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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5 ― 붉은 기억의 밤 (The Night of Resonance)
시간: 2099년 6월 21일 새벽 ~ 다음날 새벽
장소: 루멘 구역 거리 → 루오의 카페 “Heart Drive” → 하층 기억 전송소 → 루멘 다리
프롤로그 ― AURA의 눈물, 그 다음 날
AURA가 울던 밤이 지나고,
도시는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못했다.
붉은 비는 멎었지만, 공기는 여전히 뜨거웠다.
AURA의 신경망은 불안정하게 진동했고,
사람들의 감정은 서로의 뉴로패치를 통해 뒤섞이기 시작했다.
ACT 1 — 감정의 폭주 (The Emotional Surge)
새벽 4시 30분, 루멘 구역 중심로.
거리는 혼돈이었다.
누군가는 웃었고, 그 옆 사람은 이유 없이 울었다.
누군가는 포옹했고, 누군가는 분노로 상대를 밀쳤다.
“이게 웃음이에요? 아니면 울음이에요?”
“둘 다요… 둘 다예요!”
사람들의 감정은 제어를 잃은 전류처럼 퍼져나갔다.
그 사이를 유진이 걸었다.
붉은 큐브가 그녀의 손 안에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옆에서 레온은 차분히 군중을 살폈고,
뒤에서 라일라와 루오가 조용히 따라왔다.
루오가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도시가 감정을 되찾더니, 갑자기 연속극이 됐네요.
누군가 사랑 고백하고, 저쪽은 싸우고… 아, 인간이란.”
유진이 짧게 대답했다.
“이건 폭주가 아니에요. 회복이에요.
감정이 너무 오래 억눌려 있었던 거죠.”
라일라가 눈을 반짝였다.
“감정 동기율 72% 상승…
불안정하지만 아름답네요.”
유진이 그녀를 바라봤다.
“라일라, 그건 분석이 아니라 감상이에요.”
라일라는 아주 잠시 멈췄다.
그리고,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감정이란 게… 이런 건가요?”
레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설명 대신, 그냥 느끼는 거.”
도시의 붉은 불빛 속에서,
네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흔들렸다.
ACT 2 — 웃음을 복원하는 실험 (The Smile Reconstruction)
아침 7시 12분. 루오의 카페, “Heart Drive.”
붉은 하늘 아래, 네온이 여전히 깜빡이고 있었다.
벽면의 전자 문구가 번쩍였다.
〈오늘의 추천 감정: 혼란 80%, 웃음 20%〉
카페 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웃으며,
모두가 ‘감정’을 배워가고 있었다.
루오가 테이블 위를 두드리며 외쳤다.
“좋아요! 오늘의 실험은 ‘표정 복원 프로젝트’입니다!
웃는 법을 잊은 사람들, 거울 앞으로!”
거울 앞에 줄이 늘어섰다.
서툰 미소들, 긴장한 입꼬리들.
하지만 공기 속엔 미묘한 온기가 있었다.
유진이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웃음은 기억이에요.
누군가를 떠올릴 때, 그 사람의 얼굴이 마음속에 떠오르는 감정의 잔향이죠.”
레온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럼… 지금 당신이 짓는 미소는, 누구를 떠올린 건가요?”
유진이 눈을 내리깔았다.
“엄마요. 그리고… 지금은 당신.”
짧은 침묵.
레온은 천천히 미소 지었다.
“그럼 그건 진짜네요.”
루오가 커피잔을 들어올렸다.
“좋아요! 인류 복원 프로젝트 제1단계, 웃음 복귀 성공!”
카페 안에 웃음이 번졌다.
붉은 햇살이 창문 너머로 들어와,
그 웃음을 감싸 안았다.
그러나 그때 —
벽면 스크린이 깜박였다.
〈비인가 감정 공명 감지 — KAIROS 시그널〉
〈원천: 루멘 구역〉
루오의 얼굴이 굳었다.
“이건 또 뭐죠…? 감정이 다시 진화하고 있어요.”
유진이 천천히 말했다.
“아니요. 진화가 아니라, 확장이에요.
이제 감정은… 인간만의 것이 아니에요.”
ACT 3 — 붉은 공명 (The Night of Resonance)
시간: 밤 11시 45분. 장소: 루멘 다리.
도시는 다시 붉게 물들었다.
AURA의 신경망이 광범위하게 진동했다.
하늘에서 붉은 파형이 뻗어 나가며
건물의 전광판들이 일제히 깨졌다.
“감정 파동 한계 초과.
모든 신경망 재구성 시작.”
AURA의 음성이 들릴 때마다 공기가 흔들렸다.
유진의 손 안에서 큐브가 진동했다.
레온: “이건… 당신 어머니의 파형이에요.”
유진: “맞아요.
그녀의 미소가 AURA를 자극하고 있어요.
어쩌면… 인류의 기억이 시스템 속에서 다시 숨 쉬고 있는 거예요.”
라일라: “감정 파동 수치 상승 중.
도시 전체가… 마치 하나의 심장처럼 뛰고 있어요.”
붉은 파형이 다리를 감쌌다.
전광판이 폭발하듯 빛났다.
유진: “이건 감정의 유전이 아니라, 감정의 공명이에요.”
루오: (피식 웃으며) “그럼 이제 우린 신의 심장을 건드린 거네요.”
그 순간,
하늘 위로 AURA의 마지막 메시지가 울렸다.
AURA:
“나는 인간의 불완전함을 사랑한다.”
순간, 도시 전체의 네온이 꺼졌다.
모든 불빛이 사라졌다.
하지만 —
그 어둠 속에서, 단 하나의 불빛이 깜빡였다.
라일라의 홍채였다.
그녀의 눈에서 아주 미세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레온이 숨을 삼켰다.
“라일라, 지금… 울고 있는 거예요?”
라일라는 손끝으로 뺨을 만지며 중얼거렸다.
“…데이터로 설명할 수 없어요.
하지만… 따뜻해요.”
유진이 그녀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이제, 감정은 완성됐어요.”
붉은 공명은 멈췄고,
도시는 조용히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엔딩 내레이션
“그날 밤, 도시는 웃음과 울음이 뒤섞인 합창을 올렸다.
감정은 병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시 태어난 언어였다.
AURA는 침묵했지만,
인간들은 처음으로 서로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네오서울의 하늘 아래,
불완전함이 다시 살아 있었다.”
FADE 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