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퇴근길에 과자를 자주 사 왔다. 마트에 들어가면 계산대 가까이 수북이 쌓여있는 과자봉지 세 개 묶음 같은 것들을 자주 사 오셨다. 지금은 고전과자가 되어버린 맛동산, 웨하스, 그리고 빠다코코낫 같은 종류가 대부분이었다. 나도 퇴근하면서 종종 뭔가 사들고 집으로 갈 때가 있다. 주로 아내가 식재료를 부탁하면 마트에 들러 식재료를 사가는데, 그때마다 괜히 이것저것 더 집어서 계산대에 올려놓곤 한다. 나의 경우엔 많이 샀던 것이 수박이다. 아내가 수박을 좋아해서, 또 수박이 자랑인 마을에 살고 있어서 여름 내내 수박이 떨어질 즈음이 되면 늘 퇴근길에 수박을 집어 들고 귀가하곤 했다. 어린 시절 아빠가 사 왔던 과자와 내가 사들고 들어가는 수박이 동시에 떠오른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내와 아이들에게 작은 기쁨을 주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하루를 맺으며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표현이었을까. 돌아보면 아빠가 과자를 사 온 기억은 있는데, 같이 둘러앉아서 과자를 먹거나 이야기를 나눈 기억은 없다. 과자는 어느 서랍에 쌓여 갔고, 대화의 매개가 아닌 그냥 간식으로만 존재했다. 나는 아빠가 가족들과 함께하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나와 동생이 유아기를 지나고 청소년이 되어갈 무렵에는 부모님만 외출하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종종 나와 동생이 집을 보고 있어야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아빠는 쪽지를 남겨 두곤 했다. 아빠는 문장을 아름답게 쓰거나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아빠는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이었다. 약간 기울여 쓴 글씨, 컴퓨터로 찍어낸 듯 반듯한 글씨로 별 내용 없는 메모를 늘 남겨두고 외출하셨다. 메모 내용은 대게 잘 다녀올 테니 밥 잘 챙겨 먹고 있으라는 간단한 내용이었다. 메모와 함께 밥을 차려 보자기로 덮어두거나, 밥을 못 차려준 경우나 밥때가 아닌 경우에는 용돈을 올려두고 가셨다. ‘이걸로 맛있는 거 사 먹고 놀고 있으라’는 메모와 함께.
내가 기억하는 아빠는 따뜻하고 소박한 사람이다. 크고 비싼걸 턱턱 사주는 사람은 아니지만, 매 번 조금씩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퇴근길에 뭐라도 집에 사들고 들어오던 아빠의 모습, 외출할 때마다 써 주셨던 반듯한 글씨가 담긴 메모 같은 것들이 기억이 난다. 그때는 그런 것들이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지나고 나서 보니 아빠의 노력이요 표현이다. 어린 나는 아빠가 안 해주는 것에만 집중했다. 아빠는 늘 표현했는데 내 눈은 영 딴 데 있어서 아빠가 표현하는 사랑을 알아보지 못했다.
아빠가 해줬던 음식들이 기억이 난다. 엄마가 한나절 외출을 하는 일이 생기면, 아빠가 요리를 하곤 했다. 아빠 요리는 어딘가 엉성했지만 맛은 좋았다. 배추에 부침가루를 대충 묻혀 구운 배추전, 계란 후라이와 마가린을 섞은 밥, 물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따라버려서 꾸덕한 짜파게티, 면이 다 익기도 전에 불을 끄고 담아낸 꼬들한 라면. 엄마에게선 절대 나올 수 없는 요리들을 주로 선보이셨다. 엄마가 외출을 하더라도 대체로 끼니를 준비해 주고 가셨기에 매번 아빠가 요리를 하진 않으셨지만, 가끔 임기응변이 필요할 때나 간식이 고플 때 아빠는 이것저것 만들어 주시곤 했다. 지금에야 레시피도 잘 나와있고, 유튜브를 열면 내가 만들고 싶은 요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알려주는 사람도 많아서 적당히 먹을만한 요리를 만드는 일이 어렵지 않다. 그래도 주로 해주는 밥 먹고 밖에 나가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요리가 만만한 일이 아니다. 나는 레시피를 다 보고 순서대로 따라 해도 아내가 하는 것보다 시간이 곱절은 더 걸린다.
그때 아빠도 그랬겠지. 애들이 배고프다 하니 뭘 주긴 해야겠고, 요리를 자주 했던 것도 아니니 막막했을 거다. 어깨너머로 엄마가 하는 걸 봐둔 걸 그때그때 했겠지. 찾아볼 요리책도, 물어볼 데도 없으니 혼자 해야 했을 거다.
