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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아래 Apr 01. 2023

기다림의 행복한 고통  

극강의 단짠 단짠 양념갈비가 익어가는 10분, 왜 이렇게 길어

일주일을 마감하는 금요일 즈음이 되면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치는 건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이번 주는 특히 더 그렇다. 아내의 수술과 입원,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해외 출장을 위한 준비, 게다가 직장인들이 제일 싫어하는 금요일 오후 답도 없는 길고 긴 회의.   

   

아내의 입원 덕분(?)에 이번 주는 사춘기 중2 아들과의 만찬이 잦다.

오늘 퇴근은 평소보다 40여분 늦었다. 반대로 아들은 평소 보다 학원을 마치고 일찍 귀가해 있다. 아들은 왜 이렇게 늦었냐는 듯 한 원망의 눈빛으로 인사를 한다.     


이번 주 따뜻한 엄마표 밥을 한 번도 못 먹은 아들에게 제대로 된 한 끼를 먹이기 위해 평소 잘 가던 단골집 제육쌈밥 또는 돼지 양념갈비 중에서 택하라고 했다. 아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돼지 양념갈비'를 선택.

  

단골 갈빗집은 이미 거의 만석. 혹시나 빈자리가 없을 경우 다른 삼겹살 집으로 갈 계산까지 하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다행히, 구석에 한 테이블이 남아있었다.

 

이 집 갈비의 특징은 한돈이 아닌 '칠레산'이다. 두껍고 큰 사이즈의 왕갈비, 어쩌면 퍽퍽하고 질기고 수입산이라 잡내가 심할 것 같다는 편견도 있을 수 있으나, 그건 기우일뿐 이 집만의 비법으로 잘 숙성된 양념갈비라 이 근방에서는 꽤나 이름난 집이다.


맛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참숯불에 직화로 구웠을 때 고기의 육즙과 단짠의 환상조합으로 아무 데서나 흔하게 맛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여기에 내가 제일 잘하는 것 중의 하나인 '고기 굽기' 기술을 더하면 궁극의 고기 맛을 낸다.      

기억은 안 나는데 예전에 TV에서 누군가가 비슷한 방법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때 주의할 점은 양념갈비는 양념 때문에 순식간에 탈 수 있다. 고깃값도 많이 올라 속상한데 귀한 한 점의 고기를 태워버리면 너무 속상할 수 있으니 정신 집중은 필수.  


양념 갈비 잘 굽는 방법 ◀

숯불에 잘 달궈진 석쇠에 두 대의 왕갈비를 한 번에 올리되 반씩 접어서 놓는다.

두 대를 한 번에 올리는 이유는 먹성 좋은 아들, 먹다 끊기면 싫어해서 한판에 끝내야 하고,
또한, 반씩 접어서 굽는 이유는 양념갈비라서 자주 뒤집어야 되는데, 그냥 펴서 구우면 육즙이 다 빠져 버려 먹어보면 고기가 뻑뻑함. 아무튼, 왕갈비를 접었기 때문에 4면을 40~50초 단위로 순차적으로 뒤집어 가면서 익힌다.

이때 주의 할 점은 핸드폰을 본다거나 딴생각하면 순식간에 탈 수 있으니 고기에만 집중! 그렇게 10여분이 지나 90% 정도 익었을 때 즈음 현란한 가위질로 각자 취향에 따라 자른 뒤 숯불 연기에 한 두 번 더 뒤집어 익혀 준다.

어느 정도 갈비의 특위의 맛깔나는 색을 띨 때 즈음, 양파 간장소스 등과 곁들여 먹으면 끝.  


갈비가 익어가는 10여분의 시간은 왜 이렇게 더디게 가는지.


평소보다 늦은 저녁으로 더 허기지고 지친 하루의 끝자락. 누릇누릇 맛있게 익어가는 갈비, 우선 눈으로 그 영롱한 빛깔에 한 번, 그 숯불의 향을 더해 코로 또 한 번, 마지막으로 팡팡 터지는 육즙과 달달함을 입으로 느끼는 순간 아드레날린 폭발. 이게 인생 사는 맛 아닐까.


뿌옇게 휘날리는 숯불연기로 지난 일주일간의 찌들었던 삶의 흔적을 날려버리고,

빨리 익어가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며 입맛을 다시고 있는 아들의 표정으로 헛헛해진 마음을 달래고,

범접할 수 없는 단짠 단짠의 맛 그리고 한 입 물었을 때 입안 가득 흐르는 육즙이 춤을 추는 갈비 한 점으로 지친 육신의 피로를 해소하고 새롭게 다가오는 주말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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