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 8. 10 다우 수용소 /호프브로이
1시간 30분이 연착되어 8시에 뮌헨에 도착. 호텔 락커에 짐을 맡기고 퓨센으로 가기로 함. 아침과 점심에 먹을 빵을 사다가 기차를 놓쳤다. 앞으로 1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1시간을 우아하게 빵을 먹으면서 보낸다. 독일은 빵도 참 튼튼하게 만들었다. 빵의 껍질은 단단하고 느낌은 무쇠솥뚜껑, 거북이 등 껍질, 아니면 탱크 같다. 그러나 맛은 있다. 독일어는 딱딱하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행동과 말도 군인처럼 절도가 있다.
1시간이 지났고 기차는 왔는데 다른 팀 중 하나(Mr. Dacom)가 와서 이것은 완행이고 이걸 타면 중간에 내려서 퓨센 가는 기차를 1시간 기다렸다 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시간 더 기다렸다가 오는 기차를 타면 그것은 직행이니까 곧바로 간단다. 그럼 또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단 말인데...
우린 일정을 바꿔 다우 수용소로 가기로 했다. 10시 55분 기차를 탔다. 우리가 탄 기차는 유로 패스가 있기 때문에 별도의 요금을 낼 필요가 없다. 기차는 전체적으로 코발트톤으로 상당히 깨끗하고 의자와 의자 사이의 공간이 넓어 안락하다. 우리가 탄 객실은 여행객이 없어 텅텅 비었다. 뮌헨 역에서 Petershousen까지 가서 S-bahn라인으로 갈아타 뮌헨 방향으로 가는 기차를 갈아타면 곧 다우 역에 갈 수 있다.
다우에 도착해 버스 24번을 타고 약 5분간 가면 Memorial에 도착한다. 우린 뮌헨에서 출발하여 다우 역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다가 종점까지 갔고 그 기차는 거꾸로 다시 뮌헨을 향했다. 검표원에게 물어보니 이 기차는 다우 역에서 서지 않기 때문에 Petershousen에서 환승해 다우 역에서 stop 하는 뮌헨행 기차를 타야 했던 것이다.
Memorial에서 한 외국인이 우리말로 말을 건다. 그는 캐나다인으로 청주대학교에서 3년간 영어를 가르쳤단다. 이제 곧 캐나다로 갈 예정이란다. 나이는 28세로 매우 선량하게 생겼다.
다우 수용소에 들어섰다. 넓은 곳에 딱딱한 막사, 수많은 막사는 다 없어졌고 하나만 보관해 놓았다. 감시탑, 큰 종, 가시철망이 눈에 띈다. 정문에는 오후 2시부터 영어 안내를 한다고 쓰여있다. 우린 여기저기를 둘러보다 격정에 차서 안내를 하는 여러 명의 가이드를 보았다. 설명을 들으며 눈시울 적시는 소년이 하나 있다. 이 아이는 유태인일까?
유대인 말살정책, 그 참혹함을 느낄 수 있다. 건물 중에는 수용소의 죄수들이 그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었다는 건물도 있다. 이 건물을 만든 유대인들은 이 건물을 남겨놓고 학살당했다는 생각을 하니 끔찍하기 그지없다. 1차 대전 후 실의에 빠진 독일인에 하나의 희망으로 떠오른 아돌프 히틀러. 한 사람의 허무맹랑한 생각과 의지할 데 없는 마음이 편승된 이 엄청난 사실. 독일인들은 그들의 잘못에 용서를 구하는 자세로 전 세계에 그들이 잔학상을 공개했다. 따라서 그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고서도 세계인들로부터 인정을 받는다. 그러나 또한 신나치주의가 등장한다니, 이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피는 피를 부른다는 말이 있다. 정말 평화스러운 시대엔 이런 일을 상상할 수 조차 있겠는가. 피의 맛을 본 그들은 이성을 잃어버리고 더 많은 피를 요구하는 것이다. 3시 30분 영어로 그때의 일을 필름으로 보여준다.(약 20분 소요) 속이 답답해진다. 맑은 하늘에 흰구름 뭉게뭉게, 수용소 주위엔 쭉쭉 뻗은 나무들이 둘러쳐져 있다. 이곳이 아픈 역사를 간직한 수용소만 아니었다면 분명 아름다운 곳임에도 불구하고 , 수용소의 여러 시설들, 닭장 같은 침대, 가스실, 화장터... 를 본 후의 마음은 씁쓸하기 그지없다. 이 세상에 다시는 다우 수용소 같은 곳이 생겨나지 않기를...
