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치앙마이
쿠팡플레이에서 '유포리아'라는 드라마를 보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내가 어렸을 시절에도 청춘의 방황을 그리는 비슷한 작품들은 많았으나 이...이 작품은 매우 결이 다르다. 성행위라든가... 나체 장면... 등이 너무 많이 나와서 미국인들에 대한 편견이 생길 정도다. 너무 노골적으로 보여주니 등장인물들이 고깃덩어리로만 보이기도 했다.
(*찾아보니 이 드라마는 미국에서도 선정성의 거의 끝판왕 수준으로 평가되는 수위의 작품이라고 한다)
드라마의 줄거리는 마약 중독자인 고등학생 주인공을 중심으로 그녀와 그녀 친구들이 겪는 청춘의 방황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 커다란 상실감에 마약에 빠졌다(?!!). 그녀의 친구들은 각자의 문제에 시달리는데 공통적으로는 성행위에 상당한 시간 할애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 중고등학교 시절 진짜 학교-학원-집만 오갔던 나로서는 이들의 방황이 와닿지는 않았다.
다만 한 가지 공감을 했던 부분은 아무리 겉으로는 쎄 보이고 화려해 보여도 뭐랄까 주체성이 없이 살아가는 것 같은 등장인물들의 모습이었다. 남들에게 보이는 것에 집착하고 자신의 감정보다는 친구 혹은 연인과의 관계에 목을 맨다. 다들 꽤나 고구마 100만 개를 먹은 것처럼 목 막히게 행동한다.
나도 그랬다.
어린 시절의 감정이라든가 생각의 원인을 떠올리지 못할 정도로 타인 중심적인 삶을 살았다. 부모님도 한국 부모님 답게 나의 충성을 바랐을 뿐이지 자율성을 바라지는 않았다. 그 시절의 나는 심지어는 글을 제대로 쓰지도 못했다. 내 생각을 하고, 이걸 논리적으로 전개하지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오로지 '타인'으로 가득 찼었다.
나이가 서른이 넘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에게 무례하게 대한 친구가 있어도 그들이 떠나갈까 매달리기에 급급했다.
그중 나와 몇 년 간이나 가장 친하게 지낸 한 친구가 있다.
그녀는 한 번 나를 떠나갔으나(?) 내가 매달려서 관계가 회복이 되었다가 최근 다시 관계가 멀어졌다.
이제야 나는 그녀에 대한 집착 아닌 집착을 놓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연락을 하고 싶으면 하겠지 싶다.
부모님도 마찬가지다. 부모님에게 충성을 바치지 않으면 나는 나쁜 사람이라는 집착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지는 중이다. 아무리 그들이 나를 비난할지라도 그건 그들의 이야기이지 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런 생각이 드는 요즘, 드라마 유포리아 속 방황하는 청춘 시기로 돌아가고 싶냐고 누가 묻는다면 내 대답은 '아니요'다.
한국 나이로 마흔이 다 되어서야 내가 가진 문제를 똑바로 들여다보고, 괴로워하고, 여기서 벗어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이를 실천하는 지금의 내가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