵어 죽겠다 싶어서 잠자코 있었다. 

비겁하고 무식하고 나약하고 멍청하고 괴팍하고 부끄러운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내 아빠였다.


결국 나는 몇 달 후 일자리를 구해 집을 떠났다. 서울에서 버티는 삶이 지옥만큼 힘들어도, 집은 지옥보다 더 치가 떨려서 서울에서 버텼다. 그리고 그 해 추석, 사단이 났다.

오랜만에 대구에 내려와 친구들과 놀고 있는데 집에서 연락이 왔다. 엄마가 아프다고. 크게 탈이 난 건 아니고, 링거를 맞고 쉬면 되는 거였는데 아빠는 엄마가 아픈데 딸이 옆에 있어야 한다며 오라고 화를 냈다. 엄마는 동네 작은 응급실에서 수액을 맞고 있었다. 아마도 신경성 복통인 듯했다. 엄마는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생기면 배가 아팠는데 명절 때문에 신경 쓸 일이 많았던 것이다.

내가 도착하자마자 퇴원을 했다. 그리고 아빠는 동네에서 친한, 엄마와도 친하지만, 내가 제일 싫어하는 한심한 부부를 불렀다. 매일 같이 어울려 술 마시는 부부였다. 엄마는 아픈데 아빠는 친구들을 불러 술판을 벌렸다. 집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빠는 화를 내는 나를 보고, '친구들이랑 놀고 있는데 오라고 해서 화가 났다'라고 그 부부에게 설명했다. 아니, 아니, 그거 아닌데.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라 그 사람들이 마시고 있던 술판에 끼여 잔을 내밀었다. 

"저도 한 잔 주세요."

언더락 잔에 양주를 반절받아 그대로 마셨다. 






기억을 차려보니 할머니가 나를 달래고 있었다. 집은 엉망이었고 아빠는 화가 나면서도 놀란 표정이었다. 엄마는 한숨만 쉬었다. 

내가 물건을 집어던지고 아빠에게 욕을 했다고 했다. 창문이 깨져있었고, TV 한쪽 모서리에 금이 가 있었다. 내가 욕을 하자 아빠가 나를 때리려고 하다가, 몸싸움에서 아빠가 밀렸다고 했다. 아빠는 가슴팍을 부여잡고 있었다. 당시 내 나이 25. 아무리 여자라고 해도 체력이 한창인 자식을 50대 후반의 남자가 막기엔 무리였던 것이다. 엄마도 아빠도 도저히 나를 진정시킬 수 없어 할머니에게 전화를 했고, 할머니는 새벽에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우리 집으로 오셔서 내게 혼을 내고 또 달래신 것이었다.

술에서 깬 나는 스스로를 자책했지만 이미 일은 벌어져 버렸고 나와 아빠 사이엔 결코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생겼다.  엄마는 내게 일단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나는 그제야 울며 잘못했다고 했지만, 나도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리 쉽게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엄마는 화를 참으며 내게 말했다. 우선 돌아가고 한 동안은 연락을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그다음 날 아침 나는 도망치듯 집에서 나왔다.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 욕을 하고 물건을 집어던지는 아빠를 보며 다짐한 게 있었다. '나도 저렇게 되갚아 줄 거야'하고 수십 번 다짐했는데, 정말 그 복수가 이뤄진 것이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순간에, 극단적으로 표출되어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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