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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Mar 10. 2019

35. 부당한 업무지시는 무엇보다 달콤했다.

<부당한 업무지시는 무엇보다 달콤했다.>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퇴사한 직장의 윗윗기수 선배가 아내분과 함께 카페에 왔다. 내가 퇴사하고 어디선가 카페를 차렸다는 소문을 듣고 와봤단다. 그다지 친분 있던 사이도 아니었던지라 이런 방문이 놀라웠다. 그분께 음료 두 잔을 드리고, 서비스로 감귤 두 개를 드렸다. 처음에는 와플을 구워나갈까 고민했다가 이내 접었다. 그 분과 나의 친분을 고려할 때 서비스로 와플은 과했다. 때마침 냉장고에 있던 제주도산 감귤 두 개를 드린다. 그분은 "카페를 예쁘게 잘 차려놨네요"라고 말을 건넨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감사하다는 틀에 박힌 대답만 했다. 그런데 그분은 내가 오랜만인지라 반가웠는지 말을 이어간다. "잘 지냈죠? 저는 지난번 인수인계한 조합비를 아직도 처리 못하고 있답니다. 거긴 그때 그대로예요. 하하"


아, 내가 얼마나 회사에 애착을 갖고 열심히 몸 바쳐 일했는지 다시 한번 깨닫는다. 입사해서 어영부영 동기들을 따라 가입했던 노동조합. 어느새 나는 노동조합에서 내 목소리를 내며 일하고 있었다. 나 자신을 위해, 동기들을 위해, 나아가 모든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투쟁했다. 노동조합비를 관리하고, 노사협의회에서 속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내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투쟁하여 얻은 복지는 그 어떤 결실보다 달콤했다. 그래서 부당한 것, 불합리한 것도 이렇게 투쟁하면 해결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순진하게. 어느 날 회사에서 내부 직원 평가를 한다고 공지했다. 철저한 익명이 보장될 것이라는 말과 함께. 나는 이렇게 소통의 창구가 늘어난 것에 대해 회사가 발전하고 있다고 여겼다. 그리고 솔직하게 기재했다. 그동안 받았던 부당한 업무지시에 대해서 구구절절 늘여놓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평가제도에 대한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어떠한 조직적 변화도, 내부적 변화도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다. 내부 직원 평가제도는 한 직원을 올리고, 내리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었음을.


이후로 직원들이 제출한 내부 직원 평가에 대한 결과가 각 팀장님에게 뿌려졌다. 팀장님들은 누가 썼는지 추적하기 시작했다. 나도 그 타깃 중 한 명이었다. 과장님 두어 분은 나를 수차례 불러 심문했다. 누가 생각 없이 솔직하게 평가를 했냐고 나를 추궁하듯 비난했다. 나는 모른 척 시치미를 뗐지만 손발은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그 후로 나는 팀장님과 과장님께 사소한 일로 여러 차례 불려 가 면담을 받았다. 나는 속절없이 온갖 화살을 받았다. 나는 팀 내부의 배신자였다. 사회생활도 얼마 안 해 본 말단 주제에 괜히 정의로워지고 싶다고 열의가 넘쳤다. 진정한 나 자신을 위한 복지는 '내가 나서지 않을 때' 발생함을 몰랐다. 나는 다시는, 두 번 다시는 나서지 말자고 다짐했다. 부당한 업무지시를 받아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니 거부하지 않고 했다. 막상 보니 부당하다고 생각한 업무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그냥 일상적으로 하듯이 처리하면 되었다. 게다가 그러한 업무들이 항상 달콤하고 매혹적인 사탕을 달고 있었다. 나는 업무의 수행 과정 중에도 그 사탕을 받아먹었다. 업무를 마무리하고 나서는 혀를 아릿하게 하는 더 단 사탕을 받았다. 나는 그렇게 단맛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나를 괴롭히는 건 팀장님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혀가 저릿할 정도로 단 사탕에 내 마음이 썩어가고 있었다. 죄책감이 나를 짓눌렀다. 나는 깨끗한 척, 도도한 척하며 온갖 잘못은 부당한 지시를 한 팀장님께로 돌리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살면서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다는 부모님 앞에서 나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나를 자랑스러운 친구로 보는 친구들 앞에서 더 이상 웃을 자신이 없었다.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더 이상 진솔한 나로 남을 수가 없었다. 죄책감은 나를 짓누를 뿐 아니라 짓이겨버렸다. 이런저런 마음의 짐 때문에 무작정 퇴사하고 잊으려 노력했다. 정신없이 카페를 준비하다 보니 잊은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때 그대로다. 내가 저지른 실수들은 퇴사를 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부당함에 저항하지 않고 따랐던 나, 나아가 '관행'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며 선도해서 했던 나는 사라지지 않는다. 회사 문서함 어딘가에, 같이 일했던 회사 사람들 기억에, 나 자신의 마음에 끈적거리는 진득함으로 남아있다.


나는 퇴사한 지금까지도 저 순간들을 후회하며 살아간다. 죄책감에 속으로 아우성친다. 나는 저 사람들과 다른 사람이기에 퇴사한다고 말했지만, 결국은 그 사람들과 같은 사람이 되어서 퇴사했다. 혹시 누군가가 부당한 업무지시를 받거든 이 말을 꼭 전해주고 싶다. '내가 거부하지 않음으로써 거부하는 사람이 두 사람이 되고, 세 사람이 되고 나아가 우리 모두가 될 수도 있었을 가능성을 처음부터 차단한 건 아닌가' 고민해보라고. '부당한 업무지시를 수행하며 받은 달콤한 대가가 과연 나를 위한 것인가' 고민해보라고. 그리고 생각보다 죄책감이라는 휴우증은 자주 곁에 나타나 나를 괴롭힌다고.  



노태강(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의 인터뷰 기사를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아래는 인터뷰 내용을 일부 발췌한 것으로 지난날을 후회하며, 앞으로를 후회없이 살기위해서 마음에 꼭 담아둔 문구입니다.



‘당시의 상황에서 부당한 지시를 거부해도 소용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거부행위 그 자체였다. 또 ‘내가 하지 않더라도 또 다른 사람이 해야 했을 것’이라고도 이야기한다. 그러나 내가 거부하지 않음으로써 거부하는 사람이 두 사람이 되고 세 사람이 되고 나아가 우리 모두가 될 수도 있었을 가능성을 처음부터 차단한 잘못은 어쩔 것인가. 자신을 배신하지 않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서울신문/2017-11-27)


http://go.seoul.co.kr/news/newsView.php?id=20171127030006&wlog_tag3=naver#csidxdbfb0005e7f84a0a5bc84aa370e128f



my deepest condolence to me for my los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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