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장애
운동을 안 한 지 어언 두어 달 즈음되어 간다.
몸이 무겁고 숨이 찬다.
숨이 차는 것은 불안장애 때문이기도 하다.
얼마 전에 진단서를 새로 받았는데 진단명이 조금 바뀌어있었다.
이전에는 그냥 혼합형 불안장애였던 것 같은데,
최근에 받은 진단서에는 '혼합형 불안 및 우울장애'라는 단어가 적혀있다.
원래도 우울장애가 포함되어 있었나?
진단서의 단어가 무엇인들 그것이 뭐시 중하겠는가.
불안도, 우울도 지금의 나를 표현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단어인 것을.
최근 나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연락이 끊긴 한 친구에 관한 일이었다.
친구는 노산에 난임이었다. 그전에는 갑상선암으로 수술도 받았다.
그리고는, 임신을 하며 나를 끊어냈다.
그녀에게 나의 상황을 전하며 불안장애로 치료를 받고 있다는 말을 했다.
상황 정도를 전했다. 그 뿐이었다.
헌데 그것이 그녀에게는 그녀와 아이들의 존재를 위협하는 아주 무서운 전염병, 병원균 같은 것이었나 보다.
그녀가 내 연락을 받지 않기로 작정한 그날 이후, 그녀는 나를 차단했고 그 어떤 연락도 받아주지 않았다.
우리는 근 10여 년 간 가장 친한 친구였고 나는 그녀의 결혼식의 증인이기도 했다.
그녀는 나만 깨끗하게 끊어냈다.
나를 끊어낸 이후 그녀의 SNS는 행복한 글과 이미지로 가득했다.
그냥 그녀의 인생에서 나라는 사람만 깔끔하게 오려낸 것 같았다.
아니, 그냥 원래 우리가 처음부터 알았던 적도 없던 것 같았다.
우리를 아는 제삼자인 친구는 이런 말을 했다.
힘들게 한 임신이니 이해를 해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때부터였다, 내 기분이 거지 같아진 것이.
너무도 거지 같아서 견딜 수가 없어졌다.
나는 그런 이유로 친구에게 차단당한 것이었을까?
나는 친구를 너른 마음으로 이해해 주어야 마땅한 것일까?
나의 존재자체가 타인의 존재에 위협이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까.
당연히 아니다.
나는 그 친구의 결정을 이해해 줄 필요가 없다.
친구는 친구의 결정을 했을 뿐이고 그냥 우리의 관계가 끝났을 뿐이다.
하지만 제삼자인 친구의 해석, 힘든 임신 과정을 겪었으니 이해를 해줘야 하지 않냐는 물음에 한동안을 앓아 누었다.
사실 아직도 힘들다.
나는 너무 남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는 것에 길들여져 있다.
어쩌라고.
내가 겪는 공포는 실제적인 것이고 그래서 죽지 않기 위해 병원의 치료를 받고 있는 상황인데 그걸 숨겼어야 했나?
친구가 힘든 임신을 겪었던 것처럼 나의 불안장애도 힘들고 무서운 것이었다.
난 친구를 이해하지 않을 거다 그 이유가 무엇이 되었건.
기분이 거지 같으니 거지 같다고 느끼고, 표현할 거다.
내 존재를 업신여긴 사람을 더이상은 걱정하느라 아파하지 않을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