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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글 Jeonggeul May 19. 2022

수영장에서 보내는 하루.

우리 집  바로 앞에는 수영장이 있다.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것.

바로 우리 집 앞에 있는 야외수영장을 바라보는 일이다.

새벽 5시에는 사람이 없다가 동이 트는 새벽 6시가 되면 외국인 세 명이 수영을 하고 있고, 한쪽 귀퉁이에는 청소하는 직원이 바닥에 가라앉은 불순물들을 빨아들인다.


유유히 수영을 하는 세 남자.


'아, 나도 지금 당장 내려가고 싶다'



하지만 밤새 깊은 잠에 빠져있는 아들을 깨워야 하고,

아침도. 물통도 챙겨줘야 한다.




아들을 보내고 나면 공기는 금새 데워져 30도로  오른다. 햇볕은 서서히 높아지고 수영장엔 볕이 가득 든다.


'하.. 또 늦었다.'


조금만 시간이 흐르면

야외수영장은 휴양지 호텔 수영장이 되어버린다.


사방이 뻥 뚫린 넓은 야외수영장.


둘레에 빽빽이 들어찬 파라솔과 썬베드엔

썬텐을 하는 외국인들이 선글라스를 쓰고 맨살을 드러내며 누워있는 수영장.


우리 집 앞 수영장엔 관광객만 없지,햇볕만큼은 휴양지 만큼이나 강하다.


이런 햇볕에 수영하면 금새 깜둥이가 된다.




어릴 때부터 물이 좋아 초등학교 여름방학 때 바닷가로 휴가 갔다가 땡볕에서 선크림도 바르지 않고 반나절을 놀았다.

 때의 그 황홀한 기억은 잊을 수 없다.


얼굴에 화상 입은 것만 빼면 말이다.


내 얼굴은 고구마처럼 새빨개졌고 띵띵 부어올랐다.

알로에며, 감자팩, 오이팩을 몇 날 며칠을 해도 가라앉지 않았고, 그 얼굴로 학원엘 갈 수 없었고, 외출도 할 수 없었다.


2박 3일로 떠난 휴가 덕분에 여름방학 내내 탄 얼굴로 집안에만 박혀있어야 했고, 오빠는 내 얼굴을 보고 매일 박장대소를 했다.


-_-






다시 현실로 돌아와,


10시가 지나고 날씨는 정점에 달하려 한다.


기온은 이미 33도 .

11시가 지나,12시를 향하니 햇볕은 쨍쨍. 물은 반짝

해수욕장 안 부럽다


1시가 지나고 2시가 지나니 이젠 거의 밖에 나갈 수 없을 지경이다.

베트남으로 들어온 지 1년이 넘었거나 현지인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잘  다니지만 나는 아직 걸어다니면서 땀을 비 오듯 흘리는게 적응이 안 된다.

머리와 얼굴의 경계선에 있는 머리카락과

상체 티셔츠의 U 자 모양은 땀으로 젖어있다.


옷 입고 땀 내는 자연 찜질방 같다.





4시가 지나 아들이 오면 간단한 간식을 챙겨주고,

넘어간 태양에 그늘진 수영장으로 향할 준비를 한다.


집에서 수영복, 수모, 수경을 착장 한다.

간단한 수건, 물통이 들어있는 가방을 들고 내려간다.



몸에 착 달라붙는 긴팔, 긴바지 수영복을 입고 불룩 튀어나온 배와 살이불어 통통해진 엉덩이임에도 가리거나 주저하지 않고 수영장으로 전력 질주 한다.



뜨거운 햇볕과 후끈한 공기에 덥혀진 물.

수영장인지 노천온천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간단한 맨손 체조를 하고 서서히 내 몸을 물에 담근다.


공기보다는 훨씬 시원한 물이 내몸을 감싼다.

아랫배가 들어가면서부터 찌릿한 소름이 돋는다.

그리고 물안경을 쓰고 발을 땅에서 떼며 물 속으로 머리끝까지 빠진다.


'뽀글뽀글'




 속에서 체조를 한다.

달에 착륙한 우주비행사가 걷는 것 처럼

어기적어기적 걸어본다.

가벼워진 팔다리 , 둥둥 뜨는 내 무거운 몸

내 몸을 지탱한 모든 근육이 한 숨을 쉬는것 같다.

'아 좋다.'


날아갈 것만 같다.


기분이 좋아 물 속에서 오두방정을 떤다.

다 떨고 나면 몸이 차분해진다.

경건한 마음으로

 속에서 날아오르기를 시도한다.

그리고 슈퍼맨처럼 양손을 앞으로 쭉 뻗고서

발차기를 하며 추진력을 얻는다.

느리지만 유유히 떠서 간다.


나는 슈퍼맨이다.


'첨벙첨벙~~'


사방에 물을 튀기고,

수영장에서 놀던 어린이들이 내가 다가가자 그 자리에서 도망가듯 피신한다.


끝까지 가서 멈춘 나는 다시 물안경을 재정비한다.

물안경을 빼고 뿌예진 알을 물속에 담근다.

그리고 다시 착용하고서는 웨이브를 탄다.


이번엔 두 발을 한꺼번에 차기 때문에

물장구 스케일이 거의  돌고래가 물위로 공중부양하다 다시 뛰어든 수준이다.

아이들은 더 크게 놀라 괴성을 지르고 피신한다.

나는 아랑곳않고 내 갈길 간다.


그렇게 호흡을 가다듬은 나는, 본격적인 운동인

자유형 다섯 바퀴를 돌아본다.


왼손, 오른손

물을 잡고 힘껏 끌어당긴다.


물 위로 올라온 손들에 힘을 빼고 팔꿈치를 높이 치켜들며 멋있는 폼을 구현한다.


아이들 간식을 챙기러 나온 엄마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본다.

내가 수영해서 뭍으로 갈 때까지 그들의 눈이 따라온다.


뱃속 아기에게 무리될까 싶어 동작을 더 유연하게 해 본다.


발레 하듯 물 위를 올라온 손을 얌전히 넣으면서도 .

 밑에서는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힘껏 젓는다.


발도 물 밖으로 튀지 않게 하기 위해 물 아래에서 최선을 다해 재빨리 찬다.


한 마리의 백조가 된 것 같다.


이제 힘들다.

물 위를 나와 집으로 가야 한다.




물먹은 돼지 한 마리가 뒤뚱뒤뚱  걸어간다.


  '나는 백조다. 나는 백조다'


속으로 되뇌며 손끝 발끝을 최대한 오므리고 우아하게 걸어간다.

물기를 닦고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거울 속에 육중한 물범 한 마리가 서 있다.


괜찮다.

이거 운동한 몸이다.


힘들었지만,

슈퍼맨처럼, 때로는 백조처럼


그래도 나 오늘 운동했다....


2022.05.19

브런치작가 정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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