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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호박 Aug 09. 2024

체험! 지방러의 삶

2024-07-26(금)

셀프유배가 3일 남은 시점, 나는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지금까지 셀프유배기를 사랑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는 아니고, 서울에 당일치기로 공연을 보러 가기 위함이었다. 사실 부산에 셀프유배를 내려오면서 내가 멀어지고 싶었던 것 중 하나는 공연이었다. 부산에 본진의 공연을 보러 내려온 것치고는 너무 모순적인 말이 아니냐고? 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이에 대한 약간의 항변을 하자면 서울에 있으면서 다양한 공연장과의 접근성이 워낙 좋다 보니 원한다면 언제든 공연을 볼 수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 기준에서 다소 과하게 공연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을 즐기고 나서 충분히 소화시키며 공연을 통해 나를 들여다보고, 공연 속 메시지를 체화할 틈도 없이 다음 공연, 그다음 공연을 연달아 보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어쩌면 내가 나를 마주해야 할 시기에 무대 위 세상으로 도피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부산으로 셀프유배를 내려가는 김에 본진의 공연에만 집중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나 스스로를 대면하는 시간을 보내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공연을 보러 서울에 당일치기로 간다고? 셀프유배 기간을 잡기 전에는 몰랐던 본진의 공연 스케줄이었거든요... 본진의 공연에만 집중을 하겠다는 것에는 부합하는 것이니까, 게다가 공연은 양일이었는데 다 가고 싶은 마음 꾸욱 참고 하루만 갔으니까 괜찮다고 합시다...


서울로 가는 것인데도 집으로 간다는 느낌보다는 여행을 가는 느낌이 들었다.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초록색, 하늘색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하고, 들고 간 책을 읽기도 하고, 다이어리에 끄적끄적 일기를 쓰기도 하니 2시간 반이 금방 지나갔다. 기차에서 내려 서울역 내부로 들어서니 빽빽한 밀도가 훅 느껴졌다. 정신없이 바쁜 사람들로 가득해서 공기마저 숨 가쁜 느낌. 공연장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 이미 진이 쭈욱 빠지는 것만 같았다. 날이 후덥지근해서 더욱 힘들었던 것 같다. 공연장이 위치한 잠실역에 도착했을 때는 반쯤 너덜거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원래 집에서 여기까지 40분 정도밖에 안 걸리는데... 숙소에서 부산역까지 30분에, 부산역에서 서울역까지 2시간 30분에, 서울역에서 잠실까지 50분까지... 으아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이지?' 흐물거리는 몸만큼 마음마저도 주저앉아버리는 것만 같았다. 늦은 점심을 챙겨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조금 기력을 회복한 뒤에야 마음에 낀 먹구름을 훠이훠이 흩어낼 수 있었다. 그 사이 가리어졌던 공연을 기다리는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을 다시 마주할 수 있었다. 더불어 이런 생각도 들었다. 오늘의 이 경험을 통해서 지방에서 공연을 보러 올라오시는 분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 오늘의 테마는 '체험! 지방러의 삶'으로 하자.


어느덧 공연 시작 시간이 되었다. 부산에서부터의 긴 여정을 떠올리니 공연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공연은 50인조 오케스트라, 6인조 밴드 연주와 함께 나의 본진을 포함한 4명의 보컬리스트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재난 3부작(스즈메의 문단속, 날씨의 아이, 너의 이름은.) 애니메이션 속 OST를 가창하는 갈라 콘서트였다. 본진의 공연을 본다는 것도 행복했지만 오랜만에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게 되어 기뻤다. 다양한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에서 나오는 선율과 리듬이 콘서트홀을 가득 채우는 것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어서 마음이 한껏 충만해지고 정신이 한껏 고양되는 것 같았다. 


나의 본진 임규형 배우는 1부 마지막과 2부 처음에 나와서 노래를 했다. <너의 이름은.>의 OST인 'Sparkle(スパークル, 스파클)', 'Zenzenzense(前前前世, 전전전세)', 'Nandemonaiya(なんでもないや, 아무것도 아니야)' 총 세 곡을 불렀다. <너의 이름은.>을 재밌게 본 터라 첫 곡 'Sparkle'의 피아노 전주가 나올 때 익숙함이 주는 반가움이 불쑥 들었는데, 그 전주가 시작되고 저 멀리서 입장하는 본진을 보니 반가움이 두 배 세 배가 되었다. 본진이 일본어로 노래를 부르는 것은 처음 듣는데, 본진 특유의 청명한 소리가 곡 특유의 분위기와 어우러져서 정말 듣기가 좋았다. 강렬한 기타의 선율과 드럼 비트로 시작하는 'Zenzenzense'는 빠른 박자감이 주는 가슴 벅참이 있었는데, 본진이 박자를 엄청나게 잘 쪼개서 완전 치여버렸다. 정말 언젠가 한 번쯤은 밴드 음악도 한 번 해주기를 바라게 될 정도. 2부의 첫 가창곡이자 본진의 마지막 곡은 'Nandemonaiya'였다. 가슴을 울리는 팀파니 소리로 시작했기 때문이었을까? 앞의 두 곡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본진이 차분한 목소리로 나긋하게 가사를 건네는 느낌을 주면서 노래를 시작했기 때문이었을까? 시작 부분과는 달리 후렴에서 웅장한 규모의 오케스트라와 밴드 연주를 뚫고 나오는 본진의 성량 때문이었을까? 노래를 부르면서 중간중간 벅차하는 것 같은 본진의 모습 때문이었을까? 왜인지 모르게 눈물이 자꾸만 났다. 뭔가 행복하기도 하고, 벅차기도 하고, 슬픈 것 같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하고... 여러 감정이 마구 뒤섞여서 걷잡을 수 없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특히 오케스트라 반주, 관객의 숨소리, 모든 소리가 다 멎은 듯 고요한 가운데 드넓은 콘서트홀에 본진의 목소리만이 울려 퍼질 때를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공연에 취해 잠시 잊고 있던 '체험! 지방러의 삶'의 하이라이트는 공연이 끝난 후였다. 공연이 거의 정시에 맞춰 끝나서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었지만 마음이 조급했다. '혹시나 지하철역까지 가는 길을 헤매면 어떡하지', '지하철 배차 시간이 너무 길거나 환승 타이밍을 잘 맞추지 못하면 어떡하지'와 같은 생각들이 다리를 재촉했다. 공연의 여운은 기차에 타면 음미하기로 미뤄두고 서울역에 도착하는 것에 한껏 집중했다. 너무 집중했는지 내가 예매한 막차 전 기차도 아슬하게 탈 수 있을 정도로 서울역에 도착해 버렸다. 편의점에서 간단한 요깃거리를 사고 기차를 탔다. 기차가 출발하고 한숨을 돌린 후에야 공연을 찬찬히 복기했다. 그러다 또 울컥. 임규형 배우는 정말 나를 울리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규형 배우의 무대를 볼 때마다 마음에 큰 파장이 생긴다. 그 파장으로 늘 내 마음이 찡하고 크게 울리는 것 같다. 그래서 실제로 울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당일치기로 부산과 서울을 오가려니, 특히 내려가는 길에 차를 놓칠까 봐 전전긍긍하느라 다소 피곤하기는 했지만 공연의 감동을 곱씹고 또 곱씹으며 내려가는 길은 그 어느 때보다 충만했다. 집으로 가는 길 공연의 여운이 계속해서 울려 퍼지는 지금 이 시간이 지방러의 원동력이려나 어렴풋하게 알듯 말듯해서 그저 차창 밖 거리감을 알 수 없는 캄캄한 검은색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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