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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애진 Jan 06. 2024

굿적사고가 미래다

핵심은 탈인간중심주의

요즘 틈만 나면 “굿적사고가 미래다”라고 말하고 다닌다. 대부분 그게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는 반응이 돌아온다. 내가 생각하는 굿적 사고란, 만물을 모시는 마음, 물질의 마음을 읽는 영성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탈인간중심주의'다. 올해 만났던 여러 굿적사고의 현장들을 되돌아봤다.


1.  수라 갯벌을 위한 천도제: 새만금 장승제

뜨거운 8월 여름, 32명이 가득 탄 새벽 버스를 타고 해창 갯벌에 다녀왔다. 영화 <수라>를 보고 언젠간 새만금 간척지에 꼭 가봐야지 했다. 마침 보이스 힐링 워크숍에서 알게 된 정희정 선생님이 새만금 장승제에 초대해 주셨다. 당일치기라는 빠듯한 일정이었지만, 분명 현장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을 터였다. 부안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영화 <수라>를 떠올렸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었다. 새만금 방조제가 완전히 닫히던 날, 빗물이 바닷물인 줄 알았던 조개들은 땡볕에서 떼죽음을 맞았다. 새하얀 해변이 새하얀 조개 무덤이 되었다. 세계 최대의 방조제 건축은 곧 세계 최대의 갯벌의 상실을 의미했다. 엔딩 크레딧은 함께한 새들과 갯벌의 생명체들의 이름으로 가득 채워졌다.


말 많고 탈 많은 잼버리 현장을 지나 해창 갯벌에 도착했다. 미리 도착한 사람들 뒤로 50여 개의 장승들이 보였다. 사람들이 이곳을 '해창 장승벌'이라고 부르는 이유였다. 2003년, 새만금 생명을 살리기 위해 네 명의 성직자들이 이곳에서 서울까지 삼보일배를 떠났다.  기성세대들이 미래세대에게 보내는 사죄였다. 생명운동에 있어서도 중요한 분기점이 됐다. 그 후, 무려 20년이 지났다. 분노한 일도 억울했던 일도 잊힐 법한 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잊지 않고 다시 모였다. 개신교, 천주교, 불교, 원불교의 교당으로 쓰인 네 개의 컨테이너에는 다시 벽화가 그려졌다. 새로 만든 장승들을 힘을 합쳐 세우고, 억울하게 죽어간 뭇 생명들을 위해 제사를 지냈다.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장님이 말했다. “장승들도 나이를 먹어 누워계신 분도 계시고, 흙과 같이 사라지신 분도 계십니다. 어린 장승들이 다시 세워지면서 그 뜻을 이어간다고 합니다.” 과거의 오동필 단장님의 의지가 오늘의 아들 승준님에게로 이어진 것처럼 오늘의 목격자는 미래로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었다. 제사를 지낸 후에는 함께 음식을 나눠먹으며 각자가 가져온 악기로 공연이 이어졌다. 나는 얼떨결에 무대로 떠밀려나갔고;; 문어의 꿈을 개사한 갯벌의 꿈을 열창하는 급조된 밴드의 일원이 되어 구석에서 의외로(?) 열심히 젬배를 두들겼다. 역시 노래가 있어야 끈질길 수 있다.


돌아가는 길에 슬쩍 엿본 잼버리의 캠프 사이트는 한 프레임에 담기지 않을 정도로 드넓었다. 그러나 땡볕을 피할 나무 그늘 하나 보이지 않았다. 1991년, 농지확보 명분을 내세우며 시작했던 새만금은 여전히 나무 한 그루 심지 못할 정도로 염분 가득한 땅이었다. 탐조를 위해 찾은 수라 갯벌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사실 알려주기 전까지는 이곳이 갯벌인지도 몰랐다. 물기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잼버리를 위해 새만금호의 수위를 낮춘 탓이었다. 아직 매립되지 않은 마지막 갯벌인 수라의 생명체도 말라가고 있었다. 대체 누구를 위한 잼버리인가. 폭염 속에서는 반나절도 바깥에서 버티기 쉽지 않았다. 그새 열을 잔뜩 머금은 몸은 피로를 호소했다. (이 날씨에서 12일 야영은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완전히 곯아떨어져 버렸던 날이었다.



