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 뜰 -9
너를 보내고
-이종희
강바닥을 박차고 오른 설움이
하류에 도착했다는 정보는 아직 없다
어둠의 조각들이 마음을 깎으며 일상을 휘어도는 동안
보이는 것은 은빛 찬란한 풍경이어서
아무도 강의 깊은 속내를 알아채지 못했다
강 건너 사람들은 부질없는 세월을 낚는다며
저마다 조약돌을 던져놓고 서둘러 떠나가는데
거친 바위골과 구속 같은 웅덩이와 캄캄한 시내를 스쳐야만
이을 수 있던 인연의 수로를 나는 진정 사랑했다
쌓이고 쌓인 물줄기가 툭 터질 땐 느닷없는 범람이어서
깜짝 놀란 사람들은 한동안 얼싸안고 힘을 보태보지만
강물은 아무리 둑을 쌓아도 물안개로 흩어지는 것이다
낙하의 속도에 매몰될 시간에 다다르면
다정한 언어로 어깨를 다독이던 강둑마저도
먼발치에 떨어져 잘잘못의 수위를 지적할 뿐,
홀로 흘러야 할 진물난 구간은 기어이 오고 말았다
파문을 일으키던 두물머리도
터질 듯 환호하던 물보라도
결국엔 한 곳에 정착할 수 없는 물살일 텐데
우리는 왜 그 속에 수장되어 온 생을 뒤척여야만 했을까
언젠가 살아온 날들이 황혼에 가 닿으면
내 안의 통증을 어쩌지 못해 놓아 버린 단 하나의 사랑을 소환해
마음속에 고스란히 탁본한 절개를 풀어보리라
#현대시 #감입곡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