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리뷰
작년부터 “가을감성”은 발현되지 않고 있다.
가을이 되면 좀 더 인간다움을 표현할 수 있어서 내심 기대되는 계절이건만 어찌된 일인지 가을의 감성은 사라져버렸다. 시대적 배경(세계정치, 세계경제)이 문제인지 환경(짧아진 가을? 극단적 온도변화?)이 문제인지 모르겠다. 무엇이 되었던 간에 넘쳐나던 가을 메모들이 사라져버린 몇 년은 내 사고방식의 건조하고 윤기없음에 고민을 하게 된다.
정성적 사고와 정량적 사고의 밸런스를 중요시 한다. 두 성향이 어느정도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오판과 오류”가 넘치게 된다.
인생에 있어서 젊었을 때는 정성적 요소(정확히는 무데뽀와 우악스러움)가 넘쳐났었지만 30대 초반부터는 직업상 정량적 사고(Data, Flow, State, Context)가 중심이 되었다. 그리고 50대가 넘어가면서부터는 두 성향의 조화가 올바른 결정을 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깨닫게 되었고 밸런스를 맞추고자 노력하며 살았다. 특히 가을에는 “감성과 무작위를 인정”하며 세상을 인정하는 연습을 했었다.
감성이 포함된 메모는 내 사고방식을 분석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지금은 어떤 상황이며 앞으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 지, 평소 적어놓은 메모들을 통해 분석할 수 있다. 내게있어 메모는 소스코드이자 Log를 찍어내는 도구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의 메모를 통해 가을을 어떤 식의 사고하고 느끼는 지 분석할 수 있다.
작년부터 감성이 메말랐던 이유는 “경제상황”이 원인이었을 것 같다. IT에서 개발업을 해먹고 사는 사람들 모두가 “고난의 행군”이었다. AI 때문에 IT가 힘들다는 말은 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R&D 삭감의 나비효과는 1년이 지난 후,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그리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본질은 내수의 투자가 전멸했고 글로벌도 크게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일이 줄어든 것이 문제이다. [언론매체]의 말처럼 일할 사람의 효율성이 갑자기 극대화 되서 사람이 필요 없어진 것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메마름의 원인은 프로젝트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며 명백한 원인은 R&D 삭감에서 시작되었다. 더불어 교육 및 컨설팅도 영향을 받고 있다.
[연쇄 긍정마 마인드]
날씨가 갑자기 겨울이 되었다. 가을추억? 가을이 멋진 풍경을 언제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저번주까지 궁금했건만 갑자기 날씨가 겨울이 되었다.
그러나 추운 겨울의 날씨에도 주위 지인들의 얼굴은 몇 달전 뜨거운 여름의 열기만큼 달아오르고 있었다. 코스피 4000 돌파. 가족, 친지, 지인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뻐하는 것은 특정 태마주가 올라서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물론 이 와중에도 손해를 보는 지인 몇몇이 있기에 그들에게 덕담을 해주었지만(천재들은 원래 시련이 있는 법이야~) 도리어 고도의 디스로 오인받아 증오의 눈빛을 받았다.
추워진 가을날씨에도 긍정의 힘을 얻고 있는 이유는 코스피 4000 때문만은 아니다.
34년간 해외에서 살고 있는 우리 누나가 보내준 4잎 클로버 + 5잎 클로버의 조합이 뭔가 우주의 기운을 불러오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정성적이고 모호한 것들에 강한 거부감을 느끼고 살고 있지만, 이익을 위해서라면 정성적 요소에 의미를 두기 시작했다. 이런 나님의 변화를 보면서 대한민국 정치가 샤머니즘에 빠지는 이유를 깨닫기 시작했다.
미신의 힘은 돈이라는 권력에서 시작된다.
[타고난 까칠 마인드]
문서를 정리하러 길에 잠시 편의점에 들려 주식인 “삼각김밥”과 “우유”를 먹고 있었다. 그 때 동네 아저씨인지 지나가던 등산객인지 모를 아저씨가 들어와서 막걸리 하나 결제하며 알바생에게 세계사 공부(?)를 시키고 있었다. 알바는 당황해했고 나는 유심히 처다보다가 나왔다. 그 아저씨가 정신이 이상한 것인지 정말 세계사에 진심인지 판단이 안되었다. 단지 의심되는 부분은 막걸리를 웅켜쥐고 츄리닝과 등산복의 절묘한 조합을 한 채, 프랑스 역사에 대해서 듣던말던 혼자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의 타고난 까칠함이 잘못된 상황판단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개입하지 않고 나왔다.
