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날 — 사랑의 목소리 .1 화
아침 햇살은 조심스럽게 발끝으로 다가왔다. 커피를 끓여 놓고 책을 바라보았다. 첫 문장이 이미 집 안 공기를 바꿔 놓았다. 나는 낮게 따라 해 보았다.
“사랑해.”
목소리는 낯설고 무거웠다. 그러나 도망칠 수 없었다. 나는 셔츠를 걸치고 집을 나섰다.
그녀의 이름은 서윤이었다. 휴대전화 속 연락처에는 아직도 ‘서윤 — 도서관’이라고 저장되어 있었다. 몇 년 전, 시인들의 편지를 다루는 강연에서 처음 만났고, 우리는 몇 번의 차 한 잔으로 서로의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다. 하지만 매번 입가에 맴도는 단어를 끝내 건네지 못했다. 순간은 늘 내일로 미뤄졌다.
도서관은 늘 그랬듯 종이 냄새와 차가운 공기로 나를 맞았다. 서윤은 오래된 카드를 정리하며 연필을 쥐고 있었다. 손끝에 묻은 흑연 가루가 작은 별처럼 반짝였다.
“오늘은 일찍 왔네요.” 그녀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열람실 공사 때문에 예약한 책은 저녁 전에 찾아가세요.”
“책 말고… 당신을 보러 왔어요.”
그녀의 눈에 짧은 놀람이 비쳤다. 나는 망설이지 않으려 애쓰며 말했다.
“잠깐 밖으로 나올 수 있을까요?”
우리는 도서관 앞 계단에 나란히 섰다. 젖은 플라타너스 잎에서 비 냄새가 났다.
“무슨 일 있어요?”
“네. 시간이 왔어요.”
나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나는 오랫동안 중요한 말을 입속에 묻어 두었어요. 말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돌처럼 무겁게 남더군요. 더는 안 되겠어요. 서윤 씨, 사랑해요.”
단순하고 조심스러운 고백이었다. 그러나 그 단순함 안에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서윤은 잠시 말이 없었다. 멀리서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녀의 얼굴에 햇빛 같은 빛이 스쳤다.
“…쉽지 않은 날이에요.” 그녀가 낮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 우리가 오래 지켜 온 열람실을 닫거든요. 제겐 집 같은 곳이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때로는 슬픔이 평행선처럼 사람을 이어 준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요. 그냥… 말하고 싶었어요.”
그녀는 나를 오래 바라보다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추측하게 두지 않아서. 나 자신을 듣는 시간이 필요해요. 괜찮죠?”
“네.”
그 대답은 처음으로 평화로웠다.
집에 돌아오자 책의 첫 문장은 옅어져 있었다. 종이가 내 말을 삼킨 듯 부드럽게 변해 있었다. 그 순간, 새 목소리가 속삭였다.
“엄마에게 말해. 늦었지만, 나는 여기에 있다고.”
나는 책을 덮고 창밖을 오래 바라보았다. 저마다 다른 하늘을 든 듯, 사람들이 각자의 우산을 흔들며 지나갔다.
오늘은 첫째 날이었다. 그리고 아직 수많은 말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