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이르다곤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꽤 이른 나이인 스물 일곱에 아빠를 떠나보내야 했다. 스물 일곱은 어른이긴 했지만 앞으로 닥쳐올 중요한 일들을 많이 앞두고 있었다. 이후 내 삶에 처음 겪는 중요한 일들을 맞딱뜨릴 때마다 아빠가 생각났다. 첫 취업을 했을 때가 기억이 난다. 취업을 축하한다며 회사에서 보낸 꽃다발을 보며 아빠를 생각했다. 이제 월급 받으면 ‘치맥’보다 조금 더 비싼 음식도 아빠에게 대접할 수 있을텐데 생각했다. 결혼식날 빈 아빠의 자리를 삼촌 중 한 분으로 채워야 하지 않겠냐는 엄마의 물음에 ‘아빠 자리는 다른 사람이 대신하지 않게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결혼식날 엄마 옆 비어있는 아빠의 자리를 보며 아빠에게 큰절을 할 수 있었더면 참 좋았을 것이라 생각하며 터져나올 것 같은 눈물을 참았다. 아빠는 여자친구 시절부터 아내를 많이 예뻐해 주셨다. 아빠 앞에서 결혼식을 했다면, 기쁨과 자랑스러움을 다 아빠에게 안겨드릴 수 있었을 텐데 생각했다. 첫 딸을 안았을 때도, 딸이 커 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아빠가 생각났다. 하다 못해 중고차를 하나 살 때도 아빠 생각이 났다. 운전 안하는 아빠 대신 실컷 운전해줄 수 있는데, 이제 차량 바퀴가 기울어 질까봐 한쪽에 몰아서 앉지 않아도 되는데 생각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아빠 연배의 사람들을 대하면서도 아빠 생각이 났다. 아직 모르는 게 많다. 아빠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다.
후회는 끝이 없다. 아빠는 비록 함께하고 있지 않지만, 어디선가 보고 계실 것이다. 적어도 내 가슴 속에는 여전한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신다. 그래도, 딱 하루나 한 시간만이라도 아빠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아빠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잘 못했다. 경상도 사람이 표현을 잘 못한다고 하더니 딱 그말이 맞다. 할아버지도 그랬고 아빠도 그랬고 나도 그랬다. 말로, 더구나 남자끼리 ‘사랑한다’고 하는 건 대개 ‘남사스러운’ 일로 여겨졌다. 아빠의 사랑한다는 말은 책상 위 놓인 용돈, 지폐 몇 장과 메모로 은근히 표현 되었고, 아들의 그것은 새 면도기로 드러났다. 때로는 ‘밥 먹었나?’로 표현되었고, ‘치맥 할까?’ 로 표현되기도 했다. 직접적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게 낯설었다. ‘뭐 그걸 꼭 말로 해야 하나?’ 생각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니 사랑한다는 말을 못 들려드린게 제일 사무쳤다. 아빠의 시신을 입관할 때, 장의사가 ‘마지막으로 할 말 있으면 하시라.’고 해서 오열을 하며 말했던 기억이 난다. “아빠 사랑해요.”, “이 말 너무 늦어서 미안해요.”
아빠는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로는 거의 표현하지 않았지만, 나는 아빠의 사랑을 알고 느끼고 있었다. 사랑은 생활 속에 경작되는 거라고 하지 않는가. 아빠의 사랑은 내 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다. 퇴근 후 사오시는 3번들 과자봉지 속에, 이따금 쥐어 주시는 지폐 몇 장 속에, 반듯하게 기울여 쓴 메모 속에, 나를 자랑스러워 해주는 그 마음 속에 들어있었다. 다만 말이든 행동이든 간에 내가 당신께 표현한 사랑이 너무 작을 뿐이다.
