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볶아낸 커피의 신선함과 향이 오감을 자극한다. 그래서, 그 어떤 것 보다 강력하게 정신과 육체의 긴장감을 풀어준다.
향과 맛에 대한 심사숙고의 시간을 거쳐 선택한 원두를 수동 그라인더로 열심히 갈다 보면 코를 자극하는 고소한 커피 향이 정신을 맑게 해 준다. 펄펄 끓은 물을 커피주전자에 넣어 정성스레 핸드드립으로 내린 커피 원액 위에 약간의 기름처럼 보이는 것이 둥둥 떠오를 때 기대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을 전해준다.
그렇게 핸드드립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투자한 20여분의 기다림의 시간 동안 마음의 안정이 주는 심리적 위로는 그야말로 내게는 최고의 퀘렌시아(Querencia). 물론 가정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직장에서도 스트레스를 받거나 가슴이 답답할 때 커피 한잔이 주는 여유가 때로는 큰 활력이 되기도 한다.
지난 금요일 밤,
요 며칠 TV 고장관계로 며칠째 TV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금요일 저녁, 평소 같으면 의미 없이 TV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텐데, TV를 볼 수 없는 상황이라 딱히 특별한 계획도 없어서 인근 도서관에서 열리는 강연을 들으러 가기로 했다.
그날의 주제는 공교롭게도 '커피와 인문학'. 제목에 이끌려 시작 보다 일찍 도착해 맨 앞줄에 자리를 잡았다. 보통 이런 강의는 '시음'도 있을 것 같다는 느낌적 느낌으로. 역시 내 예감이 맞았다. 강사님은 시음을 위해 여러 종류의 원두로 핸드드립 중이셨다.
강의는 커피를 주제로 인문학 강의를 하게 된 배경부터 커피 역사, 핸드드립 하는 방법 그리고 현대인들의 커피와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커피 한 잔 할까?'라는 물음에 대한 의미였다. 평소 나도 자주 쓰는 물음이다.
'000 씨 커피 한잔 할까?'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우선, '커피 한잔 하면서 내 얘기 좀 들어줘'라는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너무 힘들다. 외롭다 등 힘든 상황. 또는 반대로 너무 기쁜 소식이 있어서 당신으로부터 축하받고 싶다.
두 번째는 '너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라는 뜻일 수도 있다.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생활하는지 등 상대에 대해 많은 것이 궁금하다는 뜻이 담겨 있을 수 있다.
술을 안 마시는 나에게 커피는 술의 역할을 대신 한다.
그래서 친한 친구, 동료 선후배들과 커피를 마시면 대화하기를 좋아한다. 주말에 가끔씩 만나는 친구들과 편하게 커피 한잔하면서 온갖 수다를 떨고 나면, 스트레스 해소뿐만 아니라 가끔은 마음의 위로를 받기도 한다.
그래서 커피는 단순히 '그냥 쓰디쓴 음료'가 아니다.
마음의 위안, 피로회복제 그리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주위 친구 한 명은 커피의 맛과 향을 잘 못 느끼는 친구가 있다.조금 비싼 원두커피나 유명한 프랜차이즈 커피나, 1500원짜리 커피나 구분을 거의 못하는 친구다. 그런 친구가 나와 같이 식사를 하고 나면 늘 커피숍에 간다. 커피 맛을 알지도 못하면서 커피숍에 오는 이유는 단순하다.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