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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May 07. 2020

78. 배달음식은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어

<배달음식은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어>


고정적인 월급이 나오는 직장을 다니던, 들쑥날쑥한 매출에 의존하는 카페를 운영하던 모든 노동의 목적은 다 '먹고 살기' 위함이다. 그런데 말이다. 먹는 게 해결이 안 되면 정말이지 서럽고 눈물 난다. 이게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먹는 게 제대로 안되고 일만 하면 얼마나 서러운가. 처음 카페를 운영할 때에 이 놈의 '밥'이 제대로 해결이 안 됐다. 직장에서는 점심시간이 있어 구내식당을 가던, 회사 앞 식당을 가던, 혹은 자리에서 샌드위치로 때우건 '밥'을 먹을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카페에서는 언제 올지 모르는 손님들을 위해 항시 문을 열어두어야 했다. 카페에서는 냄새가 덜난 음식, 카운터 뒤에 숨어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주로 찾아 먹었다. 주로 빵 따위였다. 특히 유통기한이 지나버리거나 판매가 저조한 빵 따위가 내 주식이었다. 빵 한두 조각으로는 배도 차지 않아서 항상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있어야 했다. 그야말로 허기진 게 일상이 되어버린 삶*이었다. 

* 애매한 인간 ep5. '허기진 게 일상이 되어버린 삶' https://brunch.co.kr/@aemae-human/10


그렇게 버티고 버텨, 마감시간이 다가오면 나는 편의점으로 뛰어가 컵라면이나 삼각김밥을 사 먹었다. 혹은 '배달음식'을 시켜먹었다. 바로 오늘과 같이. 카페에서 하릴없이 휴대폰을 들여다볼 때 나는 주로 '배달의 민족'이니 '요기요'니 하는 배달어플을 본다. 어플 속 가게들의 메뉴판을 훒어보며 군침을 흘린다. '먹을까?', '참을까?'를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반복한다. 그러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날이 되면 '배달음식'을 시켜먹는 거다. 바로 오늘과 같이.


오늘은 지난 3일 동안 내내 눈에 담아두었던 피자를 시켰다. 배달이 오자마자 잽싸게 피클을 꺼내고, 피자박스를 열어본다. 피자박스에서 전해지는 모락모락 따스한 온기, 향긋한 치즈 냄새. 굶주림에 지쳐있던 터라 손도 씻지 않고 게걸스럽게 우걱우걱 먹었다. 식도로부터 전해져 오는 뜨끈함, 점점 차오르는 뱃속. 정신을 차려본다. 피자는 8조각 중 4조각을 먹어치운 채다. 나 혼자 L사이즈 피자의 절반이나 해치웠다. 아, 배부르게,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 그런데, 분명 나는 '잘' 먹었는데 기분이 이상하다. 가슴이 답답하고, 슬프고, 고독하고 또 비참하다. 분명 허겁지겁 맛있게 잘 먹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뜬금없게도 '비참함'이 몰려온다. 

피자 봉투에 달려있는 영수증이 팔랑거린다. 3만 3천9백 원. 배달 최소 주문액을 맞추느라 콜라도 시켰는데, 1.5L 중 2/3 이상이나 남아있다. 무릎을 구부려 무릎 사이로 얼굴을 파묻는다. 다 먹지도 못할 피자를 3만 원이나 주고 시킨 내가 밉고, 그놈의 배달비가 뭐길래 혼자 먹을 거면서 L사이즈를 시킨 내가 밉고, 영양분도 하나 없는 이런 빵 따위를 맛있게 먹던 내가 밉고, 체면 안 챙기고 게걸스럽게 추접하게 먹고 있던 내가 밉고, 돈 벌겠다고 카페에 내내 나가 있다가 밤 10시가 돼서 이렇게 먹고 있는 내가 밉고, 몸도 건강도 심지어 '밥' 한 끼도 제대로 못 챙기는 내가 밉다. 


얼마간 그러고 있었을까, 몰려오는 비참함을 온몸으로, 오롯이 혼자서 견디고 있는 이 시간이 버겁다. 시계를 바라본다. 12시.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긴 착신음 끝에 엄마가 자다 깬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응, 딸"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엄마 목소리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여보세요? 딸,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냥. 그냥 지난번에 엄마가 밥하기 귀찮다고 딸랑 밥하고 김치만 줬었잖아. 그 김치 맛있었는데."

 엄마는 뭐 그런 걸 다 기억하냐고 핀잔을 주며 말한다. "지금이라도 집으로 올래?" 나는 그냥 "다음번에"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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