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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선(敗船)

詩의 뜰-2

by 이종희

패선(敗船)

-이종희


숨 멈춘 배 한 척

파도와 한 몸으로 흔들린다


소금기 어린 침묵이

남은 이의 가슴을 철썩이고

하얗게 놀란 바다는

마음 추슬러 한 줌 생을 더듬는다


출렁출렁

이제 끝나지 않은 항해는 없다


가리어진 선미의 의지도

끌고 온 눈부신 포말도

다시는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짊어진 무게는 언젠가

물거품으로 소멸한다는 것을

모른 척하며 물길을 이었을 뿐,

어망을 채우려고 했던 건 아니다


"많이 보고 싶었는데,

부서져서야 만나는구나"


먼 이국땅

꿈에 그린 여식 두 손 내려놓는,

차마 감을 수 없는 세상은

한마디 작별 없는 물보라로

까맣게 가라앉지 않았을까


달그림자 길게 늘어진 새벽,

흔들리지 않는 망루의 어둠이

퉁퉁 불어 설운 닻 끌어올리고


동력 잃은 배 한 척

마지막 온기 떨구고 비상한다

.

.

친구 아버지는 텅 빈 바다에서 홀로 고기를 잡으시다가 갑자기 하늘나라로 떠나셨습니다. 오래전 미국으로 이민 간 제 친구를 하늘길에 만나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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