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으로 기억하는 아버지

by 정필

아빠에 관한 많은 것들이 휘발되어 사라졌다. 눈을 감으면 어렴풋이 아빠의 젊은 시절 웃는 얼굴이 떠오르긴 하지만 그 외의 감각은 희미하여 아슬아슬하게 형체를 이루고 있을 뿐이다. 이를테면 아빠의 냄새라든지, 목소리라든지, 촉감 같은것들 말이다. 내가 떠올리는 아빠의 얼굴마저도 어딘가 사진으로 남아 있는 것 중 하나다. 8년이 지나는 동안 아빠는 내 속에서 조금씩 사라져 갔다. 조금 남은 기억을 긁어 모아 재구성해 두고 싶다. 훗날 더 많은 것이 사라지더라도 그보다 더 전에 내가 아빠를 기억하고 있었음을 미래의 나에게 확인시켜 주고 싶다.


아빠의 손가락이 기억이 난다. 굵고 투박했다. 어린 내가 아빠의 검지 손가락을 한 손으로 감싸 쥐던 기억을 떠올린다. 퉁퉁한 아빠의 손. 넙적하고 두꺼웠다. 마트에 가면 비엔나 소세지 중에서도 좀 실한 것들 굵기 정도 되었던 것 같다. 아빠 손의 촉감은 거칠었다. 두꺼운 손, 여기 저기 상처가 있는 손이었다. 아빠가 하는 설비 일 특성상 각종 공구와 기름을 자주 만졌어야 할 테고, 그러다 보면 손이 울퉁불퉁 두꺼워져 갔을 것이다. 섬세한 작업을 해야 하니 장갑을 착용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추우면 추운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아빠의 손은 날씨를 그대로 견뎌 내야 했을 것이다. 점점 손이 두꺼워져 가고, 때로는 갈라지고 피가 나기도 하는 걸 보면서 아빠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자식 새끼들 크는 것 보느라 자기 손은 쳐다볼 여유도 없었을 거다. 아빠 손을 꼬옥 잡아 보고 싶다. 값비싼 핸드크림도 좀 발라 드리고, 손도 주물러 드리고 싶다.


아빠의 발 뒤꿈치도 떠오른다. 무좀 때문인지, 체중 때문인지 아빠 뒤꿈치는 자주 갈라져 있었다. 피가 나기도 했고, 그게 아니더라도 엄청 따가웠을 것이다. 아빠가 발이 아파 고생하는 걸 옆에서 보면서도 그냥 그런가보다 싶었다. ‘아빠니까.’ 혹은 어른이니까 괜찮을거라고 생각했다. 바세린인지 무좀약인지를 바르고 비닐로 싸매고 다니셨던 기억이 난다. ‘아빠 어디 아프시냐.’고 말이라도 해볼 법 했는데, 그런 말 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으셨는지도 모르겠다. 아빠는 현장을 다녀야 했기 때문에 발이 불편해도 슬리퍼를 신고 일을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하루 종일 좁은 신발 안에 아픈 발을 넣고 이리 저리 뛰어다녔어야 할 것이다. 지금 내가 손이나 발이 그렇게 아팠더면 만사를 제쳐두고 치료에 신경 썼을 텐데 아빠는 자기 몸 돌볼 시간도 여유도 없었던 것 같다. 참고 견디고, 버텨보고 그렇게 사셨던 것 같다. 먹고 산다는 게 별 일 아닌것 같아도 매일 단 하루도 멈출 수 없는 끈질긴 것이기도 하다. ‘견딜만 한’ 일로 자리를 비우기엔 그것보다 먹고 사는것이 더 급하고 무거운 책임이었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아빠가 살아 계실 땐 아빠의 답답한 모습이 많이 보였다. 아프면서 왜 병원에 가지 않는지, 몸이 안좋으면서 왜 운동이라도 하지 않는지 그런 것들이 답답했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아빠라고 왜 병원에 가고 싶지 않으셨을까. 운동도 열심히 하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으셨을까. 아빠도 가장으로써 가족의 작은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너무 애쓰느라 그랬던 건 아닐까. 지금에야 주 5일제가 너무 당연하고, 주간 40시간 근무가 당연하지만 그때도 그랬을까. 일이 있으면 시도 때도 없이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고, 종종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 아빠는 운전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출퇴근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생계라는 짐이 참 무거웠을 것이다. 아빠는 일자리를 지키는 것이 자신이 가족들에게 해야 하는 책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과도한 요구가 있어도 묵묵히 자리를 지켰고,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어느샌가 자신의 삶을 다 생계를 꾸리는 데 사용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빠가 조금 더 좋은 세상에 살았다면 어땠을까. 강하게 자기 주장 하지 않아도 아빠같이 조용한 사람도 무리하지 않고 살수 있는 그런 세상. 내가 지금 할말 다 하고 사는 건 아빠의 조용한 희생이 있었던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아빠는 그렇게 자신의 자리를 지켰고, 자신의 몫을 다 했다. 비록 그 모든 것을 받는 나는 부족함 속에 투덜댔지만 말이다.


어째서 중요한 것들은 시간이 지나야만 보이는 걸까. ‘안다’고 생각했던 아빠를 실은 잘 모르고 있었음을 알게 됐다. ‘헤아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보지도 않고 안다고 말하는 정도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알지도 못하고 깊이 헤아리지도 못했으면서 나는 아빠를 다 안다고 착각하고 살았다. 내 인생은 입체적이고 복잡하지만 아빠의 인생은 단순하다고만 생각했다. 나의 시간도 점점 흘러 가면서, 미지의 가능성이었던 나의 인생도 조금씩 어떤 형태를 띄어 간다. 나도 당신께서 살았던 시간을 살면서, 비로소 당신의 삶을 어렴풋이 더듬어볼 수 있게 된다. 뭔갈 안다는게 그런 건가보다. 힐끗 힐끗 보아서야 제대로 알 수가 없는게 인생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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