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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Jun 21. 2021

책을 선물한다면

상큼하고 멋지게

내 책장에는 『자기결정』이라는 제목의 낡은 붉은색과 선명한 붉은색 책 두 권이 나란히 꽂혀 있다. 진심 권하고 싶은 지인이 있어 선물하려고 샀지만 망설이다 결국 주지 않았다. 좋은 책을 보면 다른 이에게도 권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나를 변화시킨 인생의 책은 꼭 누구에게 선물하고 싶다. 『자기결정』이라는 책은 나의 깊은 불안과 의문에 답해주어서 개인적으로 소중하게 여겨왔기에 이 책이 필요할 것 같은 가까운 지인 여럿에게 권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후에 책이 어땠냐고 물어보면 어떤 이는 책이 어렵다고 하였고, 어떤 이는 별로 감흥을 받지 못한 듯했다. 모두가 내 마음 같지 않았다. 각자에게 열리는 책은 따로 있었다.

그런 연유로 근래까지도 ‘책은 선물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해왔다. 나조차도 선물받은 책은 이상스레 읽지 않게 된다. ‘이 책이 흥미롭더라, 너도 읽어봐’라고 말하는 것 까지가 적당하다. 혹여나 내가 건넨 책을 받고서 ‘우와 재밌겠다’라고 친구가 반응하더라도 순진하게 믿으면 안 된다. 그것은 선물에 대한 예의의 리액션이다. 그 순간 친구의 눈을 유심히 들여다본다면 떨리는 동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늘 읽고 싶은 책의 리스트가 가득 차 있고, 읽지 않고 사두기만 한 책들도 제법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거기에 책을 하나 더 보태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다. 책을 자주 읽지 않는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보통은 맞장구용의 멘트를 날릴 뿐이고 정작 책보다는 영상이나 청각 매체를 즐길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에게 당황스러운 선물이 될 수 있다. 물론 그런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주 간혹, 누군가가 선물한 책이 어떤 이에게 터닝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에 들어 서점에 오는 젊은이들이 친구에게 선물하기 위해 책을 많이 구매하는 것을 보고 내 생각도 바뀌었다. 많이 팔리는 책들을 보면, 감동과 진지함보다 오히려 읽어야 한다는 부담을 주지 않을수록 좋다. 다시 말해 시간을 뺏기지 않고 독서의 기분을 낼 수 있으면 좋다. 두번째로 표지가 요즘의 감성을 자극해야 알맞다. 친구에게 받은 선물을 SNS에 올릴 때 멋진 샷이 나와야  적절하다. 한 줄의 제목이 새겨진 아름다운 책 한 권은 그것으로서 선물의 기능을 다한다. 그래서 읽지 않아도 충분히 좋을 것 같은 인상을 주는 일이 중요해졌다. 그리하여 나도 내용보다 선물로서 적합한 외모를 가진 책, 일종의 팬시 느낌이랄까, 문구와 리빙용품의 연장선에 있을 법한 아름다운 책을 선물하기 시작했다. 반응이 좋았다. 그림이 많거나 사진이 많을수록 기뻐했다. 품새에 공이 많이 들어간 양장본이나, 특이한 판형, 더 나아가 펼치면 의외의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는 팝업 북도 멋진 선물이 된다. 덤으로 표지가 아름다워 한동안 액자처럼 선반 위에 세워 둘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독립서점에는 누군가에게 안겨주고 싶은 신선하고 아름다운 책들이 많다. 이제 선물을 고를 땐 서점으로 달려가자. 상큼하고 멋진 몸으로 친구를 지적으로 포장해 줄 책들이 기다리고 있다. 게다가 친절한 서점 주인은 인스타 감성으로 엽서까지 곁들여서 센스 넘치게 포장해 줄지도 모른다. 

아 참, 인증샷과 해시태그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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