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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Mar 27. 2019

46. 후회하는 당신, 지극히 정상입니다.

<후회하는 당신, 지극히 정상입니다.>


추운 겨울에 카페를 시작하고, 어느덧 봄이 왔다. 길거리마다 하얗게 핀 벚꽃은 수줍게 볼을 밝히고 있었다. 따스한 햇볕은 내 볼과 머리에 앉았다. 즐거운 마음으로 카페로 출근한다. 카페에 도착해서 문을 여는 순간 강렬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마치 수어 번 바닥을 닦고 안 빨아놓은 걸레 냄새와 같다. 마치 땀이 찬 신발을 신고 나서 벗었을 때의 발가락 냄새와 같다. 아,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나는 코를 킁킁거리며 어디서 흘러나오는 냄새인지 집중했다. 테이블, 의자, 화분, 싱크대 가까이 코를 대본다. 결국 범인은 싱크대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싱크대 밑의 하수구였다. 아, 돌겠다.


카페에서는 당연히 물을 쓰는 기계들이 많다. 따라서 물이 빠져나갈 수 있는 배수 호수도 사방팔방 많다. 그중 하나는 커피머신이다. 커피머신 안에는 보일러가 있어서 물이 계속 돌아가고 있고, 에스프레소 샷을 내리면 뜨거운 물이 추출구를 통해서 나오게 된다. 샷을 추출하고 난 후에는 기계(포타 필터 등)에 묻어있는 원두찌꺼기를 뜨거운 물로 한번 헹군다. 이러한 찌꺼기들이 호수를 타고 내려가게 된다. 나중에는 호수가 막히거나, 고여있는 물로 인해 냄새가 나게 된다. 두 번째 제빙기다. 바로 시원한 얼음을 만들어주는 제빙기. 제빙기도 수도가 연결되어있다. 수도에서 나오는 물이 정수필터를 거쳐 제빙 기안으로 들어간다. 제빙기 안에서 열심히 얼음을 만들어주고, 녹은 얼음물은 배수 호수를 통해 빠져나오게 된다. 그 외에도 핫 워터 디스펜서(뜨거운 물을 만들어주는 기기), 싱크대 등의 기계에서 물이 배수된다. 여러 개의 호수들이 집결되는 곳은 한 곳, 하수구다.


겨울에 카페를 시작하다보니 전혀 고려하지 못했던 문제다. 이제 날이 따뜻해지니 호수뿐만 아니라 하수구를 통해서도 냄새가 올라온다. 불쾌한 냄새는 작은 카페를 순식간에 휘감았다. 환기를 시키고, 뜨거운 물은 하수구에 연거푸 부워봐도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하수구에서는 끊임없이 불쾌한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카페에 비치해놓은 디퓨저와 방향제를 하수구 근처에 놔둬본다. 하지만 하수구의 냄새와 방향제의 냄새가 뒤섞여서 더 곤란한 냄새를 만들어낸다. 무릎을 꿇고 앉아 하수구 벽면의 더러운 때들을 걸레로 닦아본다. 하수구 주변도 뜨거운 물과 세제를 이용해서 닦는다. 그래도 이 불쾌한 냄새는 없어지지 않는다. 혼자서 정신없이 호수 선들을 정리하고, 하수구도 닦아보고, 문도 열었다 닫았다 하며 애써본다. 어느새 손에는 베이고 까진 상처가 한 가득이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도 이 냄새는 사라지지 않고 끈덕지게 붙어있다. 


울컥 눈물이 난다. 슬퍼서 우는 눈물이 아니라, 너무 짜증 나서 나오는 눈물이다. 내 맘대로 되지 않아서 나오는 서러움의 눈물이다. 하수구야 탈취제를 사서 뿌리고, 하수구 트랩을 설치하면 해결할 수 있다. 내가 정말 짜증 나고 억울한 건 버는 돈은 없는데 써야 할 데는 많다는거다. 카페를 오픈한 지 반년도 안됐는데 벌써 여기저기 손볼 데가 생긴다는거다. 비싸게 산 머신들도 소모품이라고 닳고, 때가 타기 시작했다는 거다. 예기치 못하게 카페에 계속 필요한 것들이 생기고, 고쳐야 할 곳들이 많아진다는거다. 견딜 수 없이 짜증 나는 건 '내가 왜 카페를 한다고 했을까', '내가 왜 이러고 있을까', '내가 무슨 부귀영화 누리겠다고 이러고 있는가' 하는 후회했다는거다. 


회사를 벗어나, 새로운 '카페'라는 공간을 차렸을 때 행복이 시작될 줄 알았다. 장사가 좀 안되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니까 마냥 행복할 줄 알았다. 물론 행복한 순간은 많았다. 더 이상 업무나 직장상사로부터의 스트레스도 없었고, 손님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며 세상사는 재미를 느꼈다. 단골손님들과 근황을 물으며 간간히 대화를 나눌 때면 마음이 따뜻했다. 내가 만든 음료와 디저트를 맛있게 드시는 손님들을 보면 '카페 차리길 잘했다'라고 생각했다. 손님이 없는 날은 커피 한 잔에 책 한 권을 읽으며 나만의 여유를 만끽했다. 스트레스로 M자형 탈모가 온지 알았는데, 이마에서 새로 자란 잔머리들을 발견했을 때는 더없이 행복했다. 그냥 사소한 일상이 행복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현실적인 벽에 부딪힐 때는 이러한 행복감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왜 사서 고생하는 길을 선택했는가, 왜 좀 더 나은 선택을 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후회만 남는다. 지금이 그 순간이었다.


무슨 일을 하건 후회가 없을 수는 없다. 설령 내가 스스로 선택한 일에도 후회가 뒤따른다. 내가 좋아서 하겠다고 시작한 일에도 후회가 남는다. 내가 선택해서 한 일에 문제가 발생할 때는 더 큰 후회를 한다. 그러나 이는 어쩔 수 없는 문제다. 나는 초능력자가 아니다. 나는 예언자가 아니다. 내가 선택한 이 길에 어떠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얼마나 어려운지를 미리 알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수많은 선례들과 데이터들을 들고 와, 이 길을 가지 말라고 뜯어말린다. 그러나 나는 어쩔 수 없는 평범한 사람이다. 겪어보기 전에는 모른다. 겪고 나야 안다. 나는 나의 직감을 믿고 선택했을 뿐이다. 오히려 선례들과 데이터를 믿고, 이 길을 가지 않았더라면 더 큰 후회가 남았을 것이다. 카페를 시작하며 얻었던 행복감, 여유로움, 삶의 재미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우리가 어떠한 선택을 하고, 후회를 하는 이 모든 과정은 그저 평범한 삶의 일부분이다. 선택을 하고, 후회를 하고, 포기를 하고, 새로운 길을 걷는 평범한 일상일 뿐이다. 지극히 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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