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은 평가가 아니라 관계다
오늘 오후 나는 중학생 진로체험 수업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수업 말미, 학생들이 강의평가지를 작성하는 시간이었다. 조용한 교실 안, 한 학생이 망설임 없이 '불만족'과 '매우 불만족'에 체크하는 걸 보았다. 깜짝 놀랐다. 그 학생은 수업 시작 10분이 지나 강의실에 들어왔다. 수업 내내 아무런 반응도, 질문도 없던 이였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생각했다. 강의평가는 과연 공정한가. 객관적인가.
이 질문은 단지 서운함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강의평가가 교육의 질을 측정하는 유일한 기준처럼 작동하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었다. 동시에 또 하나의 가능성도 떠올랐다. 강의평가 없이도, 우리는 좋은 수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를 돌아보면, 교육은 늘 사회적, 정치적, 기술적 구조와 긴밀히 얽혀 있었다. 고대 아테네의 소피스트들이든, 중세의 수도사 교사들이든, 오늘날 대학 강단에 선 교수자들이든, 이들의 공통된 질문은 하나였다. 어떻게 하면 좋은 수업을 할 수 있는가.
오늘날 이 질문은 다소 다른 형태로 제기된다. 강의평가 없이도, 우수한 수업이 가능한가. 많은 이들은 자동적으로 '아니오'를 떠올린다. 평가 없이는 책임도, 질도 담보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인류의 학습과 성장에 대한 오해이다.
인류는 언제나 배워왔다. 형식적 평가 없이도, 생존과 적응을 위해 끊임없이 지식을 축적하고 전수해왔다. 그러므로 진짜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평가 없이도 교수자가 자발적으로 수업의 질을 유지하거나 향상시킬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
첫째, 성찰의 장치이다. 인간은 자기 인식을 통해 성장한다. 수업을 돌아보고, 동료와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자신의 사고방식을 검토하는 일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메타인지' 능력에 기반한 활동이다. 성찰과 피드백이 없는 수업은, 제자리를 맴도는 메트로놈처럼 같은 리듬만 반복할 뿐이다.
둘째, 관계적 상호작용이다. 수업은 정보 전달의 일방향 흐름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행위이며, 정서적 연결이다. 학생과의 소통은 단순한 피드백이 아니라, 수업이라는 시스템이 살아 움직이기 위한 신경망이다. 그 신경망이 끊기면 수업은 생명을 잃는다.
셋째, 제도적 인센티브이다. 인간은 보상에 민감하다. 우리가 농경을 시작한 것도, 세금을 받아 제국을 만든 것도, 모두 체계적 보상의 구조 덕분이었다. 수업 포트폴리오, 우수 수업 사례의 공유, 가시적인 인정은 교수자에게 지속 가능한 동기를 제공한다.
결국, 좋은 수업은 시스템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것은 인간 본성의 산물이다. 성찰하고, 소통하며, 인정받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교실이라는 작은 세계 안에서 구현될 때, 비로소 수업은 제도 너머의 진화를 시작한다.
강의평가가 없어진다 해도, 인류는 가르치고 배울 것이다. 우리가 그 과정을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그 배움의 깊이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