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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우닝 Jun 17. 2024

앉아서 전화나 받는 일이라고?

그것은 큰 착각이었지. 

학원이든 백화점 문화센터이든 빌딩의 1층이든 프런트 데스크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다. 저렇게 앉아있다가  오는 사람에게  상냥하게 인사하고 , 전화 친절하게 받고 안내하고.. 저 정도의 업무 강도라면 체력이 별로인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시작점이 되어 지원한 학원 상담직이었지만 그 생각이 무척이나 순진한 생각이었음은  일을 하면서 곧 깨달게 되었다. 


물론 친절하게 인사하고 전화를 받는 것은 사람들이 이런 직종에 기대하는 특성 중 기본이다. 그렇다고 모든 데스크직원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목소리가 불친절하다거나 아이들에게 친절하게 웃어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제기하는 학부모들도 있었다. 전 근무지였던 수학학원에서는 주로 원생을 모으는 것, 제 때에 학부모들이 교육비를 결제하게 만드는 것에 고충이 많았다면 새로 일하게 된 영어학원은 이와는 좀 달랐다. 물론 원생을 모집하고 교육비를 받는 일이야 여기에서도 해야 하는 일이지만 이 영어학원은 그렇게 모집한 원생들이 유치부이고 초등부라는 점에서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중고등부 대상일 때는 성적 향상이라는 중차대한 목표가 큰 부담이 되지만 그것 하나가 해결된다면 다른 것은 부차적인 것이 된다. 목표가 굵직하게 하나가 있으니 만족도,  불만족도 대응하기에는 심플했다. 학부모의 만족, 불만족도 시험 결과 하나로 결정되므로 학원의 온 역량을 거기에 맞추면 되는 것이었다. 또한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다 보니  학생 자체를 케어해 준다는 의미는 거의 없었다. 성적을 케어할 뿐. 그러나 학원이 유치부 초등부 대상이다 보니 아이들은 어려졌고  학부모들의 요구는 복잡다단하며 끝이 없었다. 영어실력향상에 대한 불만과 고민은  기본이거니와 그 외에 셔틀노선 조정, 같은 반 아이들과의 관계까지... 여기는 사교육 하는 학원인데 학부모들은 아이들의 감정까지 돌봐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프런트데스크는 일단 학원에서 학부모를 가장 먼저 맞이하는 곳이므로 모든 문의는 이곳이 시작점이 된다.  그러므로 학부모의 문의에 응대하는 직원은 학원 업무의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가장 빈번하게 묻는 학원비, 시간표, 학원의 교재며 커리큘럼,  셔틀 시간과 노선도까지..... 이 정도는 예측 가능한 영역이고 학원 유치부 5세 친구들이 입는 원복의 사이즈는 무엇이며  급식 메뉴며 , 아이들이 먹고 있는 우유 브랜도명도 알고 있어야 한다. 강사가 원어민들만 있다 보니 수업의 프로세스, 시험의 내용, 숙제의 내용 등등 강사의  업무 영역도 기본적인 것들은  알고 있어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모르는 것은  물어서, 물어서  알아내야 한다. 


프런트데스크직원의 위치는 인체로 치면 손가락 끝에 있는 모세혈관이랄까. 위치는 조직의 말단에 있는 모세혈관이지만 기능은 마치 두뇌처럼 조직 전체가 돌아가는 내용을 알고 있어야 한다. 물론 모든 학원에 그런 정보들을 친절하게 먼저 제공해주는 윗사람이나 매뉴얼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문의 건건마다 부딪히며 알아내고 익혀가야 하는 경우가 더 많다. 물어볼 통로가 있고 잘 대답해주는 동료나 선임자가 있다면 그나마 감사할 일이다. 


