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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아래 Feb 10. 2023

나에게 '면천'이란 000이다.

지역에서 보물찾기  1

서울에서 목표방향으로 가다 서해대교를 건너면 나오는 곳이 당진이다. 서해대교 남단에서 차로 약 20여분을 더 가면 아미산 자락에 면천이라는 조그만 동네가 나온다. 면천 두견주, 막걸리가 유명하다. 그리고, 전국에 있는 읍성 중에서 유일하게 읍성 안 마을을 있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면천읍성이 있다. 사실 그곳은 가끔 지나가기만 했지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던 그냥 시골 동네로만 생각했다.


지난해 10월 말 가을이 무르익어 가던 시점에 1년 동안 준비했던 큰 프로젝트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난(?)을 극복하고 성공적으로 마쳤다. 보통은 1년짜리 프로젝트가 끝나면 날아갈 듯 한 해방감을 느끼거나, 성취감을 느껴야 하는데, 그때만큼은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사람들에 대한 실망감, 공허함, 심지어는 우울감이 나를 괴롭혔다.

 

그때 평소 알고 지내던 당진시청 김팀장님께 오랜만에 전화를 해서 최근 근황도 전하고, 최근에 겪었던 일을 털어놓자 김팀장님은 “그럼 언제 시간 내서 당진 한번 오세요” 하고 나를 초대했다. 나는 "다음에 시간 되면 갈게요"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그 뒤로도 기분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일주일의 시간이 지난 뒤 나는 다시 김팀장에게 전화를 걸어 내일 휴가를 내고 당진에 간다고 했더니 기꺼이 환영한다며, 내일 면천읍성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래서 다음날 우리는 약속했던 대로 만났다.(그분도 연차를 기꺼이 나를 위해 사용) 그분을 본지는 거의 1년 이상은 된 듯했다.




그렇게 면천읍성을 시작으로 그의 면천투어가 시작됐다. 읍성이 있는 곳이 행정의 중심지였다. 그래서 면천도 당진의 중심지였고, 읍성 복원 과정에서 읍성 안 마을을 이전시키지 않은 유일한 문화재, 그리고 읍성 주변에 콩국수 및 칼국수 맛집이 즐비하다는 등 그의 해박한 지식과 지역에 대한 애정으로 맛깔나게 설명을 이어갔다.


그다음 방문한 곳은 오래된 우체국 건물을 미술관으로 사용 중인 ‘면천읍성 그 미술관’이다. 허름한 시골 미술관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관람객은 우리뿐이었다. 2층 체험실을 둘러보고 나올 때 벽에 걸려있던 2점의 그림(대지 위에 나무가 한 그루씩 서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한 동안 허 했던 내 마음을 꽉 채워주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으로 그림을 보면서 순간 가슴 뭉클 한 감동을 받았다. (이것이 그림치료 효과인 듯) 그 그림은 관장님 작품이었다.

무념무상 by 김회영 Oil Canvas


관장님 말씀으로는 그 그림을 보러 전국 각지에서 오기도 하고, 그중 어떤 분은 그 그림을 보면서 펑펑 울고 가는 분들도 있다고 했다. 그분들 마음이나 내 마음이나 같지 않았을까......


다음 방문지는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대충 봐도 지은 지 50년은 넘었을 법한 건물을 리모델링한 조그만 시골서점 '오래된 미래'였다. 김팀장님 말에 의하면 최근에 그곳은 작지만 오래된 2층 건물, 외관은 흰색으로 현대적이지만 내부는 서까래가 훤히 보여 오래된 느낌도 공존하는 감성사진 촬영 핫 스폿이라고 했다. 그곳에 가면 평소 책을 가까이하지 않는 사람들도 책을 읽게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기도 한다. 또 하나, 인심은 기본, 항상 밝은 표정의 사장님의 친절한 설명은 이 공간만의 특별함이다.

 시골의 작은 독립서점이지만, 그곳은 단순히 책만 파는 곳이 아니다. 마을의 사랑방이기도 하고, 나 같은 여행자들의 쉼터이기도 하고, 또한 촌살이의 성공사례가 되기도 해서 농촌살이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롤모델이 되기도 한다.  


그날의 마지막 일정으로, 옛날 농협창고를 개조해 카페로 운영 중인 곳에서 면천을 대표하는 달달한 시그니처 커피로 피곤함을 달랬다. 화려함은 도심지의 별다방 같지 않지만, 커피에 대한 자부심만큼은 커피 향으로 그대로 전해졌다.




그날 전혀 기대하지 않고 보낸 면천에서의 하루는, 읍성-미술관-서점-창고 카페라는 공간으로부터의 특별함(편안함, 포근함)도 가득하지만, 김팀장님의 배려, 공감이 공허했던 내 마음을 가득 채워준 하루였다.

그래서 나에겐 면천이란 ‘채움의 공간’이다.

 

그리고 2022년 업무 마지막 날, 나도 나처럼 힘들어하는 친구(대전)를 면천으로 초대했다. 지난가을 내가 경험한 특별한 시간을 그 친구에게 그대로 공유해 줬다. 되돌아가는 그 친구의 가벼운 뒷걸음이 한층 가벼워 보여서 나 역시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면천은 나에게 그런 곳이다.



2023. 2. 10. 오늘, 오히려 내가 김팀장님을 위로해야 하는 날이다.

다시 면천에 가야 할 일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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