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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글 Jeonggeul Jul 03. 2022

억압당한 우울.

내가 사는 이유를 당신은 모른다.

남편은 책을 좋아하지 않는 아들에게 책읽기의 일환으로 매일 독후감 한편씩을 쓰게 했다.


어제

아들이 독후감을 적었는데,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아 내가 빨간펜으로 그어가면서 이것저것 지적을 했더니, 쓰기 싫은 독후감을 억지로 썼는데, 칭찬은 못할망정 앞으로는 내게 기대를 하지 말라며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글쓰기도 못하는 바보천치라며 아들자신을 자학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적잖이 충격을 받은 나는

우는 아들을 안고 나도 함께 울어버렸다.


글쓰기 , 좋아하면 나만 잘하면 되지, 뭐하러 아들에게 그런것까지 강요해선 아들을 힘들게 했는지 미안해서 눈물을 흘렸다.




"이런 교육은 어릴 때 부터 시켰어야 했는데, 글렀다. 글렀어."



남편은 내게 엄마로서 아들을 너무 오냐오냐 키우지 말고 잔소리를 하며 공부 이것저것을 시키라고 종종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 남편이 못마땅해서 나는 남편에게 울면서 처절히 하소연을 했다.


"사지멀쩡하고 건강한 게 중요한거 아니가. 뭐 꼭 그렇게 공부를 잘 해야 하나. 자기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행복하게 살면 안되나. 내 정신병 걸린거 보면 모르겠나. 못하는거 억지로 하면 멀쩡한 몸도 이렇게 된단 말이다.!"


그랬더니, 남편이 갑자기 흥분을 하면서 웃통을 벗고 토악질을 하는 것이다.


"심장터질것 같으니까. 울지마라. 니 그럴 때마다 나 죽을 거 같다. 나도 정신병 있다. 나 자학도 했다. 자해도 했고, 자살시도도 했다. 그러니까 제발 내 좀 살려도."


그런 남편의 모습을 처음 본 터라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남편에게도 그런 울화병이 있었다니.

잿빛으로 변한 남편의 얼굴은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눈은 튀어나올 듯 하고, 얼굴은 벌겋다 못해 거무스름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컵을 들고 두 손 번쩍 하늘위로 들어 내리치려 하고, 발작을 하듯 바닥에 엎어져서 토악질을 하던 남편의 모습.


나는 어제 처음으로 남편이 무서웠지만 그런 남편은 내게 오히려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늘 괜찮은 줄만 알았던 남편에게 그런 아픔이 있었다니, 스트레스를 받은 때문이겠지 했다.

원인은 내게 있었던 것 같다. 매사 늘 예민한 나 때문에...






나의 우울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나는 마음껏 울어본 기억이없다.

울면 맞았다.

그래서 울고 싶어도 참아야 했다.

그 어린 것이 울 수도 있고, 울음으로 미숙한 표현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게도 맞았다.


그런 어린시절을 보내고 나니, 내 속에 차인 울분이 많았나 보다.

우는 대신 글을 썼다.

아마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였을 거다.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로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일기장에 내 속을 털어놓았다.

울음소리가 방문을 새어나갈까, 밤에는 불을 끄고 자는 체를 하면서

새벽에 다시 책상스탠드만 켜고 책상에 앉아 글을 쓰며 내 마음을 달랬다.

내 마음을 어디에다 털어놓고 싶었다. 그런 것 조차 들키면 맞을까봐

나는 모두 잠든 새벽에 글을 썼다.


세월이 흘러, 나를 감싸줄 줄 아는 자상한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다.

우리가족들과는 달리 배려가 몸에 베이고, 타인의 감정을 잘 헤아려 주는 사람, 남편이었다.


어쩌다 신혼 초에 우리는 어떤 일로 심하게 다퉜다.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고, 고집을 피우는 남편에게 서운했다.

서운하다고 말을 해도 듣지 않았다. 나는 억압을 당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울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울어도 속이 시원해지지 않았다.

울면 울수록 내 속에 든 무언가를 다 개어내고 싶을정도까지 치달았다.

계속 뱉기만 하다보니 나중에는 숨을 들이쉬기가 곤란했다.

결국 119를 불렀다.


남편은 너무 놀란 나머지 울면서 나를 끌어안았다. 나의 울음은 그제서야 진정이 되었다.


이 더러운 고집.

울어서 해결하고 싶었던 어린아이의 심보가 다시금 비집고 올라왔나보다.




어제 남편이 진정되고 우리는 이야기를 했다.

내가 울면 자신은 119를 부른 그 때의 그 트라우마가 다시 생겨나는 것 같다고 했다.

자신이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사이에 심장이 터질듯이 뛰어서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곧이어 죽을 것 같은 공포감도 느낀다고 말했다. 자신의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죽을것 처럼 숨을 껄떡거리는것이 보고있는게 원망스럽고 또, 한편으론 두렵다고 했다. 그 때 이후로 내가 울면 그 때 자신이 느낀 그 감정이 떠오른다고 고백했다.


어제 처음 들은 이야기였다.

남편에게도 어쩌면 공황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상황은 내가 만든 것 같았다.

미안해서 또 울고 싶었지만, 남편을 위해 참았다.

침착해지려고 내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달래고 또 달랬다.


나만 그런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남편도 그런 일을 겪는다는 사실을 비로서 알게 되었다.

너무 비참했다.

어떻게 우리가족에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하늘을 원망했다.


그래도 원인을 알았으니까 앞으로는 괜찮을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안되는 걸 억지로 하려 하는 것. 참고 해내려는 것에서

내 우울은 시작된 것 같다.


못하겠으면 하지 말고, 쉽게 쉽게 살았으면 좋겠다.


안 되는거 해보겠다고 미련하게 매달리고 기를 쓰고 해내려 하다가 삶의 이유마저 잃어버리게 되기도 한다는 건 경험해봤다. 내게 안맞는 옷은 있다. 다 소화해 낼 수 없다.



무엇이 인생의 정답일까?

당신 생각이 과연 세상의 정답일까?



각자 자신의 이유로 살아가는게 정답아닐까.

내 뜻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은

제 발 아래에 두어 자기 살기 편하자고 하는 이기심 때문 아닐까.


그러나 사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은 제 발 아래에 가두어 키운다고 그대로 자라지 않는다.

사랑의 믿음만 강하다면,

울타리 너머 세상에서도 잘 살아가리라 믿을 수 있을 것이다.   


강요만 하게 되면, 관계만 나빠지고 결국 그 울타리로 부터 탈출할 것 같다.


너는 너고, 나는 나로


모두 각자의 이유로 그렇게 살 수 있는 믿음이 생겼으면 좋겠다.



2022.07.03

브런치작가 정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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