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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초 Apr 14. 2019

알면서도 모르는 날

20190401

스케치북, 20색 색연필, 지우개, 4B연필, 그리고 컬러링북... 70년 전 봄날의 기억을 그려보시라고 말은 했지만 왠지 엄마가 그리실 것 같지가 않다. 색연필이나 스케치북도 없으실 텐데...

보내드릴까 생각이 났고, 내일로 미루긴 싫고, 서점에 갈 시간은 없고, 색연필이랑 스케치북을 사면서 공주 캐릭터들 그림이 있는 컬러링 북을 문구점에서 샀다. 표지의 공주들 중 한 명이 엄마도 아실 것 같은 백설공주이길래 그것으로 골랐다. 재미를 붙이시면 그땐 엄마의 취향을 고려한 컬러링북을 또 사드리면 된다.

"엄마, 스케치북이랑 색연필 사서 보냈어."

"어? 교회에서 준 거 색연필 3개(3세트)나 있는데... 색칠 책도 있어."

당연히 없으실 거라 생각한 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듣고 보니 엄마가 교회 숙제를 한다고 얘기하시던 게 생각이 났다. 그럴 때마다 어르신들에게 성경 내용을 세뇌시킨다고, 그 교회를 못마땅해했었는데, 이제야 엄마에게 색연필이 있고, 비록 성경 속 장면들 그림이긴 하지만 컬러링 북도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잠시지만 내가 근사한 생각을 해냈다고 우쭐했는데, 내가 맘에 들어하지 않는 그 교회는 이미 하고 있는 일이었다. 엄마의 일상을 잘 몰라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안다고 착각해서 벌어진 일. 

'엄마, 예수님도 그리고, 공주님도 그리고, 나중에 명화 컬러링북이나 정원 꾸미기 같은 거 사다 드릴게 다양하게 그려. '

70년 전 봄날의 기억이 엄마에게 새로운 취미를 가져다주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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