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 날 — 나 자신에게
책의 네 번째 장은 다른 날들과 달랐다.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지만, 그것은 외부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너 자신에게 말해. 네가 아직 살아 있다고.”
나는 책을 덮고 한참 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다른 이들에게 말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건,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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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오랫동안 열어 보지 않던 상자를 꺼냈다.
창고 구석에 쌓여 있던, 대학 시절부터 모아 둔 노트와 편지, 그리고 낡은 사진들이 들어 있는 상자였다.
먼지가 흩날리자 오래된 종이 냄새가 방 안을 채웠다. 그 냄새 속에서, 나는 지금보다 훨씬 불안정하고, 그러나 조금 더 뜨거웠던 나를 마주했다.
노트 한 권을 펼치니 삐뚤빼뚤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는 언젠가 글을 써서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싶다.”
순간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그 웃음 뒤에는 씁쓸함이 따라왔다.
나는 그때의 나에게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과연 나는 지금, 그 꿈을 이루며 살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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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 나는 일부러 오래 걷기로 했다.
낯선 카페 골목, 오래된 서점, 무심히 지나가는 사람들.
그 속에서 문득 깨달았다. 나는 늘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얼굴로만 살아왔다는 것을.
“괜찮다”는 거짓말, “나는 잘하고 있다”는 연기.
정작 나 자신에게는 단 한 번도 “넌 아직 살아 있어”라고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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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참을 걷다가 조용한 공원 벤치에 앉았다.
숨이 가빠지고, 심장이 세게 뛰었다.
그제야 이해했다. 살아 있다는 것은 거창한 증거가 아니라, 이렇게 땀을 흘리며 걷고, 숨을 몰아쉬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이라는 것을.
나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괜찮아. 아직 늦지 않았어. 넌 여전히 살아 있어.”
그 말이 낯설었지만, 동시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마치 책이 아니라, 내 안의 무언가가 직접 내게 속삭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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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와 거울 앞에 섰다.
피곤한 얼굴, 흐릿한 눈빛. 하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꺼지지 않은 불씨가 있었다.
나는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며 다시 한 번 말했다.
“살아 있어. 나는 아직 살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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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자, 네 번째 문장은 서서히 사라졌다.
그러자 새로운 속삭임이 울려 퍼졌다.
“첫사랑에게 말해. 그날의 침묵을 후회한다고.”
나는 눈을 감았다.
첫사랑의 얼굴이 오랜 세월의 물결 속에서 천천히 떠올랐다.
그리고 마음 한구석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