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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감정의 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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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또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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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3 — 감정의 유전

(The Inheritance of Emotion)
시간: 2099년 6월 19일 새벽 ~ 밤
장소: 루멘 구역 폐역 터널 → 루오의 카페 “Heart Drive” → 감정 데이터 보관소 하층


이전 이야기 요약

2099년, 감정이 ‘바이러스’로 규정된 도시 네오서울.
AURA 시스템은 인간의 감정을 검열하고 억제하며 완벽한 통제를 자랑했다.
그러나 그 균열은 한 여인 ― 유진 하 ― 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녀가 소유한 붉은 큐브(KAIROS) 는 단순한 데이터가 아닌
사라진 감정의 원본, 어머니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녀는 붉은 파동을 통해 과거의 기억을 해방시켰고,
감정 검열국 요원 레온 파크는 그 여파 속에서 처음으로 ‘감정’을 느꼈다.
그날 밤, 도시 전체가 붉게 공명했다.
감정이 돌아왔고, 인간은 다시 ‘불완전함’을 되찾았다.

하지만… 감정이 돌아온 세상은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진짜 변화는 지금부터 시작된다.


ACT I ― 붉은 새벽 (Red Morning)

터널 천장이 무너진 뒤,
모든 것이 조용했다. 먼지와 전자 파편이 공중에 떠다녔다.

어둠 속에서 레온이 눈을 떴다.
귀속 송신기는 타버렸고, 억제기의 불빛도 꺼져 있었다.
그의 가슴 한가운데, 낯선 리듬이 울리고 있었다.

레온: “이건… 심장 박동인가? 아니, 이건—”

그 옆, 붉은 빛 속에 앉은 유진이 조용히 말했다.

유진: “공명이에요. 당신과 나, 두 개의 기억 파형이 겹쳤어요.”
레온: “그럼 내 안에도… 감정이?”
유진: “제 감정 일부가, 당신 안으로 들어갔어요. 이제 당신도 느껴요. 그게 감정이에요.”

정적. 어딘가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그 소리조차 심장박동처럼 울렸다.

레온: “이건 바이러스가 아니었군요.”
유진: “아니요. 유전이에요.”
(미소 지으며) “감정은, 나눌 때 살아남아요.”

그녀의 손끝에서 작은 붉은 파형이 피어올랐다.
그 빛이 어둠을 깨웠다.


ACT II ― 루오의 카페 (Heart Drive)

시간: 오전 8시 / 장소: 루멘 구역
붉은 새벽이 지나가고, 회색빛 아침이 찾아왔다.
좁은 골목 끝, 낡은 네온 간판이 깜빡였다.
〈Heart Drive〉.

문을 열자, 약한 전류 냄새와 함께 따뜻한 공기가 흘러나왔다.
바리스타 루오, 반쯤 인간, 반쯤 AI.
그는 낡은 잔을 닦으며 말했다.

루오: “감정이 돌아왔다는 소문, 여기까지 들렸어요.
붉은 파형… 당신들이죠?”

유진은 말없이 커피를 들었다.

유진: “곧 검열국이 우리를 찾겠죠.
AURA도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루오가 태연히 웃었다.

루오: “그럼 일단 한 잔 하죠.
오늘의 블렌드는 ‘혼란’ 맛. 초보자용이에요.”

레온은 한 모금 마셨다가 찡그렸다.

레온: “이건 달지도, 쓰지도 않네요. 이상하게 불안해요.”
루오: “그게 바로 살아 있음의 맛이죠.”

잠시 웃음이 번졌다.
그때, 벽면 전광판이 깜빡였다.

〈비인가 감정 데이터 감지 — 출처: 루멘 구역〉
〈AURA 통신망 복구 중…〉

공기가 얼어붙는다.

루오: “이제 곧 차단되겠네요.”
유진: “그 전에 찾아야 할 게 있어요.”

그녀는 붉은 큐브를 꺼냈다.
테이블 위에서 붉은 파형이 진동했다.

유진: “이 안에 엄마의 미소 말고… 뭔가 더 있어요.
감정이 ‘유전’될 수 있다는 증거.”

레온: “유전이라니? 감정이… DNA처럼 전해진다고요?”
유진: “네. 기억은 데이터지만, 감정은 ‘형질’이에요.
공명할 때, 복제되는 게 아니라—전해지는 거죠.”

루오가 낮게 웃었다.

루오: “그럼 우리 모두… 감정의 자손이군요.”

잠시, 세 사람 사이에 전류처럼 미묘한 온기가 스쳤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드론의 소음이 들려왔다.


ACT III ― 감정의 유전 (The Inheritance Code)

시간: 오후 11시 / 장소: 네오서울 감정 데이터 보관소 하층

지하 보관소.
벽면마다 파란 기억 캡슐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 안엔 폐기된 감정, 억제된 감정, 그리고 잊힌 감정들이 잠들어 있었다.

유진: “AURA가 만든 인공 감정들은 가짜예요.
하지만 진짜는 여기 남았어요. 불완전해서, 너무 인간적이라 버려졌죠.”

그녀는 중앙 콘솔에 붉은 큐브를 꽂았다.
순간, 전광판이 붉게 물들었다.

〈KAIROS SEED: Emotion Inheritance Active〉

레온: “뭔가… 시작됐어요.”
유진: “이건 우리 둘의 코드예요.
당신과 나, 두 개의 심장 박동으로 감정이 복원되는 거예요.”

경보음이 울린다.
〈비인가 데이터 동기화 감지〉
〈신경망 연결 중 — 대상: 레온 파크 / 유진 하〉

붉은 파형이 폭발하듯 빛났다.
시간이 뒤틀리고, 기억이 뒤섞였다.

레온은 하얀 교실 속 어린 자신을 보았다.
무표정한 얼굴, 감정 억제기를 착용한 채 서 있는 소년.
유진은 초콜릿의 단맛, 어머니의 품, 그리고 따뜻한 미소를 느꼈다.

그들의 기억이 하나로 이어졌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한 장면으로 응축된다.

레온 (속삭이며): “이건… 당신의 기억이군요.”
유진: “이젠, 당신의 일부이기도 해요.”

큐브의 빛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화면에 새 문장이 떠올랐다.

〈감정 유전: 성공〉
〈신규 감정 프로토콜 생성 — ‘공감(共感)’〉

공기가 달라졌다.
두 사람의 숨이 나란히 이어졌다.

레온: “이제 우린 서로의 일부네요.”
유진: “그래요. 감정은 데이터가 아니라,
사람 사이를 건너는 유전자예요.”

그때, 외부에서 드론의 탐조등이 터널을 비췄다.
루오의 목소리가 통신기로 흘러왔다.

루오: “둘 다 거기 있죠?
빨리 나와요 — 도시가 다시 깨어나고 있어요.”

유진이 마지막으로 큐브를 꺼내들었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서 붉은 빛이 미세하게 깜빡였다.

유진: “감정은 복제할 수 없어요.
하지만… 전해질 수는 있죠.”

그녀의 손끝에서 붉은 파형이 번졌다.
하늘 위, 네오서울의 전광판들이 하나둘 깨어났다.


엔딩 내레이션

인류는 감정을 잊었지만,
감정은 인류를 잊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를 감염시켰고,
서로를 기억했다.

그것이 바로 — 감정의 유전.

붉은 빛이 도시를 감싸며 심장처럼 고동쳤다.
두 개의 리듬, 하나의 박동.
그리고… 네오서울이 다시 숨을 쉬었다.


FADE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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