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걷고, 함께 뛰며, 삶을 나눈 하루
마라톤은 나의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낼 수 있는 곳이다.
이번이 세 번째 마라톤이었고, 10월 하프 마라톤에 도전하기 위해 처음으로 동호회에 가입했다. 마라톤을 기초부터 다시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동호회 회원분들과 함께하는 첫 공식 참가. 팀으로 모여 서로를 응원하며 뛰는 모습이 참 인상 깊었는데, 이번 대회에는 나도 그 감정을 느껴보기로 했다.
소속감이라는 따뜻함
마라톤 장소에 도착하자, 이미 여러 회원분들이 와 있었다. 한 선배님이 몸을 돌리며 손짓했다.
"저기서 배번호 받으시고, 옆 부스에서 옷도 받아요. 어서 다녀오세요~"
이 말 한마디에 묘한 소속감이 느껴졌다. 누군가가 챙겨준다는 그 느낌, 그게 참 따뜻했다.
출발을 앞두고는, 어제 코스를 미리 답사한 선배님이 내게 말했다.
"천천히 걸어도 돼요. 완주만 해요. 그게 중요해요."
그 한마디가 긴장을 덜어주었다.
60대의 30대 열정
이윽고 출발. 얼마 가지 않아 5km를 뛰는 참가자들이 반환점을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고, 굵은 빗줄기처럼 내리는 땀방울, 땅이 울리는 듯한 헉헉대는 숨소리. 1등을 향해 달리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자신과의 승부를 한다는 건 정말 인내가 필요하구나.'
2.5km 지점, 자원봉사자분들이 물과 방울토마토를 나눠주었다.
"힘내세요! 거의 다 왔어요!"
숨을 고르며 큰 소리로 응원하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빨간 유니폼을 입은 동호회 회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에게 "천마 클 파이팅!"을 외치니, 새가 놀라 도망갈 만큼 큰 소리가 나왔다.
나도 웃고, 그들도 웃었다.
60대라고? 나의 열정은 지금 30대다.
외국인을 만나도, 아이들을 만나도 나는 오늘 '파이팅 여자'가 되었다.
92세, 나의 미래 모습
반환점을 도는 길에서 걷기 팀과 마주쳤다.
우리 동호회의 최고령 참가자, 92세 대선배님이
땀으로 젖은 옷사이로 갸냘푼 몸이 드러나
애처로운 마음에 코끝이 찡했다
선배님을 향해 달려가 사진을 찍어드리며 생각했다.
"92세의 내 모습도 이렇게 건강하게 걷고 있으면 좋겠다."
선배님의 뒤를 따르던 또 다른 회원님이 조용히 그분의 손을 잡고 부축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내가 해나가야 할 리더십이 저런 모습이겠구나.'
보고 싶은 내 뒷모습
계속되는 오르막길, 태극기를 등에 단 엄마와 어린아이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는 가끔 뒤를 돌아보며 엄마에게 무언가 말하고,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의 손을 꼭 잡고 걸었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카메라를 꺼냈고, 그 장면을 사진과 영상으로 담았다.
"사실은... 제가 인스타를 하는데요. 영상 보내드릴게요."
그렇게 모녀에게 계정을 알려드렸다.
사람은 자신의 뒷모습을 볼 수 없다.
오늘 그 모녀의 모습은 나의 마음속에 평생 저장될 것이다. '저런 뒷모습이 나의 모습이길' 진심으로 바란다.
아이들을 키울 때, 바쁘다는 핑계로 해주지 못한 게 너무 많아 가슴이 아려왔다.
미래를 비추는 햇살
힘든 오르막을 지나니 따가운 햇살이 반겼다.
몸은 지칠 대로 지쳤지만, 그 햇살은 마치 나의 미래를 비추는 듯 환하게 다가왔다.
4천만 분의 1 확률의 인연
마지막 골인지점에 가까워질 무렵, 처음 보는 여성분이 옆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운동 많이 하셨나 봐요? 지방이 하나도 없으시네요!"
"걸음도 가볍고 지치지도 않으시네요~"
나는 헐떡이며 간신히 답했다.
"아닙니다... 저도 얼마 안 했어요..."
속마음을 들키지 않아 안도하면서도,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그분과 함께 골인을 하고 사진도 찍었다. 알고 보니 부산에서 혼자 오셨다고 했다.
문득 마음이 움직였다.
"우리 동호회 식사 자리에 같이 가요. 회비는 제가 낼게요."
흔쾌히 함께해 주셨고, 금세 '언니, 동생'이 되었다.
4천만 인구 중에, 오늘 이렇게 특별한 인연을 만나게 된 것이 참 감사했다.
사실 예전부터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혼자 대회에 나가도, 끝나고 밥 한 끼 나눌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 내가 그 말을 꺼낸 건, 아마도 그날의 내 마음을 그분에게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주방이모의 한 줄-
달리는 길에서 만난 특별한 인연들, 그들은 오늘도 내 삶에 따뜻한 에너지를 선물해 주었다.