다시 뮌헨으로 돌아와 슈바빙으로 향한다. 전혜린 에세이(제목이 뭐였지?)에서 그녀가 슈바빙에서 생활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너무나 아름답고 자유스럽게 표현하여 나도 언젠가는 슈바빙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던 때문이다.
슈바빙은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에 비유되는 대학가인 모양이다. 상점 앞 가로수 밑에는 테이블이 즐비하다. 중국인이 운영하는 뷔페에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속이 좀 풀린다.
호프브로이'를 찾다 찾다 못 찾아 (엉뚱한 곳에서 찾으려 했으니) 비슷
한 이름의 맥주집에 들어가 5종류의 맥주를 각각 하나씩 주문했다. 각각의 맥주가 약간씩의 차이가 있다. 맥주의 고장이라 그런지 맛이 아주 좋다. 우리 한국 맥주보다 독하다고 입을 모은다. 호텔에 들어와 쉬려는데 '호프브로이'에 갔다 온 사람들이 거기를 가보라고 한다. 재미있다면서. '재미'라는 말에 끌려 주섬주섬 다시 길을 나선다. 그때가 밤 11시. 뮌헨에서 지하철로 2 stop만 가면 마리앵 프란츠가 나오고 '호프브로이'를 물어보면 금방 알려준다.
그 근처에 들어서자 마다 젊은이들이 이리저리 소리를 지르며 돌아다닌다. 해방구, 전혀 거리낄 것이 자유롭게, 마음껏 소리를 지를 수 있는 곳. 우리나라의 학생들을 생각한다. 몸과 마음이 입시, 일류병에 녹아내리는 현실을.
안으로 들어서자. 와와. 함성, 천장이 움푹움푹 들어갔는데 그것 때문인지 어마어마한 소리가 쿵쿵 울린다. 그 거대한 호프집에 젊은이들이 꽉 들어찼고 그들은 정신없이 소리 지르고 책상을 박자에 맞춰 두드린다. 너무나 혼을 빼는 소리에 , 그리고 젊은이들 속에 끼어들기에도 민망하여 실외로 자리를 잡으려 했으나 자리가 마땅치 않아 다시 실내로 들어왔다.
비디오카메라로 이 희한한 장면을 찍으니 온갖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카메라 앞에 모여든다. 웬 젊은이가 다가와 뭐라 하며 이름을 물어본다. '황'이라고 대답하니 무슨 소리를 한참 하는데 시끄러워서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
자리에 앉아 1,000cc 맥주를 주문하고 이 기묘한 풍경에 정신없이 빨려 든다. 내 옆에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있는데 나보고 무슨 말인가를 해가며 선글라스를 벗어보란다. 내 얼굴을 보고 싶다고. 하도 우리를 보고 손짓하며 깔깔거리기에 불량스러운 청년들인가 싶어 눈길을 주지 않다가 도대체 어떤 놈들인지 국적이 궁금하다.
그들은 스페인에서 왔고 고등학생이란다. 불량기가 있어 보였던 빨간 셔츠는 막상 말을 걸어보니 건전하기 그지없다.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세계의 사람들과 얘기하고 싶어 하는 순수하고 열정적인 학생이었다. 스페인에서 영어도 모국어처럼 쓰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는 대답을 한다. 영어를 중요한 국제어로서 배운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영어는 완벽했다.
영국을 거쳐 벨기에, 독일을 여행하면서 느낀 점은 거의 영어가 통한다는 점이다. 물론 영어를 모르는 사람도 상당수 있지만, 학생이든 나이 든 사람이든 프랑스어나 독일어로 얘기했다가도 영어로 말하면 금방 영어로 응대한다.
맥주의 고장 독일. 이런 분위기 때문일까. 평소 맥주를 즐기지 않는데 오늘은 옆자리의 스페인 학생들과 마구 맥주잔을 부딪쳐 댄다. 앞으로 맥주와 친해질 것 같은 예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