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치앙마이
오늘은, 인생 최초로 새벽 6시 반에 일어나서 크로스핏을 했다.
밤에 잠을 잘 자기 위해서 운동을 오전에 하고 싶었다. (아침운동이 숙면에 좋대서 시도해 보는 것이다)
평생 아침잠이 많은 나였기에 거의 불가능한 미션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거의 한 달 전부터 새벽에 깬다. 불안장애 때문에 먹는 신경 안정제 탓이라기에는 이건 7개월째 복용 중인데...도통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동안 뭔가 나도 알아채지 못한 변화가 생긴 것일까.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지금은 이걸 '기회'라고 생각해서 마음의 준비를 좀 한 후에 오늘 기어이 새벽 운동을 나간 것이다.
결과는? 의외로 크게 힘들지도 않고 속도 편해서 뿌듯하더라. 평소에 소화가 덜 된 채로 운동할 때보다 차라리 밤새 속이 비워진 상태에서 운동을 하는 게 더 몸이 가벼웠다. 오후에 좀 졸리기는 했지만 생각보다는 금방 적응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느낌이 그렇다.
운동이 끝난 후, 나는 개선장군이라도 된 마냥 의기양양하게 친구들에게 카톡을 보내 새벽 운동 성공을 자랑하기도 했다. 최근에 뭔가 즐겁고 기쁜 일이 없었는데 고작 이런 걸로 기쁘다.
달려온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그래도 성공적이었다.
23년도 8월부터는 술을 끊었고, 24년도 9월부터는 신경정신과에 다녔고, 25년도 1월부터는 심리상담을 시작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울거나 공황발작을 겪거나 온몸에 힘이 아예 없어서 집에서는 누워 있기만 하던 나였다. 지금은 음식도 꽤 건강하게 챙겨 먹고 운동도 하며 눈에 안 들어오던 책도 조금씩 읽는 중이다. 가장 크게는 하루 중 아주 큰 감정 변화를 거의 겪지 않는다. (미세하게 불안함을 느끼기는 한다)
나를 돌본 결과가 아닐까 싶다.
내가 나에게 가혹한 수준의 고문을 가할 때가 있었다. 폭음에 폭식증에 흡연에 격한 운동에 끝없이 이어진 야근을 했다. 그 와중에 '나를 챙겨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나쁜 사람이다!!'라고 직간접적으로 협박하는 부모님을 견뎠다. 아마 부모님의 그런 행동이 내가 나에게 저지른 나쁜 짓의 인과관계 요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부모님은 나를 챙겨주지는 않았다. 나는 고통스러운 마음을 이길 길이 없어서 술을 마시고 종종 자다가 울었다.
내 존재 만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원하는 것을 해드려야 비로소 내가 사람 같았다.
지금은 이것이 무조건 부모님 탓이라기보다는 그냥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님도 사랑받아본 적이 없었겠지. 다만 그러니 내가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모든 걸 다 들어주기보다는 그것은 부모님의 삶이고 이제는 내가 나를 돌봐야 할 때라고 생각할 뿐이다.
퇴사를 당하긴 했지만 그건 공황발작에 이어서 내 인생에서 일어난 두 번째로 가장 좋은 일이었다. 공황발작 덕에 금주에 성공했고 퇴사를 당한 덕에 비로소 온전히 나를 돌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고 노력할 수 있었다.
낯설지만 꽤 괜찮은 일상을 보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