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의 탓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가난하기 그지없는 부모님 때문에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생각했고 결혼을 한 이후에는 모험을 싫어하고 확신이 서지 않으면 도전하지 않는 겁쟁이 남편 때문에 불편한 생활을 하는 거라 생각했다. 단체에 가서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이기주의적 생각 때문에 협력이 잘 안되는 것이며, 내 삶이 꼬이게 된 모든 일은 나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 때문이었다.
많은 일을 남의 탓으로 여기다 보니 불편한 점이 많았다. 가정에서도 밖에서도 싸움이 잦았고 모난 성격의 소유자로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항상 인상은 구겨져 불평이 가득한 사람이 되었다.
인생은 내가 계산했던 대로 정답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나는 모험과 도전을 겁내는 남편 때문에 내 뜻을 펼친 적이 없다며 남편을 많이 원망했다. 당신 때문에 내 인생이 엉망이 됐다고, 내가 어떤 문제를 제안했을 때, 한 번이라도 잘될 거라고 토닥이며 희망을 주는 것보다 안 되면 어쩔 거냐는 걱정부터 하는 남편 때문에, 내 말에 한 번도 동의해주지 않고 남의 편만 드는 남편 때문에, 그래서 남의 편들지 말고 내 편 좀 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휴대전화에 남편 대신 내편이라는 이름으로 저장하기도 했다.
우연히 건강검진을 받을 일이 생겼다. 썩 좋지 못한 결과 때문에 종합병원을 전전하며 한 달을 지내는 동안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생각해봤다. 죽음이 코앞에 바짝 다가온 거라면, 지금의 모습만이 다른 사람의 기억에 마지막으로 남겨진다면, 나는 얼마나 불행한 삶만을 살아온 것인가. 어디서든 남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을 생각을 하지 않고 내 주장만을 외쳐대기만 했던 모든 일의 근원이 다 나 때문인 것 같았다.
‘때문에’를 ‘덕분에’로 바꿔 생각해봤다. 모두가 가난했던 그 시대를 굶어 죽지 않고 무사히 건너온 덕분에 오늘을 살고 있었고 그 시대를 무사히 건너게 해주신 부모님 덕분에 나는 다른 사람보다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내 가슴에 쌓인 말이 많음에도 들어줄 시간 없이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은 언제나 내 글의 씨앗이 되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남편이 잘 호응해줬더라면 살림살이가 정말 나아졌을까를 생각해봤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사다리를 세워놓고 같이 올라가기를 요구하는 무모한 내 말에 남편은 쉽게 동의할 수 없었을 것이다.
덕분에 빚으로 허덕이지 않아도 되었고 겉모습만 보고 덜렁덜렁 일을 저지르는 나를 대신해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뒷부분까지 꼼꼼하게 잘 보아준 남편 덕분에, 모험을 책임져야 하는 남편 덕분에 그럭저럭 편안하게 살고 있었고 부지런하고 성실한 남편 덕분에 나는 지금 여기까지 무사히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때문에 살아온 남편 또한 나 덕분에 오늘까지 살아왔음을 감사히 여겨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생겼다.
생각을 바꾸게 된 깜깜했던 한 달 덕분에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었고 미워하는 마음이 얼마나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인지도 깨닫게 되었다. 또한 나를 치료하는 가장 좋은 명약은 용서부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 또한 모두가 덕분에 감사해야 할 일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2015년 경남신문 작가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