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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쓴다는 것.

나는 자꾸만 읽는다. 그것도 탐(耽)독이라기 보다 탐(貪)독인 셈인데, 활자의 숲을 헤매다 보면 글쓰기는 자꾸만 내게서 멀어져 간다. 책을 읽다 보면 '나도 이런 문장을 써봐야지' 혹은 '이런 주제로 글을 써봐야지' 싶다가도 막상 다음 책장으로 넘기면, 결국 글쓰는 일을 제일 후순위로 미뤄버리고야 만다. 미루고 미루다, 하루가 마무리되어 버리길 몇 번째던가. 그러다 보면 글쓰기는 내 마음속에서 일종의 죄책감으로 남아버리고 만다. 쓰면 될 것을, 쓰지를 않으니 갈증은 더없이 커져가면서.


내게는 반복해서 꾸는 꿈이 하나 있다. 처음에는 같은 꿈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꿈이란 건 늘 망각을 동반하지 않던가. 하지만 꿈이 거듭될수록 어쩐지 익숙하고, 그다음 내게 닥쳐올 일이 짐작되었다. 꿈임을 자각하다 보니 그 꿈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꿈은 늘 껌을 씹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나는 양 볼이 미어터지도록 많은 양의 껌을 씹고 있는데, 어느 정도 단물이 빠지면 뱉어야 하건만 어째서인지 나는 계속 껌을 씹어댄다. 껌을 오래 씹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탄력이랄까, 끈적임이랄까. 처음의 끈끈한 덩어리는 점점 흐물흐물해지고, 끝내는 치아 틈과 혀밑, 입천장까지 실처럼 풀어져 온 입안을 엉망으로 만든다는 것을. 꿈속의 나는 껌이 풀어질 정도로 계속 씹어댔다. 결국 그 껌은 내 온 입안을 옭아매고, 결국에는 목구멍까지 집어삼킨다. 나는 숨이 막혀옴을 느끼고 껌을 뱉으려 애쓴다. 하지만 껌은 목구멍에 진득하니 달라붙어있었다. 나는 황급히 손가락을 집어넣어 혓바닥과 목구멍에 막혀있는 껌을 꺼내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결국 나는 꺽꺽거리며 잠에서 깨어나고, 꿈임에 안도한다.


나는 반복되는 꿈의 의미를 제멋대로 해몽해 본다. 욕심껏 입안에 밀어 넣은 껌은 나의 욕망이려나, 그리고 목구멍에 달라붙어 쉽게 뱉어내지 못하는 그 질척거림은 미련의 형상이려나. 그렇다면 내가 꿈을 꾸는 이유는 숨을 쉬지 못하는 내게 그만 욕심을 내려놓으라는 의미일까. 그러나 내게 있어 욕망은 고작 글쓰기였다. 먹고사는데 급급해서 글을 쓰기 위한 사유의 시간이 없었다. 한 사람의 아내이자, 한 아이의 엄마이자, 한 부모의 딸로서의 '나'를 위해 다른 '나'를 위한 시간이 나지 않았다. 자꾸만 욕망을 억누르고, 내 마음을 욕심이라고 치부하고, 꿈을 유예했다. 어쩌면 그 꿈의 의미는 글을 쓰고자 하는 욕구를 어떻게든 표출해내지 않으면, 꿈이 미련이 되어 나를 잡아먹어버린다는 의미는 아니었을까.


결국 꿈에 이렇게까지 과한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는 하나다. 어떻게든 글을 써야겠다는 나름의 다짐, 더 이상 미루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바라건대 매일은 아닐지라도, 한 달에 한 번씩 쓰게 될지라도 나는 껌처럼 진득하게 내 목구멍을 막고 있는 이 이야기들을 꺼내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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