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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도르 Jul 26. 2020

그냥 한 판을 깨는 것

인생 뭐있냐_0706

할 줄 아는 게임이 이 것 밖에 없다

저는 게임을 정말 못합니다. 못하니까 싫어하겠죠. 아무리 제가 관심 없는 분야라도 자꾸 지니까 꼴도 보기 싫더라고요. 그런 제가 딱 하나 좋아하는 게임이 있는데요, 테트리스도 아닌 '사천성(상하이마작)'이라는 게임입니다. 카드놀이 같은 건데 같은 그림의 패를 연결해서 없애는 게임입니다. 이 게임을 제가 왜 좋아할까요? 잘해서? 는 아닙니다. 등수랑 상관없이 이 게임은 싫어질 만하면 한 단계씩 올라갑니다. 19판 실패하고 더럽게 짜증날만 하면 한판을 깨는 거죠. 그래서 한 판만 더 하다 보니 밤을 새우게 되는 겁니다. 이게 도박의 심린 가요.


19번 같은 판이라니 진짜 더럽게 못하죠. 근데 저는 이상하게 이 게임은 재밌더라고요. 하트만 많으면 언젠가는 한 판을 깰 수 있거든요. 잘하는 사람보단 느리지만 한 판 한 판 깨 가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속도가 관계없더라고요. 가끔 등수 같은걸 눌러보면 제 깨톡 친구들 중에 막 엄청 점수 높은 친구들이 있어요. 명예의 전당 이런 거. 그걸 보고 저는 '아 얘를 깨야겠다'가 아니라 이런 생각을 합니다. '아 얘도 어지간히 심심하구나'


이런 제가 더럽게 못하고 싫어하는 게임이 있어요. 카트라이더나 자동차 경주, 막 긴박한 거 있잖아요. 배경음악이 심장 엿가락 만들고 지면 죽을 거같이 쫄리고 그런 게임 말입니다. 당장 짧은 순간에 장애물도 피하고 벽에 부딪히고 저 차에서 보내는 물폭탄 터뜨리면서 빨리도 가야 하는데 메달도 먹어야 하고요. 막 정신이 없어요.  근데 또 사천성을 지루해하고 이런 긴박하고 쫄려죽을것 같은 게임을 즐기는 친구들이 있어요. 저랑 안 맞아요. 


자 여러분, 저는 게임만으로도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겠더라고요. 저는 속도를 포기하고 방향을 주시하면서 한 번에 여러 가지는 못하겠고 한 번에 한 걸음씩 해나가는 스타일 이더라고요. 사는 게 더 힘든 스타일 있잖아요. 똑같은 점수가 되려면 잘하는 애들이 2판 할 때 전 19판 해야 하거든요. 근데 19판 하는 동안 다른 사람과의 비교나 장애물 같은 게 없으니까 그냥 몰입하는 거예요. 희한하게 그래요. 아 진짜 난 게임에 더럽게 소질 없네 안 해!!! 하고 생각하는 순간 정말 신기하게 한 판을 깹니다. 그저 내가 한 판을 깨는 것에 몰입하는 거죠. 왜 결국 한 판이 깨지는 걸까요? 몰입을 하면 제가 19판을 하는지 29판을 하는지 카운트하지 않거든요. 한 판이 깨질 때까지 나도 모르게 몰입하는 거죠. 이렇게 깨다 보면 또 1등인 친구가 잠시 쉴 때 제가 친구의 등수를 깨기도 합니다. 그렇게 보면 지금 당장 친구에게 게임 몇 판 아니 몇십 판 지고 있다고 해도 크게 문제 될 것 없죠. 그냥 내가 게임을 즐기는 거니까요.


인생이 그런 거 같아요. 가끔 둘러보고 비교할 때도 있겠지만 ‘일단 나의 한 판을 깨기 위해 몰입하는 것’


게임을 주야장천 할 때도 있고 쉴 때도 있고, 또 내가 쉴 때 내 친구는 점수를 쫙쫙 올리기도 하고 그 친구가 쉴 때 또 제가 따라잡기도 하고요. 여기서 진짜 중요한 건 게임을 하느냐 안 하느냐와, 각자 좋아하는 게임이 있다는 것, 인 것 같아요. 등수가 아니라.


저는 긴박한 게 싫고 오래 걸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트만 많이 모으면 돼요. 근데 제 친구는 사천성은 안 해서 하트는 필요 없고요,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하겠죠. 뭐가 나쁘다 좋다는 없어요. 같은 세상이지만 이 세상을 사용하는 각자의 방법이 다른 거죠. 저는 측면 돌파, 친구는 정면돌파.


정면돌파에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 측면 돌파를 하면 뭔가 답답할 거예요. 반면 저 같은 사람이 정면돌파를 하면 게임이건 인생이건 다 포기하겠죠.


여러분은 어떤 게임을 좋아하시나요? 속도전? 지능 전? 롤플레잉? 파이팅?


인생은 게임처럼 단순하진 않아요. 하지만 적어도 어떤 게임을 좋아하느냐는 나의 선택이죠. 어떤 인생을 선택하고 즐길 것이냐, 그리고 어떤 한 판을 얼마의 시간을 들여 깰 것이냐는 오로지 나만의 결정입니다. 즉 각자의 게임인 거죠. 남이 무슨 게임을 하든 나랑은 일절 상관없어요. 1등을 하면 보상이 있겠죠. 하지만 1등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아쉽게도 시간은 흐르기에 평생의 영광이 될 수 없어요. 즐기다 보면 1등도 하고 2등도 하고 친구와 게임에 관한 대화도 하고 가끔 누가 더 심심한가 훔쳐보기도 하고요. 내가 즐기는 것들로 인해 세상을 많이 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직 좋아하는 게임이 없다고요?


좋아하는 게임을 찾기 위해선 이게임 저게임 기웃거리면 됩니다. 지웠다 까는 거 스마트한 우리에게 일도 아니잖아요. 마음에 들지 않는 게임을 하고 있다면 과감하게 지우셔도 좋습니다. 막상 지우고 나면 생각보다 홀가분한 자신을 발견할 거예요. 마음에 드는 게임을 찾아 기대도 등수도 없이 즐기다 보면 대왕을 쓰러뜨리는 날도 옵니다.


오늘 당신이 깨야할 한 판은 무엇이었나요?




쓰는 아도르

사진, 글, 캘리그라피 adore
블로그 : http://jwhj0048.blog.me
인스타그램 : http://www.instagram.com/adore_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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