핸드폰으로 노출된 유튜브를 보았는 데, K대의 총장께서 JMS와 깊은 관계가 있다는 청문회 내용이었다. 8, 90년대 대학생들에게도 유명했던 JMS. 아직까지도 생존한 것을 보면 대단한 사이비가 분명하다. 아가동산이나 기타 사이비들은 90년대 초에 철퇴로 사라졌건만 어떤 시스템과 이익구조를 가졌기에 롱런을 하는 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무인까페에서 기획서를 정리하고 다시 집으로 들어오니 집 안이 난리가 났다. 딸래미가 작년 옷을 버린다고 마루에 수해복구 긴급방송에서나 볼 수 있는 데코레이션을 연출해놓았다. 딸래미의 옷관리에서 일반적인 여자들에게 흔하게 볼 수 있는 과도한 “소비욕”이 보인다. 딱 그정도이다. 단지 내가 옷을 다루는 방법이 “마하트마 간디”보다 3~4배정도 과소비하는 수준이기 때문에 참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메모는 아니지만 유튜브에서 노출되는 쇼츠에서 과거의 기억들이 되살아나고 있다. 우리세대의 춤(?)과 음악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엠씨 해머와 바비 브라운을 빼놓을 수 없다(강남역 당코, 이태원 비바체라는 이름은 아직도 친숙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들의 카타고리인 “뉴잭스윙(New Jack Swing)”을 회상하게 된다.
그리고 요즘 들어 부쩍 노출되는 동영상이 있는데, “제이블랙”의 춤들이다. 왜 노출되는 지는 모르겠다. 이 사람의 춤을 보면서 많이 놀랬다. 이렇게 파워풀 한 댄서가 있었나? 바비 브라운이나 밀리 바닐리는 “꺽기”가 놀랍지만 부드러웠는데, 이 사람의 춤은 너무 강해서 충격적이었다.
다시 뉴잭스윙 뮤지션으로 돌아가서 그 당시도 우리나라에는 선두주자(?)라고 말할 수 있는 뮤지션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현진영이다. [우정의 무대]에서 남자가수가 나왔을 때, 병사들이 통제하기 힘들정도로 광분한 것은 현진영이 유일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듀스도 뉴잭스윙의 전도사(?) 느낌이었는데 요즘들어 표절이슈 동영상이 나오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표절보다는 장르의 특성이라고 본다. 단지, 안무가들의 눈에는 표절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일반인의 눈에도 안무가 표절이라고 느껴지는 곡은 다음곡이 아닐까 한다.
AI를 도구 이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러다보니 지인들의 질문과 대화에서 AI에 대한 판타지가 난무할 때마다 “대화”를 어떻게 이끌어나가야 할 지 “난감”할 때가 있다. 최근에 몇 몇 사람들에게 내 능력으로써는 최고의 표현력으로 다음과 같이 AI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인류역사가 존재하기 전에 말이야, 원숭이 종족들이 있었는데 어떤 원숭이 종족들이 돌로 된 무기를 들고 다른 종족을 멸종시켰데, 실제로 내가 본 것은 아닌데 그렇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말이야 그러면 [돌이 다른 원숭이를 죽인거야? 아니면 돌을 든 원숭이들이 멸종된 원숭이들을 죽인거야?]
있잖아?
인류의 기술(지식)이라는 것이 “기술(지식)자체”가 사람들을 멸종시킨 적은 없어. 그 기술이나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거나 멸종시킨 것이지, 그리고 인류역사에 매번 새로운 기술이 나오잖아? 그럴 때마다 2종류의 닝겐들이 나와. 하나는 기술을 숭배하는 사람들이고 하나는 기술을 활용하여 숭배하는 자들을 지배하는 사람들이지.
AI도 그래
그러니 앞으로 남은 날도 적지않으니까 공부 좀 해봐.
AI는 툴이다. 매우 공격적인 툴이다. 그러므로 내가 조직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툴의 사용법을 극대화하여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AI 리터러시(문해력)의 핵심이다.
개발자에게 AI는 필수도구이다.
그리고 얼마나 활용할 수 있는 지, 그리고 어디서 사용하지 말아야하는 지를 알아야 AI를 지배할 수 있다. 그런 관점으로 대부분의 개발자들이 AI를 활용한 소프트웨어 개발법에 대해 공유를 하고 있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Vibe coding 같은 약장수 같은 과장]보다는 “프롬프트를 통한 자동화 가능성”에 대한 내용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