2. 지구 공동체를 위한 굿판: 해남 대동굿

| 신명, 대동

11월 초, 해남의 신명 나는 집, 에루화헌에서 한바탕 대동굿이 펼쳐졌다. 대동굿이란, 주민들이 한마음으로 정성을 모아, 모두의 안녕을 기원하면서, 공동체로서 조화를 도모하는 마을굿을 말한다. 작은가배, 풍류회, 모두가씨앗, 해남조우 네 개의 커뮤니티가 얽히고설켜 기후생태위기의 시대, 해남 지역뿐만 아니라 한반도, 나아가 지구촌 생명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기로 했다. 한 마음으로 모두의 안녕을 기원하는 진정한 의미의 축제(祭)였다. 나는 작은가배의 일원으로서 참여해 포스터 작업을 했다. 가배는 추석의 고어로 ‘가을의 한가운데’라는 뜻이다. 작은가배를 통해 올해 매달 재밌는 사람들과 함께 작은 추석을 보냈다. 포스터는 민화의 문자도 방식을 차용해 굿판을 풍성하게 해 줄 작은가배 음식들을 그렸다.


굿을 기획하기 시작한 두 달 전, 해남에 모였던 사람들은 미리 짜 놓기보다는 즉흥적으로 흘러가보자고 했다. 준비굿, 여는굿, 흐름굿, 닫는굿, 정리굿. 축제를 만드는 모든 과정이 그 자체로 굿이 됐다.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서나니. 바람과 음의 기운을 일으키는 풍물놀이를 시작으로 다 함께 악기를 들고 지전을 흔들었다. 둥둥 둥둥 북소리에 덩달아 심장도 둥둥거렸다. 덕이 담긴 음식을 나누며 흐름의 음악을 따라 춤으로 어우러졌다. 무대와 관객의 구분이 무의미했다. 그 누구도 대상화되지 않았다. 진짜 신명이란 온전히 나를 비웠을 때 가능하다는 말을 체감했다. 풍류를 아는 K-힙스터와 평화를 아는 K-히피들의 조우. 대동의 신명이었다.


| 지금, 여기

해남 지무 필수님이 공연을 시작하던 순간은 잊을 수 없다. 무대에 선 필수님은 무대를 함께 만들어가는 모든 이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모든 생명을 향해 인사를 올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양손에 지전을 쥐고 지전춤을 추는 몸짓은 무겁고 경건하고 동시에 우아했다. 관객들의 손에도 지전이 쥐어졌다. 굿판의 모두가 주인공이 되었다.


“지금 여기. 이승과 저승이 만나는 공간”

“우린 모두 이전 생에 죽어서 이곳에 온 것”

“미래는 없어요. 미래는 상상하는 것이지.”

“지금, 여기. 오늘은 신령님도 처음이에요.”


| 경물, 새라

사실 해남에 내려가던 중, 교통사고가 났다. 공업소 사장님은 새라(차 이름)의 본네트를 열어보자마자 “전멸이네”하고 말했다. 상대 차는 눈에 보이는 흠 하나 없는데 반해 내 차는 폐차를 하는 상황이 너무 비현실적이고 믿기지 않아 실없는 웃음만 나왔다. 현대적 굿판답게 소 대신 차를 잡은 건가. 둘이 크기도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졸지에 굿에서 가장 큰 제물을 바친 사람이 됐다. 덩달아 이번 굿은 새라를 위한 굿이됐다. 공연 무대가 된 삼신바위 옆에 새라를 위한 재단을 만들었다. 나와 친구들에게 새로운 라이프를 선사하고 떠난 기계의 생명을 기리고 고마움을 표했다. 이틀을 북 치고 춤추며 보낸 후, 서울에 올라오는 길에 나도 모르게 “와, 한 마리의 미친놈이었네.” 중얼거렸다. 그제야 제정신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말 그대로 신명 나게 놀았다. 신이 들렸거나 신이 불렀거나. 새라를 보낸 그 순간부터가 이미 내 굿의 시작이었다.