학부모들은 때로는 인터넷 검색 엔진 혹은 해당관계사로 문의하면 알 수 있는 내용까지 물어보기도 한다. 신한캠퍼스로 학원비 결제는 어떻게 하냐, '우리카드'가 다 BC카드 계열 아니냐 , 키즈노트 어플을 지우고 새로 깔았는데 안 된다 어떻게 하면 좋으냐  이런 단순문의 내용을 처리하는 것은 그나마 양반.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전화하여 민원을 제기하는 컴플레인 전화 응대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시기와 그 내용을 예측하기 어려운 이런 민원전화들은 경력이 쌓여도 두렵고 어려우며 피하고 싶다 왜 학원셔틀버스가  우리 아파트에는 안 오냐 , 강사 누구누구의 어떠한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 아이가 학원 교실이 춥다고 하던데 난방을 왜 충분히 안 트냐 , 아이가 셔틀 타다 보니까 멀미가 난다더라 제일 마지막에 타게 해 줘라, 아이가 학원 계단에서 담배냄새가 난다고 하던데 어떻게 된 것이냐... 민원 전화의 대부분은 내가 바로 해결할 수 없고 다른 누군가... 그 일의 관계되는 직원들.... 에 전달해서 개선시켜야 하거나 혹은 결국은 바꿀 수  없는 영역이므로 더  두려울 뿐이었다. 때로는 학원의 소비자인 학부모가 아닌, 불특정다수의 일반인들에게도 전화를 받는다.  출근해서 전화를 받았는데 대뜸 쌍욕을 해가며 그쪽 학원 셔틀버스가 자기  차 앞을 가로막았다며 소리를 지르고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있었다. 


전화를 건 사람이 그냥 시민이든 , 학부모들이든  용건이 무슨 일이 되었든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든 일단 전화를 받은 프런트데스크 직원에게 공룡이 불을 쏟아내듯 자신의 화와 분노를 쏟아낸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그 화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그 학부모를 진정시켜야 한다.  사실진위여부도 가리기도 전에 고개를 조아리며  죄송하다는 말을 자동반사적으로 한다. '선죄송 후사실확인'이다. 액받이무녀, 동네북, 호구 중의  호구가 프런트데스크의 역할이라는 것은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격앙되고 날 선 목소리를 들으며 기분이 나빠지지  않기란 정말 쉽지가 않다. 이런 불만, 소위 컴플레인 전화를 유연하게 처리해 내는 것이  콜센터, 프런트데스크의  진정한 실력자, 고수들의 면모가 아닐까. 시간이 지나고 연차가 쌓이면서 컴플레인 전화에 무조건 죄송하다를 연발하기보다는 차분한 목소리로 학부모의 불만을 읽어내며  그들을  진정시키고 정확한 경위나 문제내용을 파악하는 스킬(?)을 발휘하게 되었지만  마음이 상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발바닥에는 잘 생기지만 마음에는 쉽사리 생기지 않는 것이 바로 굳은살인가 보다.


이 외에도 아이들이 학원에 머무르는 시간 동안 생기는 모든 문제에 대해 학부모는 학원의 책임을 물으려고 한다.  수업과정에서 생기는  문제 외에도   아이들이 학원에 머무르는 동안 발생될 수 있는 모든  일들에 대해 대처하다 보니 학원이 마치 돌봄 기관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아픈 아이 약 먹이기, 교재에 손 베었다고 오는 아이 반창고 붙여주기, 코피 나는 아이 코피 멈추게 해 주기, 이빨 빠진 아이 지혈 해주기, 속이 좋지 않다며 아이가 토한 거 치우고 아이 옷  닦아주기, 반 친구와 싸웠다며 우는 아이 달래기 등등..  번은 정말 예상치 못 하게 아이가 내 앞에서 토를 심하게 하는 바람에 내 옷에까지 그 토가 튀어서 냄새가 오래 났던 기억이 난다. 이외에도 학원의 상황에 따라 프런트 데스크 직원들은  고장 난 기물이나 컴퓨터 고치기, 막힌 화장실 뚫기, 애들이 벽에 낙서한 것 지우기  등등  뭐든 주어지면 해낼 수 있는 만능재주꾼,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돼야 하기도 한다. 남의 돈 벌기란  정말 쉽지 않다.  




이 많은 학원일들 중에서도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이냐 뭐냐고 묻는다면 바로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학부모들을 상대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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