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도 처음부터 아빠였던 건 아니다

by 정필

이 글들은 내 나름의 애도이다. 8년 전부터 지금까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아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8년 전엔 슬퍼하는 엄마보다 더 슬퍼하지 않기 위해 아빠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떠난 아빠도 마음이 아팠지만 남은 엄마를 돌보아야 했다. 동시에 나는 내 삶을 살아가야 했다. 직장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고,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아 살아야 했다. 그렇게 슬픔을 감춰둔 채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살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빠가 되고 나니 나를 낳았을 그때의 아빠를 조금씩 더 생생하게 그리워하게 되었다. 엄마에겐 아들로,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 아내에겐 남편으로 살다 보니 종종 어려움을 만나게 된다. 엄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곤 하지만 엄마에게 얘기할 수 없는 것들도 많았다. 엄마의 일은 걱정이 아니던가. 혹시나 엄마를 너무 걱정시키지나 않을까 조심스러워 말하지 못하고 혼자 삭인 이야기들도 많다. 나는 그때마다 아빠를 떠올렸지만 순전히 나를 위해 아빠를 떠올린 것이다. 나의 고뇌와 갈등을 이해해줄 사람, 한 때 나와 같은 처지에 놓여 있던 사람을 찾았던 것이다. 아빠가 살아 계셨다고 한 들 지금 생각하는 것만큼 아빠가 날 깊이 이해해줄 수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 세대가 다르고 처한 환경이 다르다. 그치만 아빠의 존재 자체로 나는 위로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내 삶을 한 걸음씩 헤쳐 나가며, 힘겨운 지점마다 나는 아빠를 떠올렸다.


나를 좀 이해해줄 사람이 있었으면 하고 아빠를 떠올렸는데, 아빠 생각을 하다 보니 아빠를 이해하게 된다. 내 인생의 시작과 동시에 아빠는 아빠로써의 인생을 시작했기 때문에, 나에게 아빠는 원래 아빠였다. 가만 생각해 보니 아빠 인생 57년 중에 30년 세월은 아빠가 아니었다. 아빠가 돌아가실 때 딱 내 나이 만큼만 아빠는 아빠로 살아왔던 것이다. 첫 딸을 낳고 나도 아빠로써의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 아빠도 딱 지금 때부터 아빠가 되어 평생을 사셨구나.’ 아빠 이전의 당신의 삶은 어땠는지, 어떤 꿈을 가진 청년이었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당신께서 아빠가 되어서 아내와 자녀를 위해 무엇을 내어 주셨는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아빠는 그냥 원래 아빠였기 때문에. 아빠의 삶을 되짚어 보면서 아빠가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 주었다는 생각을 한다. 아빠도 꿈 많고 호기심 많은 청년이었을 것이다. 내가 태어나고 나서도 왜 하고 싶은 일이 더 없었겠는가.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는 게 인생 아니던가. 모두에게 시간은 충분하게 주어져 있지 않고, 그보다 좀 적은 대부분에게 돈은 충분히 주어져 있지 않다. 아빠도 가족을 위해 자신의 몫이었던 무언가를 조금씩 더 많이 내어주어야 했을 것이다. 젖먹이인 나를 조심스레, 마치 처음 안아보는 것처럼 안고있던 30대 초반의 아빠와 돌아가실 무렵의 아빠는 다른 아빠일 것이다. 아빠도 처음부터 아빠였던 것이 아니라, 아빠가 되고 나서 더욱 아빠가 되었을 것이다. 점점 자신의 것을 내어주시면서 그의 삶과 가족의 삶이 하나가 되는걸 보면서 말이다.


시간이 있었다면 내가 아빠가 되고 아빠가 할아버지가 되어 우리의 이야기들을 오래도록 했을 텐데. 전해질 수 없는 글을 쓴다. 나는 또 나를 위해 아빠를 불러낸 것인지도 모른다. 없음이 있음을 알게 하고, 죽음이 삶을 알게 한다는 말은 진실이다. 가혹하게 여겨질 만큼 진실이다. 나를 살게 해준 당신께 감사하다. 아빠로 인해 내 삶이 시작되었고, 또 아빠가 떠남으로 인해 다시 새롭게 살게 되었다. 아빠에 대한 나의 보답은 이 삶을 멋지게 사는 것이리라. 어딘가에서 보고 있을 아빠를 위해, 이 삶을 정말 멋지게 살아보려고 한다. 사랑을 가르쳐준 당신께 감사드린다. 다시 만날 날까지 안녕하시길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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