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벌곡을 지나 금산으로 가는 길에는 20년이라는 시간이 온전하게 묻혀있었다.
그 덕에 나는 그 길 위에서 더 설레고 정겹게 느낀 것은 아니었을까
"이 과장! 겨울 되기 전에 금산에 한 번 갈게, 시간 좀 내봐"
"그래요, 형님 언제든 오세요! 없는 시간도 만들 테니"
입사 동기이자 친한 동생이 아직 그곳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얼마 전 그와 한 약속을 지키러 금산에 갔다. 인삼의 고장답게 시커면 인삼밭이 오랜만에 이곳을 찾는 이방인을 반기는 듯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 저녁을 먹는 동안 대화의 주제는 아이들 이야기뿐이다. 어느새 중년이 된 지금 대화의 주인공이었던 '나'는 사라지고 '아이들'만 남아버린 현실을 자각하면서 우리들의 시간 또한 굽이 굽이 흐르는 금강만큼 흘려보낸 게 아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감돈다.
그와 나는 결혼 전, 직장생활 초기에 작은 원룸을 얻어 같이 지낸 적이 있었다. 방 1, 작은 주방, 화장실, 작은 베란다가 딸린 집이었다. 여름이면 베란다에 곰팡이도 많이 생겼지만 워낙 방값이 싼 곳이라 그런 불편함도 즐기면서 알뜰히 저축하며 다가올 미래에 대한 준비를 차곡차곡했다. 그러다 각자 가정을 꾸리면서 그 곰팡이 끼던 원룸을 탈출했던 기억도 이제는 추억이 된 지 오래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이자 인생친구와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나는 홀로 대둔산*으로 향한다.
*대둔산은 행정구역이 충남 금산, 논산 그리고 전북 완주로 나뉘어 있는 단풍이 멋진 곳임
겨울이라고 하기에는 산기슭에는 아직 가을이 가득 차있다. 아주 낯선 곳 적막강산에서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내가 즐겨하는 '자발적 외로움'이라고나 할까. 밤이 깊어질수록 대둔산 자락에는 인적은 사라지고 대신 냉기가 콧속을 파고든다.
늦가을 밤 산자락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좋아하는 음악을 듣다가 겨우 따끈한 차 한잔으로 몸을 녹이는 것뿐. 핫팩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손이 시려올 때 즈음 더디지만 체온의 열기로 덮혀진 침낭에 몸을 구겨 놓고서야 언 몸이 녹기 시작한다.
노곤노곤해진 눈을 감고 잠을 청해 보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생생히 떠오르는 얼굴들
갑자기 감정선이 묘하게 흘러가는 나를 발견하고는 민망한 마음에 밤의 고요함과 쌀쌀한 기온을 핑계 삼아 그 감정지옥에서 탈출한다.
겨우 잠이 들었다가도 얼굴에 닿는 차가운 공기덕에 또다시 잠시 깬다.
몸을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계속 뒤척인다.
그렇게 선잠을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시간을 보니 겨우 자정을 넘긴 시간
세상은 고요한데 이름 모를 별들이 반짝이며 잠 못 드는 이의 마음을 빼앗는다.
별빛에 홀린 듯 나도 모르게 밖으로 끌려 나와 새벽 별 아래 잠시 자연인이 되어본다. 별을 헤다 갑자기 쏟아지는 유성우에 탄성을 지른다. 그 찰나 유독 나의 시선을 이끄는 별무리가 대둔산 자락에 걸쳐 있다.
여태까지 별이라고는 북극성과 북두칠성만 알고 있었는데 분명 생김새가 그 별과는 달리 보이는 별들이 나를 설레게 한다. 마치 첫사랑을 만난 것 마냥
혼자 보기 아까운 마음에 급히 얼음같이 차가워진 삼각대를 펼치고 노출을 맞춰 30초의 기다림 끝에 별들을 사진에 담는다. 제발 다시 유성우가 쏟아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염원도 함께 담아낸다. 그 빛나는 순간을 놓칠세라 급한 마음에 정신없이 계속 셔터를 눌러댄다.
유난히 반짝이던 별
무슨 별인지는 모르지만 뭔가 달라 보이는 별
마치 나를 보고 반갑다고 미소 짓는 별
왜 이제야 왔냐고 묻는 듯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버린다
여러 각도로 별을 찍고 난 뒤 궁금함에 AI에게 묻는다.
그 별의 이름은 '오리온'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들었던 이름, 초코파이가 먼저 떠오르지만 실제로는 잘 모르고 있었던 그 별.
그리스 신화에서 따온 오리온은 한 손에는 방패를, 다른 한 손에는 몽둥이를 들고 있는 모습의 형상을 갖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오리온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로 뛰어난 사냥꾼이었다.
달과 사냥의 여신인 아르테미스는 오리온과 사랑하는 사이였으나, 아르테미스의 오빠인 아폴론은 이들의 사랑을 탐탁하지 않게 생각하였다. 오리온을 싫어하게 된 아폴론은 어느 날 바다 멀리서 사냥을 하고 있는 오리온을 발견하고 오리온을 과녁 삼아 동생과 내기를 청한다. 오리온인 줄 모르는 아르테미스는 사냥의 여신답게 오리온의 머리를 정확히 명중시켰다. 나중에 자신이 쏘아 죽인 것이 오리온이라는 것을 알게 된 아르테미스는 비탄에 빠졌고, 아르테미스의 슬픔을 달래주기 위해 제우스는 오리온을 밤하늘의 별자리로 만들었다. < 출처 : 한국천문연구원 홈페이지 >
오리온을 향한 아르테미스의 미안함, 사랑 때문이었을까
오리온은 유난히도 더 밝아 보인다.
오리온은 늦가을부터 초겨울 사이에 잘 보인다고 한다고 한다.
마음이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할 때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자 유난히 반짝이는 별이 당신을 반길 것이다.
별을 사랑했던 사람 중에는
'생각하면 할수록 점점 더 새로워지고, 점점 더 커지는 경탄과 경외감으로 마음을 채우는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내 머리 위의 별이 빛나는 밤하늘과 내 내음 속의 도덕법칙이다'라는 묘비명을 갖고 있는 칸트가 있고
우리나라에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별 헤는 밤'의 윤동주 시인이 대표적이다.
별을 좋아하는 이들의 마음은 별만큼이나 순수하다. 그 순수함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힘을 갖게 하기도 한다.
그 밤 별이 빛나는 하늘, 자연 속에서 불편한 하룻밤이 전해준 선물은
별을 보며 행복해하는 나와 그 에너지를 주위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우리 모두는 살아가면서 어쩌면 각자의 별을 잊고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별을 헤는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갔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