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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득 Jan 21. 2024

우울의 근원

240121

 나는 미망인이 되었다. 어젯밤 12시 37분을 기준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뇌가 절반 잘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타인의 시선을 위해 그래야만 할 것 같다는 의식도 아주 조금은 있었다. 하지만 진심으로 무기력함을 느꼈다. 끝없이 가라앉는다는 표현이 이런 것일까 생각이 들었지만 세상은 내가 가만히 있지 못하게 괴롭혔다. 그전까지 나는 미망인이라는 단어의 무게감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곧 나의 불행을 세상에 증명해야 했다. 가슴 깊숙이 칼날이 박힌 것만 같다고 소리 내어 울어야 했다. 때로는 홀로 울고 싶었지만 그런 곳에 낭비할 우울조차 없게 만들었다.


 직접 땐 등본을 한 무더기 들고 마치 돈에 환장한 여자처럼 온갖 기관을 돌아다녔다. 뭐가 그렇게 자랑스러운지 남편이 죽었다는 말만 백번 가까이하고 다녔다. 표정을 최대한 일그러트리지 않으려 미소를 쥐어짜 냈다. 사망신고와 세대주를 변경하며 한번 크게 참았고 보험금을 받으려 보험사를 찾아갔을 때는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어졌다. 당장 내가 굶어 죽더라도 이 돈은 중요치 않았다. 막상 배가 고파 오면 오기로 참다가도 꾸역꾸역 밥을 넘겼지만 그게 내가 그를 기리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고 행했다.


 그 이가 남긴 알 수 없는 서류들과 빚이 가득한 통장, 얼마의 가치를 가진 지도 모르겠는 가게의 재고들이 나를 마지막까지 괴롭혔다. 그것들이 점차 나를 옥죄어왔지만 결코 그가 밉지 않았다. 이만한 짐들을 나 대신 지고 있었던 것이라 생각하면 그럴 수 없었다. 물론 빠르게 해치워 버렸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다룰 능력이 없었다. 모든 것을 떨쳐내고 몇 푼 안 되는 돈들을 손에 쥐었을 때 후련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윽고 그런 자신이 몹시 미웠다.


 평생을 보지 못해도 잊히지 않을 것 같은 얼굴이 아른거렸다. 매일 아침 보던 창문 밖 광경이 일그러져 갈수록 그의 얼굴은 더욱 선명해져 갔다. 내 삶은 기생의 삶이었던가. 풍성했던 나무의 양분을 모두 빨아먹고 나서야 나무의 소중함을 외쳐봐야 아무 소용없었다.


 한 달이 지나고 나니 약간은 머리가 차가워졌다. 부동산 문제가 나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돈을 마련하기 위해 오랫동안 들고 있던 땅을 팔아버렸다. 돈이 급한 것은 아니고 땅을 오래 들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이 땅이 나에게 막대한 부를 가져다주지 못할 것을 알았고 설령 그렇다 해도 이 모든 것이 허례허식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이 땅만 보내주면 내게 그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다. 그저 가슴에 묻을 뿐이다.


 1년이 지나고 그의 제사를 처음 지내며 다시 눈물을 흘렀다. 하루 종일 울던 1년 전 오늘에는 눈물의 무게를 몰랐다. 나를 짓누르고 주저앉게 만드는 원인이 내 안에서 나온 눈물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안에 무엇이 담겨있는지 모르지만 내 마음대로 정했다. 그 안에 담긴 것은 그리움이며 사랑에서 나왔다고 말이다.





*모든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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