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사춘기 아이, 말이 없어졌어요"
“선생님, 예전엔 말을 참 잘하던 아이였는데
요즘은 물어도 대답이 없어요.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입을 꾹 다물고 짜증만 내요.”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들의 가장 흔한 말이다.
‘이 아이가 예전의 그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갑자기 말이 줄고, 무표정해지고,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부모는 당황한다.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뭔가 잘못한 걸까?’
그러나 사춘기는, 말이 줄어든다고 해서 감정이 줄어드는 시기가 아니다.
오히려 감정이 너무 커서 말로 담기 어려운 시기다.
“엄마는 내 마음을 몰라요.”
중1 딸과 엄마가 상담실을 찾았다.
아이의 표정이 너무 무뚝뚝해졌고, 물어도 대답이 없으며, 눈도 잘 마주치지 않는다고 했다.
“솔직히 무섭기도 해요. 얘가 뭘 생각하는지도 모르겠고요.”
그 엄마는 아이가 예전보다 훨씬 더 거리를 두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이는 친구들과도 관계가 안정적이었고, 학교생활에도 큰 문제는 없었다.
단지,
이전처럼 엄마에게 감정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엄마에게는 큰 불안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감정은 없어진 게 아니라, 안으로 깊어진 것이다.
사춘기는 정체감이 형성되는 시기다.
“나는 누구지?”
“내가 하고 싶은 건 뭘까?”
“엄마 아빠와는 다른 내가 되고 싶어.”
이런 생각들이 마음속을 복잡하게 채운다.
예전처럼 감정을 밖으로 쏟아내지 않고,
혼자서 생각하려는 시간이 늘어난다. 그리고 감정을 말하는 게 부끄럽고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침묵을 택한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거리를 만드는 것이다.
그 거리는 부모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본능적인 방어이기도 하다.
“계속 다그쳤어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냐고.”
상담을 하다 보면, 부모가 ‘아이의 침묵’을 견디지 못해 계속 말을 걸고, 추궁하고, 가끔은 화를 내기도 한다.
“엄마가 뭘 잘못했는지 말이라도 해봐!”
“대체 왜 이렇게 변했어?”
하지만 아이는 더 조용해진다.
이럴 땐 더 많은 말보다, 더 깊은 기다림이 필요하다.
말보다 중요한 건 ‘존재의 신호’다. 아이에게 꼭 말을 걸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건
“나는 네 곁에 있어.”라는 메시지를 매일같이 보내는 일이다.
예를 들어,
• 아이가 말하지 않아도 밥은 차려주는 것
• “너 오늘 괜찮았어?” 한 마디 툭 던지는 것
• 답이 없어도 그냥 옆에 앉아 있는 것
이런 작고 일상적인 동행이 사춘기 아이에겐 정서적 닻이 된다.
침묵의 시간에도, 부모가 떠나지 않고 함께 있다는 신호. 그게 아이를 안에서 안전하게 만든다.
"괜찮아지는 중입니다"
말이 줄었다고 해서 감정이 사라진 건 아니다.
혼자 있고 싶다고 해서 사랑이 식은 건 더더욱 아니다.
지금은 단지 마음이 자라는 중이고, 그 마음을 다루는 언어를 배우는 중이다.
그러니 부모의 몫은 묻지 않아도 묵묵히 옆에 있어주는 것이다.
그 존재만으로도 아이의 마음 한편엔
“나는 혼자가 아니야.”
라는 말이 자란다.
<오늘의 마음 노트>
• “사춘기 아이의 침묵은 감정의 실종이 아니라, 감정의 깊어짐이다.”
• “말을 끌어내려 하지 말고, 감정을 기다려줘야 한다.”
• “존재의 신호는 말보다 강하다.”
• “아이를 바꾸려 하기보다, ‘함께 있어줄 용기’를 먼저 내자.”
• “지금 이대로도, 우리는 괜찮아지는 중입니다.”
다음 편은
《중2 아들, 축구가 전부예요》
– 진로 불안과 자존감 이야기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