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해 봐서 다행이고, 두 번 다시는 하지 말자.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가장 좋아한 캐릭터, 정명석 변호사.
처음에는 빌런인 줄 알았는데, 자신의 실수를 쿨하게 인정하고 사과할 줄 아는 멋진 상사였다.
실수하지 않는 완벽한 사람만이 리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실수를 알아채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고, '저런 태도로 일했기 때문에 좋은 리더가 될 수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쉽게도 아는 게 많을수록 자신이 부족한 점을 빠르게 인정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 괜히 멋쩍었는지 자신의 실수라고 생각 못하는 건지 되려 뭐라고 하는 분도 만나봤다.
어느 직무이든 실수는 크리티컬하지만,
특히 한 번 발송하고 나면 돌이킬 수 없는 CRM마케터는 실수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는 직무이다.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게 더 큰 실수라고, 꽁꽁 숨기기보다 쿨하게 인정하고 성장하기 위해
부끄럽지만 내 실수를 솔직하게 풀어내본다.
이 글이 나와 같은 실수를 해본 사람에게는 '나만 이런 게 아니었구나'라는 위안이 되고,
실수를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내 실수가 선례가 되어 실수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기를 바라며.
내 이름은 수지가 아닌데...
말 그대로 수지가 아닌 고객에게 수지라고 문자를 보낸, 지금 생각해도 손에 땀이 나는 아찔한 실수이다. 처음 문자를 보내는 날, 타깃 전화번호와 이름이 한 칸씩 밀려 김OO 고객의 번호로 이ㅁㅁ 고객에게 발송할 내용을 보냈다. 차라리 이름을 아예 넣지 않았으면 나았을 걸, 오픈율을 높이기 위해 넣은 이름 개인화를 제대로 잘못 써 버린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건 발송한 타깃이 충성고객은 아니어서 CS 민원 인입 건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고객이 딴 사람 이름을 부르며 쿠폰을 주겠다고 하면 받고 싶겠는가.
CRM마케터로 한 실수가 더 괴로운 이유는 워낙 유관부서와 연결이 많이 되어있기에, 나 한 사람이 실수한 게 다른 팀에게도 끼치는 파급력이 크다는 것. 사실 이 점이 제일 힘들었다. 내가 한 실수를 다른 팀 사람이 수습해야 한다는 게 너무 죄송해서, 부끄럽지만 자기 전에 베개에 얼굴 박고 대성통곡한 적도 있다. 그런데 나한테 뭐라고 해도 모자랄 텐데, 나를 다그쳤던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실수해서 당황했겠다고, 감싸준 사람들뿐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를 신뢰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한 번 실수한 일이었어도 위축되지 않고 다음번에 책임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이후로 한 번도 같은 실수를 해본 적이 없다.
이때 나도 생각했다.
누군가가 실수하더라도 질책하기보다는, 그 사람을 믿고 함께 방안을 고민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실제로 동료가 나와 같은 실수를 했을 때 그 자책감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실수 원인을 같이 찾고, 함께 대책을 고민하고 주의를 습관화한 결과, 지금은 우리 둘 다 같은 실수를 하지 않고, 업무 속도도 훨씬 빨라졌다.
오늘은 목요일이 아닌데요?
쿠폰 문자를 보내면서 사용 기한에 들어가는 요일을 잘못 기재했다. 예를 들어 쿠폰 사용 기한이 2/22(수) 까지라면 2/22(목)이라고 적었던 것이다. 항상 미래에 발송되는 건들을 미리 계획하고 준비하기 때문에, 날짜와 요일을 헷갈리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굳이 따지자면 앞선 실수보다 크리티컬하지는 않지만, 실수는 했다 안 했다의 차이지, 경중으로 따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번 실수도 기억하고 반복하지 않아야 할 리스트에 추가했다.
물론 실수는 발송하는 당사자의 탓이 크다. 하지만 나는 분명 실수를 할 수밖에 없게 만든 프로세스의 탓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실수를 바탕으로 실수를 방지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함께 만들어나갔다.
