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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의 충분조건

에피소드_9997

by 인또삐

요즘 내가 몰두하는 취미는 ‘숨은 맛집 찾기’다.
한낮의 더위 속, 끼니는 외식으로 해결하는 일이 잦아졌고, 그 덕에 식당을 고르는 눈도 조금은 더 섬세해졌다.
오늘 내 레이더에 포착된 곳은 ‘광화문 미진 세종점’.
서울 사람들 사이에선 이미 꽤 이름난 메밀국수와 돈가스 맛집이다.
지금 같은 계절, 그 시원한 메밀 한 그릇은 무엇보다도 제철의 위로다.


나는 오랜 시간 외식을 해온 사람으로서 ‘맛집’의 조건을 나름대로 정리해본 적이 있다.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공간.
혼자 앉을 수 있는 자리부터, 둘, 넷, 여섯 명, 더 나아가 단체까지 아우르는 좌석 배치.
그리고 무엇보다 식사 중 옆자리와 불필요한 긴장을 만들지 않는 거리감.
그 자체로 이미 식사의 질감을 결정짓는 요소다.

둘째는 사람.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눈을 맞추며 “어서 오세요”를 외치는 종업원의 표정에서
이 집이 잘되고 있다는 기운이 느껴진다.
좋은 식당은 음식보다 먼저, 사람의 표정이 따뜻하다.

셋째는 말할 것도 없이 .
익숙한 메뉴 속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미묘한 차이.
기대한 맛이 정확히 도달할 때, 혹은 예상을 살짝 비틀며 감탄을 유도할 때.
그제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여긴 진짜다.”


하지만 이 세 가지 중 단 하나, ‘맛’에만 의지하다 실패하는 식당들을 여럿 봐왔다.
공간은 협소하고 불편하며, 직원의 태도는 무심하다.
그저 입소문만 믿고 손님을 받아들이다가, 어느 날 손님은 조용히 떠난다.
요즘은 SNS 덕분에 차선책은 얼마든지 있다.
경험이 한 번만 나빠도, 다음은 없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진짜 맛집은 ‘맛’이 아니라, ‘사람과 공간과 시간이 함께 머무는 장소’라고.

그런 의미에서 오늘 찾은 광화문 미진은 인상적이었다.
감각적인 인테리어는 아니지만 시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심플함이 느껴졌고,
온 가족이 함께 운영하는 듯한 안정된 분위기도 좋았다.
특히 카운터에 있던 젊은 사장의 친절한 태도는
이 집의 미래가 길고 단단할 것이라는 신뢰로 이어졌다.

이런 식당이 늘어나야 한다.
지속 가능성은 단지 음식의 퀄리티가 아니라,
그 음식을 둘러싼 세계 전체에서 시작된다.

맛집의 충분조건은 결국,
‘함께 먹고 싶은 사람과 다시 오고 싶은 공간’이다.
그 조건을 충족시키는 집이 있다면,
우리는 그곳을 ‘좋은 식당’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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