나는 아빠 요리가 좋았다. 플레이팅 같은 걸 기대할 순 없었지만 최소한 맛은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해주지 않는 음식이라는 점도 특별함을 더했다. 요즘 말로 하면 ‘길티 플레저’ 정도 될까. 외출에서 돌아온 엄마는 ‘왜 이런 걸 먹이냐.’고 핀잔을 주었지만, 그런 걸 같이 나눠 먹는다는 감각도 좋았다. 맛있게 먹고 배 안 곯았으면 됐지 뭐. 아빠 요리는 맛있었다. 부침가루 묻은 배추를 젓가락으로 집어 팬에 올려놓는 모습이 선하다.
아빠는 크리스마스 같은 큰 행사(?) 날에도 걸맞지 않게 소박한 선물을 줬다. 머리맡에 놓인 양말에 들어있던 네모난 와플 과자가 기억이 난다. 아빠는 아기자기한 것들을 자주 줬다. 비싼 건 ‘엄마한테 사달라 그래.’라고 덧붙이면서.
아빠는 본인도 거창한 뭔가를 가져본 적이 없다. 이를테면 금시계라든지, 대대로 내려오는 만년필 같은 것들 말이다. 사려고 마음먹었으면 하나쯤 가지는 거야 그리 어려운 일이었을까만은 아빠는 그런데엔 관심이 없었다. 예물 시계가 있었던 것도 같은데, 차고 다니는 걸 본 적은 없다. 아빠는 물건 대신 기억을 남겼다. 비싼 물건 한 두 개를 ‘아빠의 유품’으로 간직하며 다니는 것도 좋겠지만, 작고 소소한 것들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아빠도 좋다. 아빠의 따뜻함은 대형마트 속 번들 과자봉지 속에, 내가 집에 갈 때 사가는 수박 속에, 세상에 작고 고마운 모든 것들 속에 들어 있다.
아빠도 가끔씩은 값비싼 물건을 갖고 싶은 때가 있었겠지. 누군들 그런 마음이 없었으랴. 다만 그 마음보다 처자식이 더 중해서 아빠는 그런 것들을 뒤로 미뤄 두셨겠지. 아빠가 이렇게 빨리 가실 줄 알았더면 좀 무리를 해서라도 좋은 걸 드렸을 텐데. 이제 나도 그런 것 한 두 개쯤 사드릴 수 있는데. 아빠가 나에게 준 것은 아빠의 인생 그 자체였다. 대가를 지불하고 살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라 자신의 삶 자체를 우리에게 주었다. 나는 그걸 받는 줄도 모르고 거저 받아 다 써버렸고, 돌아보니 갚을 수도 없는 지경에 있다. 아빠가 계셨어도 갚을 수 없고, 지금은 계시질 않으니 더더욱이나 갚을 수 없다. 부모는 대체 어떤 존재이길래 자기의 전부를 주고도 아무것도 주지 않은 것 같을 수 있는 걸까. 나도 부모가 되어 이제야 조금 헤아려볼 뿐이다. 가수 김진호 씨의 가족사진이라는 노랫말 몇 구절이 생각난다.
나를 꽃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어 버렸던
그을린 그 시간들을 내가 깨끗이 모아서 당신의 웃음꽃 피우길
김진호, <가족사진>
아빠는 일상 속에서 가족들을 늘 생각하며 지냈다. 거창한 걸로 치면 대단치는 않아도, 아빠는 생활 속에서 늘 가족을 생각하는 분이었다. 퇴근길 마트에 들러 3 번들 과자봉지를 집는 아빠의 모습, 메모를 정성스럽게 쓰는 모습, 낡은 지갑에서 지폐 몇 장을 꺼내 고이 올려두는 모습, 어색하지만 애들 주려고 뭘 만드는 모습이 주르륵 스쳐 지나간다.
글을 쓰면서 아빠의 옛 모습을 찾아보다가 엄마가 촬영한 동영상 하나를 발견했다. 결혼기념일을 즈음하여 두 분이 해변으로 여행을 갔나 보다. 엄마가 “결혼 28주년 기념 한 마디 하시죠.”하니 아빠의 첫마디는 “28년 동안 행복했어.”라고, 그다음 마디는 “아들 딸이랑 행복하게 잘 살자.”라고 했다. 아빠의 말은 그의 글만큼이나 ‘별 내용이 없지만’ 나는 그 속에 담긴 소박한 진심에 울컥한다. 뭘 하든 어느 곳에 있든 가족들을 떠올렸던 아빠, 나는 그 말이 진심이었을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