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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초 Jan 13. 2019

자신의 몸을 탐구하는 날

20190103 

바닥에 누운 상태에서 테이블 탑 자세를 취한 다음 발목에 서클을 낀 채 헌드레드를 하랬더니만,

목에 힘만 잔뜩 주고 버티다가 누워버린다. 

30초씩 두 세트 플랭크를 하라고 했더니, 5초도 못 버티고 그냥 엎드려 버린다. 

또 어떤 동작들이었을까? 강사의 지시와 동시에 아이가 그만두었던 것들이... 

다운 독, 우짜이 호흡, 복식호흡, 코어에 힘을 주고... 

생전 처음 들어보는 낯선 용어들이 아이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강사는 첫날이니까 그냥 놀러 왔다고 생각하고 편하게 하라고 말해 준다. 그러다가도 수업 중간쯤에는 "제일 젊은데 제일 비리비리하네.ㅋㅋ"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나는 아이가 안 들었기를 바랐다. 자칭 '상남자' 16살 입장에서는 언짢을 수도 있으니까~ 알아들었다면 당장 '안 해!'라고 외쳤을 수도 있다.^^ 

아이는 수업하는 내내 '내가 지금 열세 명의 엄마들 틈에서 뭐 하고 있는 거야? 뭔 말인지도 못 알아먹겠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잘못 따라 한다고 바로 내 자세를 교정해 주는 것도 아니고, 이걸 방학 내내 해야 해? 환불해달라고 할 거야, 안 해!'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내 바로 옆에 매트를 깔고 수업을 했기 때문에 나는 아이의 표정 혹은 뒤통수만 봐도 어떤 느낌인지 짐작 정도는 할 수 있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 "너는 아마 여기 오고 싶지는 않았을 거야~"라고 강사가 어루만지듯 아이 입장에서 얘기해 주자 자신의 처지에 공감해주는 강사의 한 마디에, "학원 갔다 왔더니 엄마가 신청해 놓았더라고요."라고 항변하듯 대답을 한다. 

강사를 포함 12명의 엄마 같은 분들과 이제 막 16살이 된 남자아이가 아쉬탕가 요가와 필라테스를 하는 기분이 어땠을지는 나도 안다. 물론 고민했다. 어린이 요가를 신청할 수도 없고 그냥 놔둘 수도 없고... 단지 나는 롤케이크처럼 돌돌 말린 아이의 어깨를 쫙~~~~~ 펴주고 싶었을 뿐이고, 방학 한 달만이라도 , 가능하다면 2월 봄방학까지도 엄마 같은 분들과 시간을 보내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 아이가 좋아하는 탁구도 축구도 아니지만 - 자신의 몸을 탐구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하고 싶었을 뿐이다. 

귀와 어깨가 멀어진다던가, 상체를 끌어올린다던가, 어깨를 내린다, 코어에 힘을 준다 등등 자신의 몸을 써보고 느끼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동작들을 해 보면서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기를 바랐다. 

편하다는 이유로 습관처럼 돌돌 말아 두었던 어깨를 반듯하게 펼 수 있기를, 자신의 몸이 얼마나 예쁘고 소중한지 엄마인 내가 말하기 전에 알아챌 수 있기를, 또 지켜갈 수 있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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