“굿은 신명 나는 잔치이자 눈물겨운 한풀이예요. 모든 것을 정화하죠. 한이 맺혔던 것도 풀어주고, 화도 풀고, 굿을 통해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마음을 신선하고, 깨끗하게 만들어 줍니다. 아픈 손자를 낫게 해 달라며 소복을 입고 맑은 물을 떠놓고 기도하는 할머니의 모습처럼 굿 역시 우리의 삶, 일상생활 속에 있어요. 무당은 인간과 신이 친구처럼 어우러져 울고 웃으며 큰 잔치를 엮어내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거죠. 더러운 것, 힘든 것을 어루만져 주고 화합을 유도하며 가슴에 맺힌 것들이 한없이 풀어지도록 해주는 역할을 해야 해요. 굿은 ‘나누는 것’이라 말하고 싶어요.”

- 故 김금화 만신 인터뷰 중



3. 곳곳에서 만난 굿적사고: 책, 공간, 영화

| 책 <기계살림> - 인간과 기계가 쌓아가는 관계의 중요성

“생명이 기계고 기계가 생명이다." 정의 구분의 의미가 없다. 생명이란 고전적으로는 세포를 통한 증식을 말했다. 하지만 오늘날 개체가 아닌 전지구적으로 바라보면, 문화적 적자생존에 의해 기계도 물리적 진화를 하고 있다. 부정할 수 없다. 이미 올해 초 등장한 챗지피티는 생성형 AI 시대를 열었다. 인간과 기계동물 '해방'에서 기계 '살림'으로, 인간의 '권리'에서 인간의 '의무'로 방점을 옮겨야 할 때다.

챗지피티의 추천사: “인간이 아닌 존재를 대하는 방식과 우리 행동의 잠재적 결과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제기하고, 인간과 기계가 함께 일할 수 있는 미래에 대한 강력한 비전을 제시하는 책”


| 공간 <이화에 월백하고> - 모든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

강원도 평창에 산골짜기에 위치한 아담한 카페다. 예술가 주인 내외의 오랜 손길이 닿지 않은 구석 하나 없다. 주워온 가지마다 적힌 그마다의 서사들, 깨진 돌조각들의 배열, 주렁주렁 달린 나무판에 적힌 "Respect All Life"라는 글귀. 이제는 태풍이 불면 어쩌지 하는 현실적인 생각부터 들지만 그래서 이곳에 담긴 부지런함을 안다. 어느 세련된 호텔 정원도 이에 견주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아름다웠다. 사소함의 귀함을 아는 마음, 물건과 자연과 행동에 깃든 시간에 대한 애정, 돋보기로 들꽃을 자세히 바라보는 마음이 느껴졌던 공간.

 

|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

개인적으로 마블 시리즈 중 가장 좋아하는 가오갤의 마지막 편. 가오갤의 전체 시리즈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가족’이다. 1-3편은 엄마와의 관계, 아빠와의 관계, 자신과의 관계 탐구로 이어진다. 그리고 마침내 이야기의 진정한 주인공은 지구 인간 동물 피터가 아닌 우주 비인간 동물 로켓임이 밝혀진다. 라일라는 로켓에게 말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언제나 너였어" 만물이 주인공이 되는 것, 굿적사고 그 자체 아닌가. 더불어 영화 말미에서 스타로드가 마지막까지 목숨을 바쳐 구한 것은 다름 아닌 mp3 즉, 음악이었다. 삶의 어느 끔찍한 순간에도 노래는 필요하니까. 전쟁, 죽음 같은 가장 두려운 순간에도 결국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예술이다. 인간 비인간의 공존, 동물 실험, 트랜스휴머니즘, 기술과 예술, 기후위기, 지금 우리 시대를 조망하는 모든 키워드를 담아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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