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매한 인간 Feb 27. 2019

24. 저희 카페는 여름에 빙수 안 합니다.

<저희 카페는 여름에 빙수 안 합니다>


추운 날씨가 한풀 꺾였다. 바람은 좀 불어도 바람 사이의 햇볕은 따스하다. 이러다 금방 여름이 올 것만 같다. 이번 여름도 얼마나 더울까! 생각해보니 여름 하면 '빙수'를 빼먹을 수 없다. 겨울에 카페를 오픈하다 보니 빙수에 대한 고민을 전혀 못했다. 주변 지인들에게도 물어보니 카페에 '빙수'가 없으면 2% 모자란 느낌이 있단다. 나는 부랴부랴 빙수 기계를 알아봤다. 빙수 기계는 무진장 많았다. 정말 무진장. 옛날 빙수처럼 굵직하게 갈아주는 빙삭기, 사르르 입안에서 녹게 잘게 갈아주는 빙삭기, 눈꽃처럼 생겼다고 해서 눈꽃 빙수기, 빙수가 실타래처럼 뽑아져 나오는 타래 빙수기, 대패 빙수기 등등ㅡ


뭔가 식감도 좋을만한 눈꽃이나 타래 빙수가 좋을 것 같다. 빙수기 가격을 검색해본다. 눈을 비벼본다. 하지만 눈 앞의 숫자는 바뀌지 않는다. 빙수기의 가격은 3백~5백만 원. 단단한 얼음을 갈아도 쉽게 무뎌지지 않는 칼날을 만들어 내는 기술력, 순식간에 음료를 냉각시켜 빙수로 뽑아내는 기술력, 그 밖에도 빙질을 높이는 기술력에 따라 빙수기의 가격은 천차만별이었다. 업소용 빙수기는 빠른 시간 내에, 원하는 양을 충분히 뽑아낼 수 있는 만큼 비싸다. 안 되겠다. 나 같은 작은 카페는 업소용 빙수기는 무리다. 


가정용 빙수기를 알아봤다. 가격도 저렴하다. 5만 원~10만 원 사이. 그런데 문제는 두 개 이상 빙수 주문이 들어왔을 경우, 만드는데 10분 이상이 걸릴 것 같다. 게다가 소음도 장난 아니란다. 이 작은 카페에서 빙수기가 윙윙 거리며 돌아갈 생각을 하니 벌써 머리가 아프다. 빙수를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며칠을 고민하다가 빙수를 하기로 결심했다. 무엇보다도 내가 빙수를 먹고 싶었다. 시원한 사각사각 얼음 위 달콤한 팥과 연유는 환상이다. 중고 업소용 빙삭기는 도저히 엄두가 안 난다. 나름 가정용 중에서도 뛰어난 품질을 자랑한다는 빙수기를 하나 골랐다. 구매하기 전 유튜브, 네이버에 올라와있는 사용후기도 꼼꼼히 본다. 이 걸로 결정했다.


친구들에게 여름에 빙수를 판매하기로 결정했다고 자랑했다. 게다가 그냥 빙수가 아니다. 나는 밀크티를 아주 끝내주게 잘 만드는데, 밀크티만 매일 사가는 단골손님도 있을 정도다. 그래서 밀크티빙수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친구들은 어서 먹어보고 싶다고, 빨리 개시하라고 야단법석이다. 그런데 한 친구가 물어본다.


"빙수 하나에 수저가 4개, 5개 붙어도 괜찮겠어?"


빙수는 한 그릇에 나눠 먹어야 진짜 빙수를 먹는 느낌이 든다. 더운 여름에도 다 같이 붙어먹게 해주는 빙수. 그게 진짜 빙수의 묘미 아닐까?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는 입장이 바뀌었다. 난 테이블도 대여섯 개 밖에 없는 자그마한 1인 카페다. 빙수 하나를 판매하게 되면 육천 원에서 팔천 원 정도 금액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5명이서 하나의 빙수를 시키면 나의 매출은 어떻게 될까? 빙수를 해도 괜찮은 걸까?


정말 맛있는 빙수를 만들어낼 자신이 있었다. 오순도순 모여서 먹는 빙수의 맛을 모르는 게 아니다. 한 여름에 빙수는 빠질 수 없는 메뉴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가진 돈과 앞으로의 매출을 고민해야 하는 1인 카페의 사장이다. 이 카페를 유지하고 지켜가고 싶어 하는 사장일 뿐이다. 결국 엄청난 고심 끝에 결정했다. 



이전 06화 34. 어차피 있을 수밖에 없는 '적'이라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