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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Mar 13. 2019

36. 카페 사장의 개인정보는 안녕!

<카페 사장의 개인정보는 안녕!>


오늘은 운이 좋나 보다. 손님 두 분이 밖에서 기웃거리다가 들어오신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환대한다. 손님은 인테리어를 한참 구경하다가 메뉴판을 보신다. 나는 최대한 상냥한 목소리로 시그니처 메뉴에 대해서 설명해드린다. 손님들은 이런 시골에서 볼 수 없는 특색 있는 음료가 많다고 칭찬하신다.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그중 한 손님이 "여기 자리가 장사는 잘 되나요?"라고 물어본다. 난감한 질문이다. 장사가 안 되는 파리 날리는 집이라고 말할 수 없다. "앞에 아파트에 입주민이 많지 않아서 아직은 많지 않은데, 소문 듣고 멀리서 와주시는 분들이 꽤 계세요"라고 두리뭉실 둘러서 이야기한다. 손님은 본인도 뷰티 쪽 자영업을 하고 계신다고 이야기하시며, 힘내라고 응원해주신다. 음료를 주문할 듯 주문하지 않는 손님들 앞에 웃으며 서있었다. 그러자 손님이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신다. 태블릿이었다. 


"혹시 종교 있으세요?"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다른 할 일 다 제쳐두고 손님들께 웃으며 응대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주문이 아니라, 종교 믿느냐는 말이었다. 굳어지는 입매를 힘주어 올리려고 무던히 애썼다. 손님은 테이블에서 동영상 하나를 틀어주며 들어보라고 하시고, 다른 손님은 뒤에서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다. 나는 제발 동영상이 짧게 끝나기를 간절히 바라며 태블릿을 바라봤다. 태블릿의 동영상은 '네', '아니오'를 클릭할 수 있게 애니메이션 형식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요새 세상 많이 좋아졌구나. 동영상 속 하나님을 믿느냐는 말에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솔직히 나와 동생을 빼고 부모님, 그리고 할머니와 이모들은 기독교 신자시다. 나는 머리 컸다고 무교가 종교라고 대들고, 바쁘다는 핑계로 교회를 빠져먹기 일수였다. 그러니 '아니오'가 맞겠지. '아니오'를 누르자 전 세계 각지에서 발생하고 있는 온갖 재난사고들이 펼쳐진다. 지진, 홍수, 태풍, 가뭄 등의 자연재해들. 이런 재해에 대해서 '보험'은 대비가 될 수 없다며, 자기와 가족을 위한 진정한 대비가 되어있냐는 말에 '아니오'라고 눌렀다. 결국 하나님이 우리의 대비처가 되어줄 거라는 주옥같은 말들이 나온다. 그리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믿고 있는 하나님은 가짜 하나님이며, 진짜 하나님은 따로 있다는 말도 덧붙인다. 고개를 끄덕이고 설명을 하시는 두 분 앞에서 뭐라 말할 수도 없어서 묵묵히 들었다. 



동영상을 대충 마무리하자 개인정보를 입력하는 란이 나온다. 성경 세미나, 강연 같은 게 있으면 연락을 주신다고 입력하란다. 나는 용기 내서 솔직히 말했다. "사실 이런 종교는 제가 처음 들어봐서 조금 두려운 게 있어요. 어떤 종교인지 오늘 처음 알았으니까, 나중에 관심 갖게 되면 검색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처음 접하는 제 마음도 이해해주세요." 손님들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시다가 카운터에 있는 명함을 뚫어져라 보신다. 가끔 카페 위치를 물어보시거나, 다른 손님들한테 홍보해주신다는 손님들이 있어서 만들어놓은 명함이다. 명함에는 내 이름,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까지 몽땅 나와있다. 손님은 가끔 놀러 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내 명함을 들고 간다. 하. 내 개인정보.  


초보 카페 사장은 처음이라 다 어리숙하다. 특히 손님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싫은 소리 못하는 사장은 고달프기까지 하다. 처음에는 택배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택배를 맡아 달라는 분, 잘못 온 택배를 주고 가시는 분, 착불비를 대신드린 분. 이런 분들이 잠재적인 손님이기 때문에 싫은 소리를 못했다. 카페의 보증금, 월세, 권리금을 물으시는 분들께 '부동산에 가세요'라고 말을 못 했다. 밖에서 사 온 음식을 드시는 분들께 '집에 가서 가족들과 함께 드세요'라고 말을 못 한다. 지켜보는 가족과 친구들은 이런 사장이 답답하기만 하다. 처음에는 나도 이런 내가 답답했다. 주변의 수많은 조언에도 불구하고 나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주변의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싫은 소리 못하는 사장이다. 이게 '나'구나 인정하고야 만다. 이런 게 진짜 '나'의 모습이구나 한다. 결국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애매한씨는 오늘 개인정보를 팔아서, 글쓰기 소재를 획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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