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의 정의는 바뀌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나를 명확한 단어로 정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과 불안이 있었다. 그러는 내게 친구가 말했다. “굳이 너를 한 단어로 정의할 필요 있어?” 맞는 말이었다. 나의 장점은 땅(로컬)에 기반을 두되,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니까. 여러 실험을 해보자. 기존의 조직과 다른 형태의 실험이 가능할까? 조직이 행여 사라지더라도, 혹은 조직으로부터 떠나게 되더라도 '생존'할 수 있을까? 현실 사회에 발을 딛고, 금전과 역량의 지속가능성을 갖출 수 있을까? 대중으로부터 멀어지지 않을 수 있을까?
2022년은 '대퇴사의 시대'였다. 실제로 주변만 둘러보아도 퇴사와 이직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요즘 사람들 참 책임감 없다고 쉽게 내뱉기도 하지만 실상 이유는 따로 있는 것 같다. 지인들에게 "왜 퇴사하냐?"라고 물어보면 "여기 망할 것 같아서"라는 (소름 끼치는) 답변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들려온 스타트업들의 흥망성쇠 뉴스를 떠올리면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이런 시대에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커리어를 쌓아가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제 그게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평생직장 개념은 사라졌다. 이제는 한 직장을 평생 다니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가고 있다. 나를 지켜주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나의 커리어를 잘 쌓아가는 것을 넘어, 나를 드러내기 위한 '나만의 이야기'를 잘 쌓아야 한고 그게 2년 전부터 화두인 퍼스널 브랜딩일 테다. 나의 일상마저 나의 경쟁력이 되는 시대.. 한 편 짜릿하고 한 편 잔인하다. 기업 역시 이제는 경쟁력 있고 바로 성과를 낼 수 있는 인재를 데려오기 위해 대외적인 ‘채용’ 브랜딩을 중시하기 시작했고, 내부적으로도 직원의 빠른 온보딩을 위해 프로세스를 개선해가고 있다.
| 프리랜서 vs 프리워커
프리랜서와 프리워커는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구별되는 개념이다. 프리랜서 어원은 중세 유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정 영주를 섬기지 않고 자유계약(free)에 따라 보수를 받고 일정 기간 동안 전투를 담당해 주는 기사(lancer)를 프리랜서라고 불렀다. 충성이 아닌 보수를 위해 실리적으로 움직이는 직업 군인이었다. 오늘날 프리랜서는 고용주에게 전속되지 않고 프로젝트나 일을 독립적으로 수행하는 개인을 지칭한다. 반면, 프리워커는 ‘삶의 태도’에 가깝다. 원하는 일을 스스로 만들거나, 자신만의 일하는 방식을 찾아가는 주체적인 사람을 말한다. 소속의 유무는 중요하지 않다. 소속이 없을 수 도 있고, 소속이 여러 개일 수도 있다.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불안정성과 불확정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새로운 노동 방식이다. 자유를 위한 탈상품의 태도다. 경계인을 넘어 자유인이다.
덧) 팜프라를 시작하게 되면서 본의 아니게 기존 업의 틀에서 빗겨 나가게 되었고, 지금의 프리워커에 이르게 되었다. 당시 시골에 자리 잡은 사회초년생에게는 애초에 사수가 없었고 애초에 정해진 매뉴얼이 없었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 하나하나가 다 처음이었기에 어설픔에도 불구하고 대담할 수 있었다. 체계와 척도가 부재한 상황에 대해 면역력이 생긴 걸까. 개인으로 홀로 설 줄 알아야 하는 현시대에 내가 조금이나마 여유로운 마음으로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팜프라 덕분이다. 그때의 일 경험을 떠올리며 '덕분이다'라고 생각하게 될 줄이야..
좋아하는 일로 어떻게 먹고살아?라고 하지만, 사실 좋아하는 것이 많으면 일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다. 나에게 일을 제안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말했다. "애진씨가 농업 농촌에 애정이 있어서", "진님이 저희에게 애정이 있으셔서", "애진님이 이것저것에 관심이 많으셔서" 관심사가 많고 애정하는 것이 많다는 것도 수요가 되고 있는 세상이다. 무관해 보이던 '이것저것'이 결국 다 '하나'로 엮이기 때문이다. 세계관을 넓히는 것은 선택의 폭을 넓히는 길이 되기도 한다.
| 좋아하는 사람들과 지속하는 법
제아무리 좋아하는 일일지라도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다. 더 멀리, 더 크게, 더 오래도록 하기 위해서는 비슷한 가치를 지닌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아닌 ‘일’로 엮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일로 맺어진 덕분에 각자 부담 없이 서로의 필요를 말할 수 있는 사이, 서로의 방향과 성장을 질투 없이 응원할 수 있는 사이, 느슨하게 함께할 수 있는 수많은 사이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다양하게 관계 맺으며 일할 때 중요한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내 생산량의 최소치와 최대치를 잘 예상해야 한다. 극한으로 가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극한에 몰리게 되면 합리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충독적이거나 감정적이 되기 쉽다. 다행히 일에도 성수기와 비수기가 있는데 모든 일이 한시 한때 성수기인 경우는 드물다. 물론 그런 경우가 없지는 않다. 가끔 모든 일의 성수기가 맞물리는 순간에는 일하다가도 “아.. 너무 힘들어..”라는 말이 절로 새 나온다. 둘째, 내가 할 수 있는 '업의 범위'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해당 업무에 내가 쏟을 시간 리소스가 결정되고, 그에 알맞은 업무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결정된다. 셋째, 내가 원하는 삶에 알맞게 일하는 방식과 시스템을 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내가 원하는 라이프에 따라 사업모델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적정한 규모를 잘 정해야 한다. 스스로를 극단으로 몰고 가지는 말자. 경험으로 보건대, 에너지를 쏟는 것은 2-3개까지가 적당하다. 4개가 되는 순간 급속도로 번아웃이 올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