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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삶의 수용과 인정

지독한 염세주의는 수용과 인정으로 볼 수 있다

by 글씨가 엉망

우리 시대의 염세주의의 대표적인 철학자로 쇼펜하우어를 많이 꼽는다.

세상은 고통,불합리,부조리로 이루어져있고 행복은 실체가 없는 무의미한것


하지만 삶의 의미를 의지적 존재로서의 무의미로 본다면 염세주의 이 한마디로 정의내리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니체 또한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지만 영향을 받은 이는 비단 그만은 아닐 터 .. 나 또한 쇼펜하우워의 책에서 많은 위로를 받은 것 같다.

왠지 나의 패배감을 설명 해 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 느낌?

때문인 것을 부정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삶에 대한 비관, 희망의 무의미함 여러가지 말들이 쇼펜하우어를 설명하고 있지만 오늘 나는 다른 말을 먼저 하고 싶다.


" 그 또한 삶의 수용과 인정이었다. "


모든 의지적 존재는 각자의 삶의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표상으로 드러나는 것에

따라 판단되어지는 것일 뿐 근원적인 존재와 삶의 의미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삶의 한계 또한 거기에 머물 수 밖에 없음에 결국은 그 또한 삶의 수용과 인정을 바탕으로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인간의 이성보다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표상으로 보고 결국 의지에 따른 존재로서의

삶의 정의에 대한 본질을 무의미함으로 보았다면 그러한 삶 또한 쇼펜하우어에게는 수용하고 인정한 삶일 것이다.


수용할 수 없는 삶이라면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무의미 함을 주장하는 것도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을 테니...


쇼펜하우어의 삶의 철학은 각각의 인식된 세계관이며 삶은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닌 불행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임을 말하고 있다. 쇼펜하우어가 욕망의 부정과 체념을 통해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려 했다면, 니체는 고통을 포함한 삶의 모든 것을 긍정

하고 능동적으로 극복하려 한 점이 그 차이점으로 볼 수 있으며 결국은 삶에 대한 수용과 인정이 그 중심에 있었던 것 같다.


정해지거나 강요되어지는 세계관이 아닌 각각의 의지에 따른 세계관을 가지고 불행을 최소화 하기위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다.

결국은 삶에대한 수용과 인정을 바탕으로 하여야만 이러한 결과를 논리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다.


이제 우리의 삶에 대한 태도 또한 상황에 대한 인정과 수용 그리고 행복을 위한 욕망의 충족이 아닌 불행해지지 않기 위한 덜어냄이 우리의 삶의 방향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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