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하면 떠오르는 한 장의 사진이 있다. 사진 속에는 서른 한 살 아빠가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다. 아빠의 양 팔에는 아기가 한 명 안겨 있는데, 그게 나다. 아빠는 지금의 나보다 3년 일찍 아빠가 되었다. 아기는 아직 젖먹이로 보인다. 아기가 어려 많이 안아줄 기회가 없었던 때문인지, 생계를 꾸리느라 육아는 전적으로 엄마의 몫이었던 때문인지 아빠가 양팔로 나를 안고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초보자의 느낌이 물씬 난다. 무슨 이유든 간에 아빠가 나를 안는 장면은 엄마에게 있어서 ‘기록할만한’ 장면이었음은 틀림없다. 아기를 안아 미소를 지어 보이며 사진까지 찍어 인화해서 보관할 정도니 말이다. 아빠가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 사진의 당사자인 나도 사진 속 상황에 대해 기억하는 바가 없다. 나의 기억은 사진을 보고 이후에야 아빠를 되짚어 보며 불러오는 것이다. 서른 한 살 아빠와 갓난아기인 나, 그리고 렌즈 뒤에 있을 스물 여덟살 엄마를 떠올려 본다.
아빠는 흰색 메리야스, 일명 난닝구를 입고 있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 본다. 아마도 아빠는 아기가 너무 작다거나, 자기가 잘못해서 아기가 다치면 어쩌나 조심하는 마음과 두려운 마음 반반으로 그동안 아기를 자주 안아주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빠는 자기가 아기를 잘못 안아서 다치게 할까 걱정했으리라. 스물 여덟에 첫째인 나를 낳은 우리 엄마, 평소 조심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우리 아빠가 나를 낳아 두고 얼마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을지 상상하면 미소가 지어진다. 아빠는 조심하느라 처음엔 나를 잘 안아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씩 지나고, 아기도 조금씩 자라면서 엄마는 계속 괜찮으니 안아보라고 아빠에게 강요와 격려를 섞어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나를 안고 멋쩍게 웃으며 사진에 찍힌게 아닐까.
두 장면을 머릿속에 나란히 떠올려 본다. 하나는 서른 한 살의 아빠가 나를 안고 카메라 앵글을 향해 미소짓는 장면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서른 셋의 내가 첫째 딸을 안고 있는 장면이다. 두 장면을 머릿속에서 살짝 포개어 본다. 아빠에게 내 딸을 안겨드리는 상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