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우치지 않는, 고르게 나아가는 삶

당진 삼월리 회화나무

by 복수초


방문일자 2019.01.22


중학교 2학년에서 3학년으로 넘어가는 겨울방학이었다. 아버지와 함께 2박 3일로 충남 내포 여행을 진하게 다녀왔었는데, 정말 아직도 최고의 기억 중 하나로 남아 있는 그런 알찬 여행이었다. 이 여행에서 첫 번째로 방문한 장소가 바로 오늘 소개할 당진 삼월리 회화나무이다.


진입로에서 바라본 삼월리 회화나무


사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노거수이기에 나무 주위를 잘 정리해 놓고 울타리를 설치해 놓았을 것이라고 예상했었는데, 막상 도착하자마자 보니 정말로 평범하고 한적한 마을의 깊숙한 곳에 별다른 표식이나 관리의 흔적 없이 나무가 우두커니 서 있어서 살짝 놀랐다. 이 정도 퀄리티의 노거수라면 마을 한가운데 공터에 떡하니 서 있거나 문화재청(현 명칭은 국가유산청)에서 나무 주위로 공원을 조성해줄 만도 한데, 별로 넓지 않은 가정집 마당에 자라고 있어서 놀랐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래서인지 인위적으로 주위를 정리해서 노거수 공원을 조성하는 방식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이곳 삼월리 회화나무에서는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마을 사람들이 이 오래된 나무의 보호 아래에서 함께 살아가는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달까?


가지가 위와 옆으로 고르게 퍼져있어 너무나도 아름답다.


회화나무는 그 모양 자체가 둥글고 온화해서 기품이 상당한 나무로 유명한데, 이곳 삼월리 회화나무의 경우 지금까지 내가 본 많은 유명한 회화나무들 중에서도 가장 모양새가 고르고 풍성하고 기품이 넘치는 회화나무라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외형이 아름다웠다.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굵은 가지들과 그로부터 계속해서 갈라져나가는 가느다란 잔가지들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채 모든 방향으로 고르게 퍼져나가는 환상적인 광경을 연출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5.94m의 둘레를 자랑하는 육중한 나무 기둥은 마치 500년가량의 살아온 세월을 증명하는 듯하다.


삼월리 회화나무의 유래는 조선 중종 통치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종 때 좌의정을 지낸 이행이라는 문신이 1517년(중종 12년)에 이곳에 내려와 집을 지었는데, 이때 자손의 번영을 기원하고자 이 회화나무를 심었다고 전해진다. 이행의 묘소는 삼월리 회화나무 바로 뒤편의 야트막한 산에 자리해 있다. 그래서 이 나무의 수령은 약 500살 정도로 추정되고, 높이 32m에 기둥 둘레 5.94m라는 거대한 크기는 이러한 500년가량의 세월을 증명한다.


한겨울 찰나의 햇살은 회화나무가 풍기는 분위기 자체를 바꾸어 놓는다.


물론 푸릇푸릇한 새 잎이 가득 올라오는 봄이나 밝은 연둣빛 색감의 회화나무 꽃이 만개하는 한여름에 바라보는 삼월리 회화나무도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아름답겠지만, 나처럼 초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한겨울에 이 나무를 보러 오는 것도 상당히 괜찮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오래된 회화나무의 기풍 넘치는 가지들을 가장 명백하게 두 눈에 담을 수 있는 계절이 바로 한겨울이기 때문이다.


이 당시에는 이렇게 나무 주변에 거추장스러운 시설물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깔끔하게 나무 주위가 정비된 것으로 보인다.


글 앞부분에서도 말했다시피 삼월리 회화나무를 딱 보자마자 놀랐던 부분 중 하나가 나무가 그냥 가정집 앞마당에 놓여 있고 주변에 낡고 거추장스러운 시설물들이 많아서 이 나무가 관리를 제대로 받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던 부분인데, 이 글을 작성하면서 카카오맵 로드뷰로 삼월리 회화나무의 2023년 10월 경관을 확인해 보니 다행히도 나무 주변이 싹 다 깔끔하게 정비된 것을 볼 수 있었다. 마치 공원처럼 깔끔하게 주위가 정비되었고 내가 방문했을 때는 당연히 없었던 주차 공간도 마련되어서 놀랐다. 그래서 앞으로 이곳 삼월리 회화나무를 방문하시는 분이라면 내가 19년 1월에 찍은 위 사진들 속 경관과는 매우 다른 깔끔한 모습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다시 당진에 간다면 이 삼월리 회화나무도 또 한 번 보고 싶다. 기풍 넘치는 가지들이 온전히 드러나는 겨울의 회화나무는 이미 봤으니 다음에는 봄이나 여름에 방문해서 신록으로 가득한 풍성한 삼월리 회화나무를 두 눈에 담아보고 싶은 마음이다.


푸르른 회화나무를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마치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고르게 퍼져나가는 삼월리 회화나무의 가지들처럼 나도 그러한 삶을 살아가야겠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다가 한쪽으로 치우쳐 결국은 무너져내리는 그런 삶이 아닌, 모든 방면으로 조금씩 나아가 결국은 풍성함을 이루는 그런 알찬 삶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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