기존에는 각자가 맡은 타깃을 각자가 알아서 발송하고 노티하는 방식이었다면,
발송 준비를 끝내고 최종으로 보내기 전
생성한 쿠폰 / 발송 건 문안 내용을 링크와 함께 슬랙 스레드 댓글로 올리면
자신이 맡은 타깃이 아니어도 파트원들이 검수 후 확인 이모지를 남기면 그때 발송할 수 있도록 했다.
내가 아닌 타인의 눈으로 보면, 내가 놓쳤던 부분을 찾아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발송된 이후에 실수를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에,
실수의 원인을 파악하고자, 발송 파일은 한 페이지에 아카이빙해서 문제가 생길 시 바로 누구든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알림성을 알림성이라 부르지 못하고...
이전 회사에서 일했을 때 영리 목적이 아닌 안내로 나가는 알림 앱푸시에도 (광고)를 붙여 나간 적이 있었다.
앱푸시는 광고성 / 알림성 앱푸시로 나뉘며, 영리 목적 광고성 앱푸시에는 반드시 (광고)와 수신거부 방법이 함께 안내되어야 한다. 광고성 앱푸시에 (광고)가 붙여서 나가지 않은 것보다는 덜 한 실수겠지만(이건 불법이니깐..) 당연하게도 사람들은 (광고)가 붙으면 오픈율이 낮아지기 때문에 이것도 해서는 안 될 실수였다.
나는 이제 실수 안 할 줄 알았지...
입사 초반에는 실수도 많이 했지만, 이제는 거의 실수 없이 정확하게 일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에 이 실수를 하고 역시 '언제든 방심하는 순간 실수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처음 마음가짐을 잊지 않기로 했다.
우리 서비스는 쿠폰을 생성할 때, 리마인드를 체크하면 자동으로 쿠폰 소멸 당일에 '바쁘신 고객님을 위해 사라지는 쿠폰을 알려드려요'라는 자동 알림톡이 나가는데 이 체크를 하지 않아서 프로모션 쿠폰 리마인드 알림이 가지 않았다. 보통 쿠폰은 받은 당일과 소멸 당일이 가장 전환이 잘 되는데, 소멸 알림톡이 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만큼 잊고 쓰지 않은 고객이 많았을 것이다.
너무나도 아쉬웠다. 왜냐면 이 프로모션에 정말 공을 많이 들였고, 누구보다 매출이 잘 나오길 기대했는데 알림톡이 발송되지 않아서 매출을 더 올리지 못한 게 너무 한스러웠다.
앞선 문자 사례에서의 프로세스 개선으로 쿠폰을 만들면 다른 파트원들이 더블체크하는데,
이 프로모션은 내 담당이라 다들 바쁠 텐데 혼자 진행해도 되겠다고 생각하고 검수받지 않아서 생긴 일이었다.
이 일로, 검수는 생각보다 큰 리소스가 들지 않고, 해서 실수를 방지하는 효과가 더 크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
이 실수로 앞으로 프로모션 담당자가 서브 파트원들에게 검수 요청해야 할 리스트에 쿠폰 세팅도 포함시켰다.
최근 들었던 CRM마케팅 강연에서 인상 깊어 적어둔 말이 있었다.
10할의 승리보다 5할의 승리가 더 값지다.
열이면 열 번 승리하는 사람보다 실패를 해본 사람이 배우고 성장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10할의 승리를 하는 완벽한 사람이고 싶지만 나는 사실 완벽하지 않다.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 또 다른 실수나 실패를 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예전에 비해 지금 성장하고 발전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다 실수와 실패로부터 배운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실수는 안 하는 게 가장 베스트긴 하겠지만, 한다 해도 그 실수를 인정하고 실수로부터 배우는 자세를 계속 가지고 일할 것이다. 리더가 되어도 자신의 실수를 빠르게 인정하고 우영우에게 사과하는 정명석 변호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