생각해보니 나 뿐만 아니라 아빠도 ‘-텐데.’ 하는 후회를 하고 있을 것 같다. 아마 내가 하는 후회랑 거의 비슷한 내용이 아닐까. ‘좀 더 표현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종류의. 모든 사랑의 끝은 어느정도의 아쉬움과 후회를 남긴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 ‘후련’함을 느끼는 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아빠는 평생 나에게 모든 것을 다 주었음에도 좀 더 줄 걸 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모든 죽음이 어쩔 수 없이 후회를 동반하는 것이라면,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편이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편보다 열 배는 낫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모든것을 주어도 더 주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후회하는 반면에, 미워하는 마음은 내 속에 응어리가 되어 한 사람의 죽음 이후에는 영영 풀지 못하고 뭉쳐 버리고 만다. 돌아가신 아빠에게 후회하느냐고 물어볼 순 없다. 다만 아빠가 살아 계실 때 나에게 보여 주셨던 사랑을 미루어, 당신께서도 ‘좀 더 해 줄걸’ 하는 후회를 하고 계실거라고 추측할 뿐이다. 나의 후회 또한 사랑의 후회다. 사랑의 끝에는 아쉬움이, 후회가 남는다.
사랑의 후회라고 이야기 해 봐도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이다. 아빠가 계셨으면 제주도 여행도 다니고, 손녀딸도 안겨 드리고 했을 것이다. 아내랑 아빠랑 죽이 잘 맞는 걸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후회는 어느 때에 맞는 죽음이든 비슷하게 가졌을 것이다. 내가 아빠보다 먼저 떠났다고 해도 아빠는 이같은 후회를 하셨으리라. 아빠는 이곳보다 더 좋은 곳에 계실 것이다. 내가 대접해 드릴수 있는 것보다 더 맛있는 것을 드시고, 손녀 딸도 아주 가까이서 지켜보고 계실 것이다. 아빠가 안녕했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쓰는 글도 사랑이라고 믿고 싶다. 사랑은 충분함이 없기에 주어도 더 줄 수 있다. 아빠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글을 쓰는 것도, 사라져버리는 기억의 조각들을 글로 새겨 넣는 것도 모두 아빠를 잊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더 그 마음을 가지고 살고 싶기 때문이다. 아빠는 지금 내 곁에 없지만, 우리가 서로 사랑했다는 걸 아실 것이다. 나는 아빠가 내 마음속에 여전히 살아 있고, 여전히 내가 아빠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당신께서 아실 거라고 믿는다.
글을 쓰며 죽음과 삶, 사랑과 미움 같은 감정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삶이 죽음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 삶의 죽음이 다른 삶을 시작시키기도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또한 삶과 죽음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다. 아빠의 죽음은 내 삶의 새로운 시작이 되었다. 아빠는 죽음으로써 나에게 새 삶을 선물해 주셨다. 사랑은 시공간과 죽음까지도 초월한다. 약간의 회한과 아쉬움을 남기지만 사랑의 아쉬움과 미움의 후회는 다르다. 사랑은 모든 것을 주어도 언제나 더 주지 못한 것을 생각하기에 아쉽다. 반면 미움은 상대의 존재를 내 마음에서 지워 버리고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 버린다. 미움은 후회하지 않는다. 아빠에게 하지 못한 마지막 말이 ‘사랑한다.’여서, 내가 아빠를 사랑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더 사랑하지 못했음을 후회하는 건 사랑 뿐이다. 나의 마지막 말이 ‘미안해’ 였다면, 아빠를 미워하며 떠나 보내야 했다면 나는 이 글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아빠가 보고 싶다. 내 짧은 기억력과 글솜씨로는 아빠를 모두 글자로 재현해낼 수가 없다. 아빠의 시간은 이미 멈춰서 무슨 수를 써도 아빠와 함께 할 수는 없다. 비록 몸은 함께하지 못하지만, 글을 쓰는 동안 아빠를 생각했고 그와 함께였다. 아쉬움을 남긴 채 아빠로 인해 시작할 수 있었던 이 삶을 다시 새롭게 진하게 살아볼 생각이다. 사랑하지 못한 아쉬움이 덜 한 인생, 원없이 사랑하는 아주아주 깊은 인생을 살아볼 생각이다. 아빠를 쓰면서 아빠가 내게 남긴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내 인생을 다 살고 언젠가 하늘나라에서 아빠를 만나면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