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계획서
십년 주기로 나는 생의 계획서를 작성해 왔다. 이십대까지는 내 삶이 아니었으니 주어진 대로 살아야만 했다. 선택할 일이 수없이 많았으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내 몸은 내가 아니라 가족의 일부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 아닌 선택이었다.
결혼을 하고 서른부터는 내 삶을 찾고 싶었다. 계획서를 빡빡하게 작성해 놓고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냈다.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었지만 주어진 환경에 크게 불평하지 않았다. 일과가 끝나 아이들을 재워놓고 일기장에 떨어진 코피를 보면서도 그 짧은 시간이 가장 달고 행복했다. 나를 찾아가기 위한 시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삶은 풍요로워지지 않았다. 언제나 배움에는 갈증이 있었고 방향도 목적도 없이 남의 삶을 기웃거리며 시기하고 질투하면서 내 삶을 바라보고 한숨짓는 일이 빈번했다. 여러 갈래의 이정표를 바라보면서 무작정 들어갔다가 되돌아 나오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 길이다 싶으면 다른 길이 보이고 또 다른 길이 보였다. 나이제한이 없는 글을 만난 건 정말 행운이었다.
사십에 등단했다는 고 박완서 작가를 존경하면서 계획서를 수정했다. 수많은 문장들이 내 주위를 맴돌았지만 내 것으로 잡을 수 있는 게 쉽게 보이지 않았다. 내가 가고 있는 글의 이정표에는 삶의 설명서가 없었고 닿을 수 없는 글의 높이에 자주 좌절했다. 미움이라든지 질투라든지 증오 같은 낱말들을 가슴에 담아놓은 내가 보였다. 사랑을 받아본 기억이 없으니 줄 줄 몰랐고 누군가의 조그만 관심에도 부담스러워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래서 내 글은 대부분 어둡고 습했으며 우울했다.
겨자씨만한 희망을 품고 방향도 없이 마구 뜀박질을 했지만 불혹의 내 안에는 항상 가시덤불이 가득 차 있었다. 마음속이 불편한 것들로 가득 차 있으니 다른 무엇이 들어올 공간이 없었다. 내 가슴은 더 공허해져 갔다. 나이를 더할수록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마음 귀퉁이를 건드리기 시작했을 때, 나를 바꾸는 연습이 필요할 것 같았다. 웃음기 없는 얼굴의 입모양을 바꿔야 할 것 같았고 미움 가득한 마음을 사랑으로 교체해야 할 의무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 오십대에 등단해서 끊임없이 좋은 글을 엮고 있는 몇 분을 만났다. 하늘은 아직 내 길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삶의 주기가 바뀔 때마다 이 모양 저모양의 멘토를 만날 수 있었음에 감사드린다. 내가 지금껏 써 왔던 삶이 그랬던 것처럼 인생은 내가 쓴 계획서처럼 살아지지 않겠지만, 비어 있는 십 년의 계획서에 제일 먼저 무엇을 써 넣을까 고민했다.
내게 주어진 하늘의 뜻은 아직 알 수 없지만 계획서를 작성할 때마다 빠지지 않았던 한 가지. 배워야 할 것, 깨달아야 할 일이 헤아릴 수 없이 많기에 아주 작은 글 씨앗 몇 개 조심스럽게 써 넣는다. 언젠가는 이 작은 씨앗이 커다랗게 자라날 것을 믿는다. 가시덩굴을 헤쳐내고 비바람을 이겨내고 튼튼한 나무가 될 것을 믿는다. 그리하여 내 마음의 정원에 누군가가 와서 쉴만한 그늘 한 곳 만들어 놓을 수 있음을 기대한다. 깜깜한 누군가의 길에 작은 빛이 되어 줄 수 있는 실천하는 계획서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