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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May 04. 2020

77. 저기요, 콩나물 좀 빼주시겠어요?

<저기요, 콩나물 좀 빼주시겠어요?>


카페 사장이 되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은 휴대폰을 바꾸는 일이었다. 햇빛이 사르륵 들어오는 카페의 풍경, 크레마가 가득한 커피, 반짝반짝 윤이나는 커피잔과 커트러리. 이 모든 순간, 순간을 사진으로 붙잡아 두어야 했다. 카페는 시각적인 것에 영향이 큰 업종 중 하나이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까지 갤럭시 유저다. 아이폰은 사진이 가장 분위기 있고 맛깔스럽게 나온다고들 하지만, 나는 아이폰을 생전 써본 적이 없어 사용하는 게 영 불편했다. 내 갤럭시 S10은 카페에서의 순간, 순간을 있는 그대로, 나름 잘 포착해준다. 내 딴에 갤럭시 S10이라는 최신폰을 사용하고 있으니 '얼리어답터'까진 아니더라도 '멀리어답터'까지 되는 기분이 든다. 매달 새롭게 출시되는 휴대폰, 노트북, 태블릿 등 전자기기들의 홍수 속에서 나름 최신 흐름을 잘 타고 있다고 흥얼거려본다. 쏟아지는 기술의 발전 속에서 나는 아직 뒤처지지 않았다고 자부해본다.


그런데 요새 들어 손님들이 부쩍 '에어팟'이니 '버즈'니 하는 것들을 끼고 나타난다. 뭔고하니 블루투스 이어폰이란다. 가방 속에서 이 물건, 저 물건 다 휘감고 엉켜있는 내 이어폰이 생각난다. '이참에 이어폰을 바꿔볼까?' 나는 네이버에 들어가서 '에어팟'을 검색해보니 최저가 149,900원?!!! 무슨 이어폰 하나에 149,900원?!! 나는 못 볼 거를 봤다는 듯 검색창을 꺼버렸다. 무섭다 정말. '에어팟'이란 존재를 알고 나서는 그게 눈에 점차 잘 들어왔다. 카페에 방문하는 대부분의 손님들 귀에 한쪽이나 두쪽에 꽂혀있었다. 처음에는 '와, 이 물건이 이어폰을 대체해버렸구나'라는 생각에 놀랐다면, 지금은 짜증 난다. 지금 같은 상황에 특히. 그것도 몇 번이고 반복되는 이 상황에 특히!


"손님, 아메리카노는 따뜻하게 드릴까요? 아님 시~원하게 드릴까요?"


"아메리카노요"


"네, 아메리카노 핫으로 드릴까요 아님 아이스로 드릴까요?"


"..."


"손님?"


"네?"


한 번도 아니다, 두 번도 아니다. 에어팟을 끼고 나타나는 손님마다 대부분 이런다는 거다. 게다가 이놈의 에어팟은 선이 없다 보니 꼭 한쪽이 사라지는 손님이 등장한다. "오른쪽 에어팟을 잃어버렸는데, 혹시 카페에 있어요?" 찾아보고 있으면 연락드린다고 해도 손님은 쉽게 포기할 수 없다. "혹시 다시 찾아봐주시면 안 될까요?" 절박한 마음을 알기에 다시 한번 찾아봐도 없는 물건은 없다. "다시 찾아봐주세요." 충분히 이해한다. 콩나물 두 알에 15만 원에 육박하니, 한쪽만 해도 7만 5천 원이 넘어버리니까. 7만 5천 원을 바닥에 버렸다고 생각하니 내가 눈물 나고, 내가 안쓰러워 죽겠다 정말.


나는 이런 손님들을 볼 때마다 '에어팟'이란 존재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게 된다. 에어팟으로 좋은 음질의 음악을 듣는 대신, 현실에서의 대화가 주는 도란도란한 소리들을 못 듣게 된 건 아닐까. 에어팟이 주는 편리함에 속아, 내 귀가 지금 닫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닐까. 고작 이어폰일 뿐인데, 잃어버리면 그 하루를 통째로 잃어버리게 되는 건 참 이상한 일이다. 나는 주렁주렁 '줄'이 달린 내 이어폰에 만족하기로 했다. 언제건 '줄'을 잡아당겨 귀에 꽂혀있는 이어폰을 0.5초 만에 뺄 수 있다. 하나하나 차곡차곡 케이스에 끼워 넣는 게 아니라, 그대로 휙휙 손에 감아 빼고 가방에 욱여넣을 수 있다. 꺼낼 때는 가방에 빠꼼 빠져나와있는 '줄'을 주욱 잡아당겨 그대로 빼낸다. 이어폰에 달린 '줄'이 주는 불편함이 오히려 내게는 감사함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무엇보다도 15만원을 아끼게되서 행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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