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 뜰-14
초록물 번지는 소리를 들으며
-이종희
온 산이 오로지 초록을 향해 번져가도
어쩌다 오고 가는 바람 소리가 좋고
눈부신 햇살에 몸담은 산봉우리가 보여도
수줍게 제 마음 떨구는 감꽃이 예쁘다
오늘 걷는 이 길이 내 생에 마지막 길인 양
곧장 직진하는 순간에도 너는 거기 있었는데
일생을 다해 걸어도 다 걸을 수 없는 길 위에서
앞만 보고 걷느라 너를 잃고 나를 잃었다
이제 너는 거기 없고 나는 푸른 길 위에 멈춘다
매 순간 느낀 초행길이었기에 낯설지는 않다
우리 어느 길 위에서 문득 마주친다고 해도
서럽지 않을 만큼만 나는 계절을 담기로 했다
너무 바빠서 올려다볼 수 없었던 구름을 보고
너무 바빠서 돌아볼 수 없었던 뒤란을 걷는다
들리는가 청미래덩굴이 무럭무럭 넝쿨지는 소리를
보이는가 금계국이 온들을 환하게 수놓는 소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