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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플로 Sep 03. 2024

누구도 줍지 않는다

누군가로부터 잊힌 이야기

새벽 운동길에 누군가 무심코 버린 삶의 부스러기들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이고 손을 뻗게 된다. 전 세계적인 기후위기, 인구절벽, 불확실한 미래를 극복하기 위해 지천명의 나이인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습관은 관성으로 굳어져  '닥터플로'라는 이름으로 내 주변을 다양한 쓰레기로부터 보호하고 있다.



2019년 새롭게 개발된 지방 소도시로 이주했던 어느 가을날 아침


아파트와 상가로 이어지는 골목 모퉁이는 나를 비롯한 흡연자들에게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좋은 장소로 시간이 흘러갈수록 그곳에는 흡연의 흔적과 더불어 각종 음료를 담았던 병, 바람에 나불대는 다양한 봉지들이 퇴적되고 있었다.


나는 그곳을 즐겨 찾아 끽연을 즐기는 입주민으로서 '저건 누군가는 치워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이르러 책임 있는 사람들을 찾아 문의했지만, 아파트 경비원은 상가에서, 상가 사장님은 아파트 관리소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라는 무성의한 답변만 돌아왔다.


그렇게 그곳은 회색지대(Grey Zone)가 되어 누군가 치운다 해도 영역 침범과 관련한 문제 제기는 없을 장소가 되어갔다. 그러나 그 누구도 나서서 치우는 사람은 없었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쌓이는 생활의 흔적들은 기하급수적으로 쌓여 태산이 될 수도 있겠다는 비현실적인 생각에 이르렀다.


그러던 가을날 입주민 카페에 낯 뜨거운 사진 한 장과 함께 아주 점잖고 공손한 글이 올라왔다.

2019년 10월 31일 입주민 카페에 게시된 사진

"상가 옆길을 아이와 함께 다니다 보면 너무 지저분해요. 담배 피시는 분들 자주 보게 되는데, 모두가 조금씩만 신경 쓴다면 참 좋을 것 같아요.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길입니다."


글이 올라온 후, 그 장소에서 끽연을 즐길 때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창피함은  나날이 커져갔다. 누가 봐도 나는 그 장소에서 자주 목격된 오래된 흡연자이며 담배꽁초를 버렸을 개연성이 가장 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제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결국, 주변의 불편한 시선과 내면적 갈등에 시달리던 나는 쓰레기봉투를 준비해 그 장소를 정리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 생긴 편의점의 사장님에게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빌려 그 자리를 신속하게 정리할 수 있는 경지에 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나의 시선과 손길이 닿을 수 있는 영역까지 청소 구역은 시나브로 늘어나고 있었다.


어느 날 아파트 관리소장과 경비 직원이 교체되어 회색지대를 청소하기 시작하며, 나의 도덕적 책임은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넘어갔지만,  이미 줍기의 매력에 빠진 나는 매일 건강을 위해 달리는 아름다운 산책길에서 발견되는 쓰레기를 떠올렸고 지금까지도 아침 운동 준비물로 쓰레기봉투를 챙기는 습관을 이어가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습관은 매일 새벽 만나는 사람들의 격려와 박수를 이끌어 내며 중년이 되어 떨어지는 자존감을 높여주어 정신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으며, 이에 더해 반복적으로 다리를 구부리고 팔을 뻗는 자연스러운 플로깅 동작(런지, 스쿼트)으로 기본적인 유산소운동과 함께 근력 운동의 효과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오늘도 나의 작은 행동들이 건강과 주변의 환경을 보호하고, 미래를 위한 변화를 만들어내는 첫걸음이라고 믿으며 내 주변의 길을 지키고 있다.

검은색 '쓰레기 봉지'를 모티브로 제작


그리고 꾸준히 이어가는 나의 작은 실천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유튜브(닥터플로)를 운영하고 있다.


 매일 동네 산책길을 달리는 닥터플로의 일상을 아래 채널로 만날 수 있다.



[YouTube 채널]

https://www.youtube.com/@Doctor-plogg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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